1967년에 있었던 서울대학교주택조합의 택지를 이사장이 임의로 전매한 사건이다. 1963년 주택이 없는 서울대학교 교직원들이 주택단지를 만들어 자립주택을 세우고자 사단법인 ‘서울대학교주택조합’을 결성하였고, 1965년 문화재보호구역으로 묶여있던 국유림을 대통령 지시에 의해 택지로 불하받았다. 그런데 토지를 불하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은 짓지 않고 주택조합 이사장이 택지를 임의로 매각한 것이다. 그로 인해 조합원 71명이 이사장을 서울지검에 고소하였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조성된 1970년대의 교수단지에는 입주한 서울대 교직원이 많지 않았다.
서울大 敎職員用 宅地 말썽
-組合理事長 등 6名 被訴國有地 共同拂下 받아 2萬平 轉買 혐의
12일 오전 서울지검 백광현 검사는 서울대학교 문리대 교수인 권○대(59, 이박)씨가 집 없는 서울대 교직원 77명에게 불하된 국유지 2만여 평을 임의로 전매했다는 피해자들의 고소에 따라 권 교수와 땅을 샀다는 박○하(서울 성북구 수유동 412의 67)씨 등 6명을 업무상 배임혐의로 입건, 서울시경을 지휘하여 수사에 착수했다.
문리대 장○림 교수를 비롯하여, 남○용, 국○효, 박○병, 윤○섭, 김○정, 이○호(의대)씨 등 교수 7명과 기타 직원 64명 등 71명이 연명으로 검찰에 낸 고소장에 의하면 권 교수는 지난 63년도에 주택이 없는 서울대 교직원들이 주택단지를 만들어 자립주택을 세우고자 사단법인 ‘서울대학교주택조합’을 결성했을 때 이사장으로 취임, 65년 11월 1일 성북구 쌍문동 산 261의 1, 262·256의 1에 있는 도합 2만 3백여 평의 국유림을 불하받게 되어 권 교수는 불하대금으로 조합원들로부터 평당 4백 원 내지 8백 원씩 모두 1천 6백 80여만 원을 거두어 자기 이름으로 등기이전을 마치고는 당초 약정을 어기고 전기 박○하씨 등에게 평당 시가의 5분의 1도 안 되는 1천 8백 원의 헐값으로 매각처분했다는 것이다.
고소인들은 소장에서 권 교수는 편의상 불하된 국유림이 자기 명의로 돼 있음을 기회로 교육자란 신분을 잊고 조합원인 동료교직원 몰래 임야를 팔아 그 대금을 착복, 부당한 중간이득을 취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경찰의 수사가 끝나 사건이 송치되는 대로 검찰 자체에서 다시 권 교수 등 피고소인들을 소환심문할 방침이다.
▲권○대 교수의 말= 지난 5월 26일 조합 이사회에서 땅 매매문제를 이사장인 나에게 일임했기 때문에 그 후 나○영 부이사장이 동석한 가운데 매매계약을 했었고 대금 3천 8백여만 원은 상은혜화동 지점에 내 명의로 예치, 조합원들이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시가보다 싸게 팔았다고 하나 매매한 지 한 달 후에 이웃에 있는 땅이 평당 1천 7백 원에 팔린 사실이 있다.
『동아일보』 1967. 11. 13. 3면
이 글에서 서울대 교직원용 택지로 불하받은 '성북구 쌍문동 산 261의 1, 262·256의 1'은 현재 성북구 정릉동 599번지 일대이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무주임을 역임하던 시절 서울대학교 주택조합이 설립되고 교수단지에 토지가 불하된 후, 실제 주택을 지어 현재까지 거주하는 유일한 초기 조합원으로 남아 있다.
처음 단지가 조성될 때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당시 청와대와 가까웠던 정릉 주변은 수도경비사령관 소속의 군사보호지역으로 단지 조성에 많은 제약이 따랐다. 단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토지를 불하받은 다음 대부분 땅을 팔고 실제 집을 짓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서울대학교 주택조합이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으로부터 토지를 불하받은 후 실제 마을에 거주한 경우는 드물다. 박여병씨는 당시 조합원이 36명 정도였으나 불하받은 땅을 파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실제 마을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은 10여 명에 불과하다고 기억했다.
박여병씨와 건축학과의 윤장섭 교수가 가장 오랫동안 마을에 산 것으로 기억한다. 현재는 윤장섭 교수가 마을에 거주하지 않으므로 박여병씨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는, 교수단지 내의 유일한 서울대 교직원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