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가이다. 1937년 횡성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작품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1970년대 성북동으로 이사하였는데, 마당에서 30여 종의 야생화를 가꾸고, 큰 매화나무에서 매실을 수확해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1980년 들어 여주의 산자락에 화실을 두고 작업을 이어갔는데, 1990년대 「잊혀진 것들」과 2000년대 「영겁 속에서」 시리즈를 통해 수묵 판화의 번짐 기법과 투명함이 더해진 독특한 수묵화의 세계를 만들어 냈다. 2000년대 시도한 칼 그림 드로잉 작품은 두꺼운 마분지를 칼로 섬세하게 오려내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담아낸 것이다. 2010년 집과 화실을 경기도 여주로 옮기고 작품 활동을 이어가다 세상을 떠났다.
강원도 횡성 출생.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그림에 담은 화가이다.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묵림회’에서 수묵추상화를 전개하였다. 1980년대 들어 여주의 산자락에 화실을 두고 <잊혀진 것들>, <영겁속에서> 시리즈를 발표한다. 20여 년간 모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1970년대 성북동으로 이사하였다. 30여 종의 야생화로 마당을 가꾸고, 큰 매화나무에서 매실을 수확해 이웃들에게 나눠주며 성북동 생활을 즐겼다. 2010년 집과 화실을 경기도 여주로 옮기고 작품 활동을 이어가다 세상을 떠났다.
강원도 횡성 출생.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그림에 담은 화가이다.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묵림회’에서 수묵추상화를 전개하였다. 1980년대 들어 여주의 산자락에 화실을 두고 <잊혀진 것들>, <영겁속에서> 시리즈를 발표한다. 20여 년간 모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1970년대 성북동으로 이사하였다. 30여 종의 야생화로 마당을 가꾸고, 큰 매화나무에서 매실을 수확해 이웃들에게 나눠주며 성북동 생활을 즐겼다. 2010년 집과 화실을 경기도 여주로 옮기고 작품 활동을 이어가다 세상을 떠났다.
1960년대부터 묵림회 활동을 하면서 수묵추상을 판화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한 작가이다. 1990년대 ‘잊혀진 것들’과 2000년대 ‘영겁 속에서’ 시리즈를 통해 수묵 판화의 번짐 기법과 투명함이 더해진 먹그림을 소화해 냈다. 2000년대 시도한 칼 그림 드로잉 작품은 두꺼운 마분지를 칼로 섬세하게 오려내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담아낸 것이다. 2006년 심장병으로 큰 수술을 받은 이후에도 한시, 작곡, 드로잉, 칼그림 등 여러 분야를 개척하며 창작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정탁영은 1960년대부터 50여 년간 수묵추상의 세계를 판화의 영역까지 확장해 독자적 화법을 창출해내었던 작가로 평가받는다. 1980년대 이후 판화기법을 수묵화에 도입해 독특한 마티에르를 창조했다. 1990년대 ‘잊혀진 것들’ 시리즈, 2000년대 ‘영겁 속에서’ 시리즈는 ‘번짐의 유희’를 찍어내는 기법을 통해 만들어 내고 투명함이 더해진 독특한 수묵의 세계로 나아가게 했다. 1970년대 성북동으로 이사한 화가의 집에는 늘 30여종의 야생화가 수를 놓았고, 마당의 큰 매화나무에서 열린 매실을 이웃과 나누는 것이 화가의 또 다른 즐거운 일거리였다.
1960년대부터 묵림회 활동을 하면서 수묵추상을 판화의 영역으로까지 확장한 작가이다. 1990년대 ‘잊혀진 것들’과 2000년대 ‘영겁 속에서’ 시리즈를 통해 수묵 판화의 번짐 기법과 투명함이 더해진 먹그림을 소화해 냈다. 2000년대 시도한 칼 그림 드로잉 작품은 두꺼운 마분지를 칼로 섬세하게 오려내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담아낸 것이다. 2006년 심장병으로 큰 수술을 받은 이후에도 한시, 작곡, 드로잉, 칼그림 등 여러 분야를 개척하며 창작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정탁영은 1960년대부터 50여 년간 수묵추상의 세계를 판화의 영역까지 확장해 독자적 화법을 창출해내었던 작가로 평가받는다. 1980년대 이후 판화기법을 수묵화에 도입해 독특한 마티에르를 창조했다. 1990년대 ‘잊혀진 것들’ 시리즈, 2000년대 ‘영겁 속에서’ 시리즈는 ‘번짐의 유희’를 찍어내는 기법을 통해 만들어 내고 투명함이 더해진 독특한 수묵의 세계로 나아가게 했다. 1970년대 성북동으로 이사한 화가의 집에는 늘 30여종의 야생화가 수를 놓았고, 마당의 큰 매화나무에서 열린 매실을 이웃과 나누는 것이 화가의 또 다른 즐거운 일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