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선동
- 1955년 04월 18일 - 1970년 05월 05일
- 장소 · 인문지리
- 성북구에 있었던 동네이다. 성북구는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 돈암지구의 개발로 이른 시기에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이루어진 지역이었다. 그러다보니 비교적 안정된 시가지가 있는 반면,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도심과 가까운 성북구 지역에 도시빈민들이 무허가 ‘불량주택’을 짓고 살았던 곳도 늘어났다. 그 대표적인 지역이 미아리고개 주변의 북선동이었는데, 북선동과 삼양동의 산동네에 ‘토굴’이 가장 많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지속적인 도시재개발로 인해 대부분 정비되었고, 북선동은 돈암동에 통합되었다.
- 시대:현대
- 시기:1955년 04월 18일 - 1970년 05월 05일
- 비고:1970.05.05 이후 돈암동 관할로 변경
- 주소: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 일대
- 성북구는 서울의 다른 구 보다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이루어진 지역이다보니 고스란히 장단점이 공존하게 되었다.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비교적 안정된 시가지를 유지하고 있던 지금의 돈암동 일대를 벗어난 지역에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도시민들이 유입되면서 불량주택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게 되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북선동인데, 이곳은 미아리고개 올라가는 길에 위치하고 있었다. 반대편은 고명중・고등학교였고, 반대편이 산동네라 불리는 지역이었다. 북선동과 삼양동에 토굴이 가장 많이 위치했었다. 평지에 집을 지을 형편이 못되거나 월세로도 살기 힘든 도시민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산동네로 불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미아리고개, 85쪽
- 성북구는 서울의 다른 구 보다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이루어진 지역이다보니 고스란히 장단점이 공존하게 되었다.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비교적 안정된 시가지를 유지하고 있던 지금의 돈암동 일대를 벗어난 지역에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도시민들이 유입되면서 불량주택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게 되었다. 대표적인 곳이 바로 북선동인데, 이곳은 미아리고개 올라가는 길에 위치하고 있었다. 반대편은 고명중・고등학교였고, 반대편이 산동네라 불리는 지역이었다. 북선동과 삼양동에 토굴이 가장 많이 위치했었다. 평지에 집을 지을 형편이 못되거나 월세로도 살기 힘든 도시민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산동네로 불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미아리고개, 85쪽
- 작성자:오진아
- 작성일:202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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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암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