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가이다. 평안북도 용천 출생으로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음악부원으로 활동하였고, 졸업 후 일본고등음악학교에 입학하였다. 1939년에 열린 전 일본 성악콩쿨대회에서 수석으로 당선되어 한국성악의 기염을 토하였다. 광복 후 한국 오페라계에 투신하여 「춘향전」을 비롯하여 수많은 오페라의 주역으로 출연하였고, 한국오페라단 단장을 역임하였다. 1953년 얼굴과 손에 심한 화상을 입는 시련을 겪었으나 1956년 독창회를 가지면서 재기에 성공한다. 1950년대 기사를 찾아보면 당시 그가 성북동 자택에서 독창회를 준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등을 거쳐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학장까지 지내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으며, 1978년 5주기 추모앨범이 나오기도 하였다.
평북 용천 출생. 우리 가곡과 오페라를 알린 성악가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두각을 보여 연희전문학교 음악부원으로 활동하며 현제명의 지도를 받았다. 1929년부터 빅터레코드사에서 창작 가곡과 외국 가곡을 취입했다. 일본 고등음악학교에서 유학, 1939년 전일본성악콩쿨대회에서 1등 없는 차석의 성적을 거둔다. 졸업 후 여러 차례 독창회를 열고, 귀국 후 현제명이 만든 창작오페라 <춘향전>의 주인공을 맡아 전국 순회공연을 다녔다.
한국전쟁 때 사고를 당해 한동안 음악활동을 하지 못했다. 성북동 집에서 요양하던 중 1956년 재기에 성공하여 한국오페라연구회를 창설하고, 오페라에 출연한다.
평북 용천 출생. 우리 가곡과 오페라를 알린 성악가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두각을 보여 연희전문학교 음악부원으로 활동하며 현제명의 지도를 받았다. 1929년부터 빅터레코드사에서 창작 가곡과 외국 가곡을 취입했다. 일본 고등음악학교에서 유학, 1939년 전일본성악콩쿨대회에서 1등 없는 차석의 성적을 거둔다. 졸업 후 여러 차례 독창회를 열고, 귀국 후 현제명이 만든 창작오페라 <춘향전>의 주인공을 맡아 전국 순회공연을 다녔다.
한국전쟁 때 사고를 당해 한동안 음악활동을 하지 못했다. 성북동 집에서 요양하던 중 1956년 재기에 성공하여 한국오페라연구회를 창설하고, 오페라에 출연한다.
해방 후 우리나라 최초의 교향악단인 고려교향악단에 윤이상, 이인범, 전봉초, 이봉수 등이 참여한다.
1950년 현제명이 제작한 우리나라 첫 창작 오페라 <춘향전>의 주인공은 이관옥과 이인범이 맡았고, 이인범은 이듬해 김대현이 작곡, 지휘한 오페라 <콩쥐 팥쥐>에 참여하였다.
해방 후 우리나라 최초의 교향악단인 고려교향악단에 윤이상, 이인범, 전봉초, 이봉수 등이 참여한다.
1950년 현제명이 제작한 우리나라 첫 창작 오페라 <춘향전>의 주인공은 이관옥과 이인범이 맡았고, 이인범은 이듬해 김대현이 작곡, 지휘한 오페라 <콩쥐 팥쥐>에 참여하였다.
정의
성악가.
내용
1914∼1978. 평안북도 용천에서 장로교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평양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1931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여 음악과 없는 음악부에서 음악을 연구하며 연희전문음악대의 일원으로 봄·가을로 2회씩 전국을 순연하였다.
졸업 후 일본고등음악학교에 입학, 기노시다(木下保)를 사사하였고, 1939년 10월에 열린 전 일본 성악콩쿨대회에서 1등 없는 수석으로 당선되어 한국성악의 기염을 토하였다. 1941년 졸업 후 동경에서 독창회를 가졌고, 1943년 5월에 귀국독창회를 서울 부민관(府民館)에서 열었다.
광복 후 한국 오페라계에 투신, 현제명(玄濟明) 작곡의 「춘향전」을 비롯하여, 푸치니의 「토스카」,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비제의 「카르멘」, 베르디의 「오셀로」 등에 주역으로 출연하였다.
한국오페라단 단장을 역임하였으며, 1953년 불의의 화상을 크게 입어 실의에 찬 생활을 계속하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등을 거쳐 연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 학장까지 지냈다.
1956년 5월 8일 명동 국립극장에서 재기독창회(반주 부인 李貞子)를 성공리에 마쳤고, 2년 후인 1958년 10월 15일 또다시 독창회를 열어 건재함을 과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