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돈암동의 이름과 관련된 내용이다. 돈암동은 해방 후 1949년 성북구가 신설되면서 성북구에 편입되었는데, 돈암동 지역이 넓어 동소문동, 삼선동, 동선동, 돈암동으로 분리되었다. 이 지역은 조선시대에 동소문(혜화문) 밖 ‘성저십리(城底十里)’로서 도성과 가깝고 풍광이 좋아 도성의 권세가와 부호들이 많이 찾는 동네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동북쪽에서 여진인이 한양으로 들어올 때 이용했던 지금의 미아리고개가 당시에는 ‘되너미고개’라고 불렸다. ‘돈암’은 순우리말인 ‘되너미’와 유사한 한자 음이자, 도타울 돈(敦)과 바위 암(巖)을 써서 지형적 특성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조선말에서 일제강점기에는 돈암리로서 관할만 경기도와 경성부 등으로 바뀌었다가 해방 이후에는 동대문구에 편입되었다가 성북구로 변경된 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10년 국권피탈로 대한제국이 멸망하자 일본은 민족의식과 전통을 말살하기 위해 오백여 년 간 조선왕조의 수도였던 한성부의 모든 기능을 약화시키고, 경기도에 예속시켜 경성부라 하였다. 이에 한성부의 관할이었던 돈암동은 경기도 경성부 숭신면 돈암리京城府崇信面敦岩里가 되었다.
일본은 창씨개명처럼 우리 고유의 땅 이름을 동洞과 정町으로 바꾸고, 토지를 장악하여 통치를 손쉽게 하기 위해 대대적인 행정개편을 하였다. 일제강점기 동안 돈암동은 경성부에서 고양군으로, 또 다시 경성부관할에 편입되었고, 명칭은 돈암리에서 돈암정으로 바뀌는 등 변화를 겪었다.
1910년 국권피탈로 대한제국이 멸망하자 일본은 민족의식과 전통을 말살하기 위해 오백여 년 간 조선왕조의 수도였던 한성부의 모든 기능을 약화시키고, 경기도에 예속시켜 경성부라 하였다. 이에 한성부의 관할이었던 돈암동은 경기도 경성부 숭신면 돈암리京城府崇信面敦岩里가 되었다.
일본은 창씨개명처럼 우리 고유의 땅 이름을 동洞과 정町으로 바꾸고, 토지를 장악하여 통치를 손쉽게 하기 위해 대대적인 행정개편을 하였다. 일제강점기 동안 돈암동은 경성부에서 고양군으로, 또 다시 경성부관할에 편입되었고, 명칭은 돈암리에서 돈암정으로 바뀌는 등 변화를 겪었다.
지방행정제도가 크게 개편되는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새롭게 제정된 공식명칭은 한성부 동서 숭신방 동문외계 돈암리崇信坊東門外契敦岩里였다.‘ 돈암’은 순우리말인‘되너미’와 유사한 한자 음이자, 도타울 돈敦과 바위 암巖을 써서 지형적 특성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돈암동과 미아리彌阿里 두 마을 사이에 걸쳐 있는 되너미고개의 현재 명칭은 미아리고개이다.
지방행정제도가 크게 개편되는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새롭게 제정된 공식명칭은 한성부 동서 숭신방 동문외계 돈암리崇信坊東門外契敦岩里였다.‘ 돈암’은 순우리말인‘되너미’와 유사한 한자 음이자, 도타울 돈敦과 바위 암巖을 써서 지형적 특성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돈암동과 미아리彌阿里 두 마을 사이에 걸쳐 있는 되너미고개의 현재 명칭은 미아리고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