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이다.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안감리 78번지(현 안암동 5가 고려대학교 서울캠퍼스 4.18기념관 일대로 추정)에 거주하였으며, 직업은 연초상(煙草商)이었다. 1919년 3월 26일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사무소(현 성북구 안암동5가 일대로 추정) 앞에서 다수의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가 체포되었다. 이로인해 1919년 5월 1일 치안유지법위반을 이유로 5월 1일 태 90대 형을 선고받았다.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안암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26일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사무소(현 강북구 송천동 송천아파트) 앞에서 다수의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1919년 5월 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保安法違反으로 笞 90度를 받았다.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안암리 출신으로 1919년 3월 26일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사무소(현 강북구 송천동 송천아파트) 앞에서 다수의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1919년 5월 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保安法違反으로 笞 90度를 받았다.
본적: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안암리
주소: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안암리
계열과 단체: 3ㆍ1운동
<활동 내용>
경기도 고양군 출신으로 1919년 3월 26일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사무소 앞에서 다수의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保安法違反으로 笞 90度를 받았다.
<참고문헌>
경성지방법원 판결문:1919. 5. 1
매일신보:1919. 5. 4
독립운동사 제2권 137쪽
본적: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안암리
주소: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안암리
계열과 단체: 3ㆍ1운동
<활동 내용>
경기도 고양군 출신으로 1919년 3월 26일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사무소 앞에서 다수의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면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保安法違反으로 笞 90度를 받았다.
<참고문헌>
경성지방법원 판결문:1919. 5. 1
매일신보:1919. 5. 4
독립운동사 제2권 13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