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이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로 시작하는 동요 「자전거」와 가곡 「자장가」 등을 작곡하였다. 창작 오페라가 거의 없던 시절 부산극장에서 1952년 오페라 「콩쥐팥쥐」를 공연하여 주목을 받았다. 서라벌예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1967년에 작곡가 금수현과 함께 ‘새음악연구원’을 만들어 국악을 현대화하고 알리는 데 힘썼다. 1970년대 북한산 자락 정릉동 803-2번지로 이사하였다. 작고할 때까지 동요 1백여 곡과 가곡 60여 곡, 성가곡 30여 곡을 남겼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로 시작하는 동요 「자전거」를 지은 작곡가 김대현은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며 음악에 관심을 가졌고, 함흥 영생중학교 1학년 때인 1933년에 습작으로 「자전거」를 작곡하였다. 가사는 아동문학가 목일신이 보통학교 5학년 때 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다니던 경험을 시로 쓴 것이다. 또 다른 대표곡인 「자장가」는 아동문학가 김영일이 붙인‘우리 아기 착한 아기 소록 소록 잠들라’라는 노랫말로 널리 알려졌지만, 원래는 김대현이 작사·작곡한 노래이다. 일본 제국고등음악학교를 졸업하고 만주에서 활동하다가 고향에 돌아왔을 때 친구들의 부탁으로 만든 곡이었다. 친구들이 만든 연극에서 불린 뒤 잊혔다가 새로운 가사와 함께 불리면서, 음반이 발매되고 중학교 음악교과서에도 실렸다.
1950년에 월남하여 창작오페라가 거의 없던 시절 부산극장에서 1952년 오페라 「콩쥐팥쥐」를 공연하여 주목을 받았다. 종합예술인 오페라는 솔리스트와 합창, 오케스트라, 극의 흐름까지 고려하여 작곡을 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또한 영화음악 작곡자로 활동하며 영화 ‘이차돈’과 ‘맹진사댁 경사’ 등에 참여하고, 서라벌예술대학(현재 중앙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67년에는 작곡가 금수현과 함께‘새음악 연구원’을 만들어 국악을
현대화하고, 알리는 데 힘썼다. 1970년대 북한산 자락아래 대문도 울타리도 없었던 정릉동 소박한 양옥집(803-2번지)으로 이사하여 작고할 때까지 동요 1백여 곡과 가곡 60여 곡, 성가곡 30여 곡을 남겼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로 시작하는 동요 「자전거」를 지은 작곡가 김대현은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며 음악에 관심을 가졌고, 함흥 영생중학교 1학년 때인 1933년에 습작으로 「자전거」를 작곡하였다. 가사는 아동문학가 목일신이 보통학교 5학년 때 아버지의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다니던 경험을 시로 쓴 것이다. 또 다른 대표곡인 「자장가」는 아동문학가 김영일이 붙인‘우리 아기 착한 아기 소록 소록 잠들라’라는 노랫말로 널리 알려졌지만, 원래는 김대현이 작사·작곡한 노래이다. 일본 제국고등음악학교를 졸업하고 만주에서 활동하다가 고향에 돌아왔을 때 친구들의 부탁으로 만든 곡이었다. 친구들이 만든 연극에서 불린 뒤 잊혔다가 새로운 가사와 함께 불리면서, 음반이 발매되고 중학교 음악교과서에도 실렸다.
1950년에 월남하여 창작오페라가 거의 없던 시절 부산극장에서 1952년 오페라 「콩쥐팥쥐」를 공연하여 주목을 받았다. 종합예술인 오페라는 솔리스트와 합창, 오케스트라, 극의 흐름까지 고려하여 작곡을 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또한 영화음악 작곡자로 활동하며 영화 ‘이차돈’과 ‘맹진사댁 경사’ 등에 참여하고, 서라벌예술대학(현재 중앙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67년에는 작곡가 금수현과 함께‘새음악 연구원’을 만들어 국악을
현대화하고, 알리는 데 힘썼다. 1970년대 북한산 자락아래 대문도 울타리도 없었던 정릉동 소박한 양옥집(803-2번지)으로 이사하여 작고할 때까지 동요 1백여 곡과 가곡 60여 곡, 성가곡 30여 곡을 남겼다.
동요 「자전거」와 가곡 「자장가」의 작곡가이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로 시작하는 「자장가」는 중학생일 때 습작으로 지은 곡이다. 가사는 아동문학가 목일신이 보통학교 5학년 때 쓴 것이다. 「자장가」는 고등학교 졸업 후 지은 곡으로, 성악가 이관옥이 처음 불러 대중에게 알려졌다.
창작오페라가 거의 없던 시절 부산극장에서 1952년 오페라 「콩쥐팥쥐」를 공연하여 주목을 받았다. 서라벌예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1967년에 작곡가 금수현과 함께 ‘새음악연구원’을 만들어 국악을 현대화하고 알리는 데 힘썼다. 1970년대 북한산 자락 정릉동 양옥집으로 이사하였다. 작고할 때까지 동요 1백여 곡과 가곡 60여 곡, 성가곡 30여 곡을 남겼다.
동요 「자전거」와 가곡 「자장가」의 작곡가이다.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로 시작하는 「자장가」는 중학생일 때 습작으로 지은 곡이다. 가사는 아동문학가 목일신이 보통학교 5학년 때 쓴 것이다. 「자장가」는 고등학교 졸업 후 지은 곡으로, 성악가 이관옥이 처음 불러 대중에게 알려졌다.
창작오페라가 거의 없던 시절 부산극장에서 1952년 오페라 「콩쥐팥쥐」를 공연하여 주목을 받았다. 서라벌예술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1967년에 작곡가 금수현과 함께 ‘새음악연구원’을 만들어 국악을 현대화하고 알리는 데 힘썼다. 1970년대 북한산 자락 정릉동 양옥집으로 이사하였다. 작고할 때까지 동요 1백여 곡과 가곡 60여 곡, 성가곡 30여 곡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