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 교수단지(성북구 아리랑로 19다길 일대)에 위치한 주택이다. 권계숙씨가 살고 있는 집으로 정원이 쌈지처럼 아담하다 하여 스스로 ‘쌈지정원’이라 이름 붙인 것이 계기가 되었다. 쌈지정원 안에는 권계숙씨가 좋아하는 꽃과 나무들로 가득하고, 담장 너머 골목 울타리까지 바늘꽃을 비롯한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하다. 현재 쌈지정원은 방문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마을의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아담한 정원과 바늘꽃이 어우러진, 쌈지정원
강원도 평창이 고향인 권계숙씨는 고등학교를 서울로 오면서 정릉에 정착하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하고, 돈암동 우천초등학교 근처(현재 한신아파트 자리)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한동안 정릉을 떠나 도봉구 방학동에서 거주한 적이 있으나, 친구들을 만나러 정릉으로 출퇴근하다시피 했다. 매일 정릉을 오가는 생활을 5년간 하다가 결국 정릉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그는 교수단지에 터를 잡은 지 28년째 되었다.
권계숙씨는 마을에서 막내아들의 이름을 따서 ‘명수네 집’, ‘명수엄마’로 불리곤 했다. 그러나 자녀들이 출가하고 마을가꾸기에 동참하고 있는 요즘은 ‘쌈지정원 권여사님’으로 불리고 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의 정원이 쌈지처럼 아담하다 하여 스스로 ‘쌈지정원’이라 했는데, 현재 쌈지정원은 방문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마을의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쌈지정원 안에는 권계숙씨가 좋아하는 꽃과 나무들로 가득하고, 담장 너머 골목 울타리까지 바늘꽃을 비롯한 아름다운 꽃들로 가득 채웠다.
마을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특히 꽃과 관련된 일이라면 빠짐없이 참여하는 그는 마을에서 꽃길 만들기와 마을탐방이 있을 때마다 흔쾌히 정원을 개방한다. 마을을 방문하는 관람객이 있을 때마다 “우리 집은 볼 게 없는데 ……”라고 말하지만 이미 대문을 활짝 열고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 집 정원이 더 넓다면 매일 문을 열어놓고 마음대로 들어오라고 말하고 싶어”라고 말할 정도로 마을에 대한 애정과 정원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5년간 다른 마을에서 살닥 다시 정릉으로 돌아온 그는 “여기(정릉)에 살던 사람이 외지로 나가면 다시 들어온다는 옛말이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말 다시 오게 되더라”고 말한다.
권계숙씨는 요즘 꽃을 기르는 일에 심취해 있다. 취미생활로 꽃을 기르고, 꽃을 기르다 보니 예쁜 화분도 사게 된다. 한두 개씩 모으기 시작한 화분이 지금은 집안에 가득하다. 그가 직접 꾸민 쌈지정원을 방문객들에게 보여주며 설명하는 모습에서 마늘과 정원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큰지를 느낄 수 있었다.
권계숙씨 구술
원래 고향이 강원도 평창인데 오빠들이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어. 그래가지고 나 고등학교 때 원서를 다 사서 보낸 거야 집으로. 이제 서울 올라오게 하려고. 그래서 내가 원서 써서 서울로 보냈지. 그때는 시험을 봤어요. 옛날엔 시험을 봐서 학교를 갔어요. 다행히 합격을 했어요. 그래서 학교를 들어가게 됐어요.
결혼을 해서 신혼살림을 정릉에서 차렸어요. 시집을 서울로 와가지고 딸 하나에다 아들 둘 낳고 오순도순 잘 지금까지 살고 있어요. 정릉에서 살다가 방학동에서 살았어요. 원래 여기 정릉에서 살다가 방학동에서 이사를 가서 거기서도 한 5년 살다가 내 친구들이 다 여기 다 사니까 매일 여기로 넘어왔어. 살았던 친구들 요기 요 친구들이었지. 요 친구들이 있으니까 매일 매일 만나다 보니까 이 사람들하고 헤어지기가 뭐해서 맨날. 그리고 거기는 모르는 동네잖아. 그래서 사람 사귀기도 어렵고 내 살던 곳이 편안하더라고. 그래서 매일 온 거야. 그냥 온 거야. 매일 출퇴근 하듯이 여기 와서 놀다가 저녁에 이렇게 그때는 젊었잖아 하하하. 친구들이 좋은 점이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친구 따라 매일 왔었어. 매일 차를 타고 넘어와서 여기서 놀다가 무슨 출퇴근 하는 식으로 저녁에 거기루 가. 매일 그렇게 하다가 안 되겠다 이제는 여기로 이사를 가야겠다 결단을 내려가지고 동네를 딱 집을 얻으러 다니다 보니까 찾으러 다니다 보니까 교수단지가 좋더라고. 그래서 교수단지로 가야되겠다 해서 교수단지로 오게 됐지. 정릉 쪽을 다 돌아보다가 그래도 여기가 제일 마음에 들어서 여기로 그래서 정착하게 됐지.
우리 딸내미 결혼이 스물여섯에 했거든 결혼할 때 이 집에 2년 살다가 결혼을 했거든. 그러니까 27, 28년 되겠네. 이사를 미리 왔었지. 한 2년 전에 미리 왔다가 그러고 딸이 결혼을 했지. 여기 와서 결혼을 하고 그랬지.
그래서 결혼해서 여기에 자리를 잡으니까 능이 여기에 있으니까 능에 가면 너무너무 좋아. 애들하고 아침에는 밥을 싸가지고 능에를 와. 금천계곡 금천교 있잖아. 그거 그 다리 그 밑에가 다 개천이었단 말이야. 와가지고서 거기 물놀이 하고 놀다가 점심을 먹고 그러고 집에를 가는 거야. 이 안에서 와서 놀다가 종일 놀다가 점심을 먹고 그러고 집에를 가는 거야. 이 안에서 와서 놀다가 종일 놀다가 가는 거지. 애기들하고 같이 꼬맹이들. 물이 많았어 옛날엔. 개천이었어가지고 거기서 막 빨래도 하고 그랬어. 그랬는데 지금은 딱 차단시키고 어느 날부턴가 갑작시리(갑자기) 다 막아가지고 돈을 받으니까 막 개구멍~으로 막 들어갔어. 동네가 다 철조망이었어. 철조망을 뚫고 개구멍으로 다 들어와 사람들이 지금들은 막 멋있게 해놨잖아. 철조망 뚫고 개구멍으로 들어갔다니까 나 돈 안낼라고. 입장료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옛날 돈으로 50원 5원 10원 막 이러잖아. 그랬을 거야. 그러니까 돈 안내고 들어가려고. 30원인가 그랬을 거다. 그랬는데 돈 안 내고 들어가려고 사람들이 개구멍으로 들어가고 그랬어. 철조망을 이렇게 들어주면 그 밑으로 나도 들어가봤어. 왜 개구멍을 찾느냐하면 이렇게 이쪽에는 걸어 올라가면 물이 많은 쪽으로 올라가려면 개구멍 이쪽으로 조금 넘어가잖아. 그럼 거기가 바로 물이 딱 나오는 데야. 그래서 그런 데로 가는 거야. 정릉 계곡에서 수영도 하고 애기들 그렇게 키웠어. 이사도 안 간 것 같아. 여기서 맨날 뱅뱅뱅 돌다가 그 동네에서 그 동네로 돌다가 다시 이쪽으로 온 거야.
여기 정릉은 나가면 다시 들어와야 된대. 정릉은 못 잊는 거야. 그러니까 말하자면 여기 살던 사람이 외지로 나갔어. 그럼 정릉에 다시 들어온다는 옛 속담이 있어. 가만히 나도 생각을 해보니까 정말 다시 오게 되더라구.
우리 집은 명수네 집이라 불렀어. 우리 막내가 명수거든 명수네 집 그 집 딸 이름이 정희면 정희네집, 그 큰딸 뭐 동환네 집. 애기 이름 따라서 명칭을 부른 거지 집을. 우리 막내가 명수니까 명수 엄마 명수네 집에 가자 그랬어. 큰 아이는 크니까 부르기가 그렇고 막내는 애기잖아. 그래서 막내 이름을 많이 부르고. 정희네 집은 정희가 큰아이거든. 근데 정희는 애기 때부터, 내가 애기를 날 때 정희를 낳았으니까 그냥 정희네 집 정희네 집 이렇게 부르게 된 거고. 근데 거의 막내 이름을 많이 불러.
정릉 개천에서 논 거 말고도 우리 집에서 그 신흥사 가는 굴다리 거기서 자리 깔고, 돗자리 깔고 세 집이서 맨날 감자 고구마 쪄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나. 거기서 맞바람이 들어와서 시원해 또 거기가 음지잖아. 그래서 거기서 많이 놀고 능 안 아니면 거기서 많이 놀고 그랬지.
겨울엔 집집마다 집으로 찾아 가는 거지 친구네 집. 오늘은 또 우리 집 가자 그래가지고 밥해서 밥 먹고 그러는 거지. 여기는 이렇게 따닥따닥 붙었잖아. 나 오늘 밥 가져갈게 너는 쌈 가져와 이래가지고 세 집이서 몰려가지고 찬밥 막 싸서 먹고 오늘은 김치 이렇게 찢어가지고 지짐이 김치전 해서 먹고 그랬어(하하하).
그때 같이 지내던 친구하고 새로운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들하고 친목회라고 모임을 가져서 한 달에 한 번씩 만나지. 만나다 보니 야 우리 모임 하나 갖자 누가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놀다보니 그런 말이 나와서 그런 친목을 도모하게 됐지. 가려운 곳을 서로 긁어주고 “니가 뭐가 가렵구나” 이걸 다 알지.
친구들은 아이들을 같이 기르다 보니까 같이 친해졌어. 아이들을 같이 들여다보니까 아이들을 같은 해에 같이 낳고 같이 기르다 보니까 같이 어우러지게 되더라구. 그 아이들이 커서 같은 학교를 가고 그러니까 그 부모들 하고 같이 어우러지더라구. 그런데 친목회를 한 동기는 뭐냐면 그 사람들이 멀리멀리 이사를 가잖아.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 이유가 그래서 한 달에 한 번 만나자 그러면 그 날짜에는 다 볼 수가 있잖아. 다 모이니까 얼굴을 다 볼 수가 있잖아. 그래서 모임을 하는 거야. 지금 생각하면 아이 낳고 기르는 게 제일 기억에 남지.
요새 보람 있는 거는 내가 취미생활로 꽃을 기르고 또 꽃을 기르다보니까 예쁜 화분도 모으고 이러다 보니까, 한 개 두 개 모으다 보니까 화분이 엄청 많아졌어요. 그래서 조금 우리 집에 있는 화분이 특이하다 그래 사람들이 다 볼 때. 화분이 조금 그냥 이런 화분이 아니고 도자기 같은 걸로 만드는 식으로 어떻게 보면 아기자기한 느낌이 있잖아 그래. 요새 그냥 제일 보람이 있는 거는 분으로 저기 꽃도 기르고 집안에 화단도 기르고.
20년 동안 하나 둘씩 모으다 보니까 하하하하(웃음). 엄청 많잖아 누구 주기도 해. 오래 가지고 있으면 싫증나니까. 새로운 게 좋잖아. 그리고 친구들이 “쟤는 특이한 거 좋아하니까 야 이거 특이하다 너 가져라” 이러고 주기도 하고. 이 동네는 전부 다 어렸을 적에 애 기르다가 헤어져 버리고 뭐 동창들이나 만나고. 동네 친구들이 좋은 것 같아 애기 같이 기르고 속사정 너무 잘 알잖아. 그런 사람들이 좋은 것 같아. 서로 내 속 다 주고 그러니까 좋지.
-권계숙(여, 66세) 성북구 정릉2동 교수단지, 2014년 6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