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관동의 생활상과 관련된 기록을 묶은 것이다. 석관동에서도 의릉 주변 지역은 조선시대 왕릉인 의릉이 있어 개발이 제한되었고, 1960년대부터는 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 건물이 있어서 1996년 개방될 때까지는 접근도 통제되었다. 한예종 주변 지역은 어찌보면 서울에서 가장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있는 곳일지도 모른다. 현재 모은 기록의 대부분은 돌곶이 생태문화 연구팀이 기획한 ‘돌곶이 문화지도 그리기 프로젝트’의 좌담회 내용에서 발췌한 것이다. 참가자들이 발로 뛰며 수집한 정보들을 공유하면서 석관동의 역사성과 생활상을 이야기한 것이 기록물의 주축을 이룬다.
김지영: 사실 입학했을 때 이 동네에서 느껴지는 게, 저희 학교랑 주민간의 벽이 되게 높다는 거를 느꼈는데, 그래서 사실 한예종 학생들의 특성 상 자기 작업할 시간도 바쁘고 이래서 관심이 없었는데,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조사도 맘대로 해 보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되는 것들도 많아서 그런 점을 많이 배웠는데, 저희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이 논점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이동연: 그리고 김희규 학생?
김희규: 저도 일단 학교생활을 하면서 타 대학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예술종합학교가 돌곶이라는 그 지역 커뮤니티와 많은 교류가 없다는 것을 학교 다니면서 많이 느끼게 되었는데, 건축과에서 공부를 하면서 이런 지역성에 대한 고민을 해야 된다는 거를 배우면서, 학교에서 이 돌곶이에 관한 고민들, 걱정들을 하고 있고, 또 거기에 대한 이런 직접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거에 대해서도 굉장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또 거기에 참여한 거에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동연: 예. 이 프로젝트를 제안한 사람이 전데, 제가 이 학교 근무한 지가 10년째 쯤 되나요? 그런 것 같은데, 맨날 학교 출퇴근하면서 항상 한화제약 있는 그 좁은 골목을 차를 타고 오는 경우가, 차를 몰고 올 때는 그런 경우가 되게 많고, 또 걸어올 때도 항상 버스정류장에서 내려가지고 쭉 올라오는데, 묘한 느낌이 있는 거예요. 하나는 너무 지저분하고, 학교 주변의 공간치고는 완전히 슬럼화되어 있는 데고, 한편으로는 야~ 서울에 이런 데가 있을까 할 정도로 개발이 안 되다보니까, 뭔가 좀 사람들하고 직접 얘기는 안 해봤지만, 따뜻한 정 같은 것도 느끼게 되고, 그러면서 오히려 안기부가 들어오고 의릉이 들어서면서, 이 주변이 개발이 안 된게, 잠재적으로는 상당한 도시공간으로서의 잠재성이 있겠구나라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내다가, “아 만약에 이게 20년 후의 이 공간은 어떻게 변할까”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학교 저희 미술원, 전통예술원이 옮겨야 되잖아요. 여기의 건물을 오랫동안 쓸 수가 없고, 영원히 쓸 수가 없어서, 언젠가 옮겨야 되는데, 학교에서는 마땅한 부지가 없다고 그러고, 그러다보면, 아 유럽에 있는 어느 대학 도시처럼, 옥스퍼드 대학의 옥스퍼드시 가보셨으면 알겠지만, 그냥 거리에 학교가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냥 거기다 학교를 지으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러다보면 그 주변의 졸업생들이나 재학생들이 계속 활동하고 이러다 보면 극장도 생기고, 아뜰리에도 생기고, 예술공방도 생기고, 카페도 생기고, 그러다 보면 상당히 개발이 안 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예술가 마을이 만들어질 수도 있겠구나. 이런 생각도 했어요. 그래서 이런 프로젝트를 시도해보려고 했던 거고, 저 입장에서야 정말 한예종에 재직하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 이 주변에 있는 돌곶이-의릉 일대, 석관동 일대가 역사, 문화, 생태, 세 가지 키워드로 잘 변화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고, 그런 점에서 이번 프로젝트가 아마도 미래의 20년, 30년 후를 생각하는 첫 번째 출발점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 프로젝트를 하게 됐고요, 이 결과물이 앞으로 어떻게 쓰여질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런 식으로 미래의 한예종, 미래의 석관동-돌곶이의 어떤 거를 만드는데, 기초자료가 되지 않을까. 이제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되고요. 자연스럽게 제가 사회자이기도 하지만은 한예종에서 연구했던 선생님들 참여가 어려웠기 때문에, 제가 대신 말씀드리는 거구요.
그 얘기를 먼저 해봤으면 좋겠어요. 순서대로 하지 마시고 편하게 했으면 좋겠는데, 저는 이 돌곶이-의릉-한예종 일대에 대한 인상이 있어요. 첫인상이라고 할까 그런 게 있는데, 여기 하면 딱 떠오르는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현재의 한예종-의릉-돌곶이-석관동 지역이 갖는 첫인상이라고 할까요 그런 것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이야기를 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준희: 여기서는 제가 제일 처음이 아닐까 싶어요.
이동연: 언제 입학하셨죠?
이준희: 저는 97학번으로 들어왔죠. 97학번으로 들어오긴 했는데, 96년도에 일이 있어서 이쪽에 온 기억이 있어요. 그때 당시에는 미술원만 이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요. 그때 97,96년도 하고, 2000년도 하고 느낌이 확 달랐고요. 2000년도 하고 2004,2005년도 다르고, 지금도 확 다른 것 같아요. 처음에 왔을 때는 여기 앞에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그 술집, 실비집만 …… 일명 장미집, 그런 집만 쫙 있었고, 지금 그 슈퍼 옆에 김밥천국인가 거기에 슈퍼가 있었어요. 거기에서 쪼끔한 오뎅이랑 삶은 계란만 팔고, 김밥 대충 있는 것만. 그게 끝이었거든요 그때는. 그리고 그때 당시에는 이 학교에 주민들이 아무도 안 들어 왔었어요. 아직 안기부도 남아 있었고, 그래서 분위기가 거의 사람이 없었어요. 여기가. 그래서 되게 음습한 분위기가 있으면서, “미술원은 역시 이런 데서 있는 게 어울려!” 우리끼리 (말했죠). 그 때 연극원은 국립극장 근처에 있었고, 음악원만 저쪽에 있었고. 그래서 분위기가 여기만 왠지 음습하고 찝찝하고 사람도 없고, 그런 것만 느끼고 왠지 있고 싶지 않고. 그러다가 97년도에, 96년도에 이사하고 97년도에 여기 와서 안에 들어왔을 때, 그때 저희 학생들이 충격을 좀 받았죠. 내부시설도 그렇고, 진짜 안기부 건물 그대로 받았으니까. “아! 꼭 이런 데서 해야 되나”, “귀신 나타났다!” 이런 얘기 되게 많고. 주민들과의 관계는 정말 관심 없고, 주민들이 “여기 한예종이 들어와서 뭘 한다!” 라는 것도 전혀 관심 없고요. 학생 수도 많지 않고. 그러다가 그냥 조용조용 다니다가, 2000년도 돼서 여기 변화가 주민들이 산책을 하러 오는 게 시작됐죠. 그러면서 이 내부적으로도 미술원이 왔다가, 연극원이 들어왔다가, 미술원이 다시 이쪽으로 왔다가, 전통예술원 들어왔다가, 이렇게 사람들 숫자가 많아지면서 주민들이 약간 기대감 “어! 이제 여기 학생들이 많아지니까, 호프집 열거나, 밥집 열면 수입이 나아지려나보다”라는 기대감으로 외부에서 호프집 내고 그랬어요. 근데 다 망했죠. 그래서 되게 힘들어 했어요. 그래서 술 한 잔 먹으러 가면 상가 주인 사장님들이 다 힘들어하고, 사람들 없으니까 너무 힘들어하고, 저희들이 격려하면서 “곧 올 겁니다. 정원수 늘어날 겁니다” 이런 분위기. 그래서 배달만 열심히 해 주고 그랬죠. 그러다가 2005년쯤 되니까 학생들이 확실히 많아졌고, 기숙사도 그 사이에 셋팅이 거의 다 됐고, 정원수도 보니까 점점 늘어났고, 그래서 주변에 확실히 많은 것들이 생기더라고요. 그니까 그 전에 제가 여기의 느낌은 로컬에 대한 개념이 굉장히 학교 내용적으로 강했고, 국내의 대단한 그런 거에 되게 강했고, 지역은 이 동네는 별 도움 안 되는. 근데 공원이 좀 만들어지니까 산책하러 많이 오시는 정도. 진척 관계는 없었죠. 침침하다가 주민들이 좀 보이기 시작하다가 그러다 학생 수가 좀 많아졌다 그 외에는 …… 그러나 이제는 문화재청과의 어디로 갈지 모르는, 그런 불안함 속에 있었던. 그런 과정이었던 거 같아요. 제가 봤을 때는.
김지영: 사실 입학했을 때 이 동네에서 느껴지는 게, 저희 학교랑 주민간의 벽이 되게 높다는 거를 느꼈는데, 그래서 사실 한예종 학생들의 특성 상 자기 작업할 시간도 바쁘고 이래서 관심이 없었는데,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조사도 맘대로 해 보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되는 것들도 많아서 그런 점을 많이 배웠는데, 저희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이 논점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이동연: 그리고 김희규 학생?
김희규: 저도 일단 학교생활을 하면서 타 대학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국예술종합학교가 돌곶이라는 그 지역 커뮤니티와 많은 교류가 없다는 것을 학교 다니면서 많이 느끼게 되었는데, 건축과에서 공부를 하면서 이런 지역성에 대한 고민을 해야 된다는 거를 배우면서, 학교에서 이 돌곶이에 관한 고민들, 걱정들을 하고 있고, 또 거기에 대한 이런 직접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거에 대해서도 굉장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또 거기에 참여한 거에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동연: 예. 이 프로젝트를 제안한 사람이 전데, 제가 이 학교 근무한 지가 10년째 쯤 되나요? 그런 것 같은데, 맨날 학교 출퇴근하면서 항상 한화제약 있는 그 좁은 골목을 차를 타고 오는 경우가, 차를 몰고 올 때는 그런 경우가 되게 많고, 또 걸어올 때도 항상 버스정류장에서 내려가지고 쭉 올라오는데, 묘한 느낌이 있는 거예요. 하나는 너무 지저분하고, 학교 주변의 공간치고는 완전히 슬럼화되어 있는 데고, 한편으로는 야~ 서울에 이런 데가 있을까 할 정도로 개발이 안 되다보니까, 뭔가 좀 사람들하고 직접 얘기는 안 해봤지만, 따뜻한 정 같은 것도 느끼게 되고, 그러면서 오히려 안기부가 들어오고 의릉이 들어서면서, 이 주변이 개발이 안 된게, 잠재적으로는 상당한 도시공간으로서의 잠재성이 있겠구나라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내다가, “아 만약에 이게 20년 후의 이 공간은 어떻게 변할까”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학교 저희 미술원, 전통예술원이 옮겨야 되잖아요. 여기의 건물을 오랫동안 쓸 수가 없고, 영원히 쓸 수가 없어서, 언젠가 옮겨야 되는데, 학교에서는 마땅한 부지가 없다고 그러고, 그러다보면, 아 유럽에 있는 어느 대학 도시처럼, 옥스퍼드 대학의 옥스퍼드시 가보셨으면 알겠지만, 그냥 거리에 학교가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그냥 거기다 학교를 지으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러다보면 그 주변의 졸업생들이나 재학생들이 계속 활동하고 이러다 보면 극장도 생기고, 아뜰리에도 생기고, 예술공방도 생기고, 카페도 생기고, 그러다 보면 상당히 개발이 안 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예술가 마을이 만들어질 수도 있겠구나. 이런 생각도 했어요. 그래서 이런 프로젝트를 시도해보려고 했던 거고, 저 입장에서야 정말 한예종에 재직하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 이 주변에 있는 돌곶이-의릉 일대, 석관동 일대가 역사, 문화, 생태, 세 가지 키워드로 잘 변화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고, 그런 점에서 이번 프로젝트가 아마도 미래의 20년, 30년 후를 생각하는 첫 번째 출발점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 프로젝트를 하게 됐고요, 이 결과물이 앞으로 어떻게 쓰여질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런 식으로 미래의 한예종, 미래의 석관동-돌곶이의 어떤 거를 만드는데, 기초자료가 되지 않을까. 이제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되고요. 자연스럽게 제가 사회자이기도 하지만은 한예종에서 연구했던 선생님들 참여가 어려웠기 때문에, 제가 대신 말씀드리는 거구요.
그 얘기를 먼저 해봤으면 좋겠어요. 순서대로 하지 마시고 편하게 했으면 좋겠는데, 저는 이 돌곶이-의릉-한예종 일대에 대한 인상이 있어요. 첫인상이라고 할까 그런 게 있는데, 여기 하면 딱 떠오르는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현재의 한예종-의릉-돌곶이-석관동 지역이 갖는 첫인상이라고 할까요 그런 것들이 어떤 것이 있는지 이야기를 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준희: 여기서는 제가 제일 처음이 아닐까 싶어요.
이동연: 언제 입학하셨죠?
이준희: 저는 97학번으로 들어왔죠. 97학번으로 들어오긴 했는데, 96년도에 일이 있어서 이쪽에 온 기억이 있어요. 그때 당시에는 미술원만 이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요. 그때 97,96년도 하고, 2000년도 하고 느낌이 확 달랐고요. 2000년도 하고 2004,2005년도 다르고, 지금도 확 다른 것 같아요. 처음에 왔을 때는 여기 앞에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그 술집, 실비집만 …… 일명 장미집, 그런 집만 쫙 있었고, 지금 그 슈퍼 옆에 김밥천국인가 거기에 슈퍼가 있었어요. 거기에서 쪼끔한 오뎅이랑 삶은 계란만 팔고, 김밥 대충 있는 것만. 그게 끝이었거든요 그때는. 그리고 그때 당시에는 이 학교에 주민들이 아무도 안 들어 왔었어요. 아직 안기부도 남아 있었고, 그래서 분위기가 거의 사람이 없었어요. 여기가. 그래서 되게 음습한 분위기가 있으면서, “미술원은 역시 이런 데서 있는 게 어울려!” 우리끼리 (말했죠). 그 때 연극원은 국립극장 근처에 있었고, 음악원만 저쪽에 있었고. 그래서 분위기가 여기만 왠지 음습하고 찝찝하고 사람도 없고, 그런 것만 느끼고 왠지 있고 싶지 않고. 그러다가 97년도에, 96년도에 이사하고 97년도에 여기 와서 안에 들어왔을 때, 그때 저희 학생들이 충격을 좀 받았죠. 내부시설도 그렇고, 진짜 안기부 건물 그대로 받았으니까. “아! 꼭 이런 데서 해야 되나”, “귀신 나타났다!” 이런 얘기 되게 많고. 주민들과의 관계는 정말 관심 없고, 주민들이 “여기 한예종이 들어와서 뭘 한다!” 라는 것도 전혀 관심 없고요. 학생 수도 많지 않고. 그러다가 그냥 조용조용 다니다가, 2000년도 돼서 여기 변화가 주민들이 산책을 하러 오는 게 시작됐죠. 그러면서 이 내부적으로도 미술원이 왔다가, 연극원이 들어왔다가, 미술원이 다시 이쪽으로 왔다가, 전통예술원 들어왔다가, 이렇게 사람들 숫자가 많아지면서 주민들이 약간 기대감 “어! 이제 여기 학생들이 많아지니까, 호프집 열거나, 밥집 열면 수입이 나아지려나보다”라는 기대감으로 외부에서 호프집 내고 그랬어요. 근데 다 망했죠. 그래서 되게 힘들어 했어요. 그래서 술 한 잔 먹으러 가면 상가 주인 사장님들이 다 힘들어하고, 사람들 없으니까 너무 힘들어하고, 저희들이 격려하면서 “곧 올 겁니다. 정원수 늘어날 겁니다” 이런 분위기. 그래서 배달만 열심히 해 주고 그랬죠. 그러다가 2005년쯤 되니까 학생들이 확실히 많아졌고, 기숙사도 그 사이에 셋팅이 거의 다 됐고, 정원수도 보니까 점점 늘어났고, 그래서 주변에 확실히 많은 것들이 생기더라고요. 그니까 그 전에 제가 여기의 느낌은 로컬에 대한 개념이 굉장히 학교 내용적으로 강했고, 국내의 대단한 그런 거에 되게 강했고, 지역은 이 동네는 별 도움 안 되는. 근데 공원이 좀 만들어지니까 산책하러 많이 오시는 정도. 진척 관계는 없었죠. 침침하다가 주민들이 좀 보이기 시작하다가 그러다 학생 수가 좀 많아졌다 그 외에는 …… 그러나 이제는 문화재청과의 어디로 갈지 모르는, 그런 불안함 속에 있었던. 그런 과정이었던 거 같아요. 제가 봤을 때는.
이동연: 학생들은 입학하고선 이 동네 첫인상, 느낌이 어땠어요?
김지영: 충격
이동연: 충격이었어요?
김지영: 네. 한예종 입학하기 전에 되게 뭔가 로망이 있잖아요. 근데 본관, 그쪽은 되게 멋있는데, 나갔을 때, 다른 데 있는 그런 느낌. 일단 서울, 이런 데도 와 본 적도 별로 없고, 집 주거 형태도 낯설고 …….
이동연: 대부분 다 입학 전에는 아파트 생활하셨죠? 이런 경우는 흔치 않은 공간 …… 김희규 학생은 인상이 어땠어요?
김희규: 저는 일단 외대를 먼저 거쳐서 여기를 왔었는데요. 외대 앞만 해도 일반 사람들이 말하는 대학가의 풍경들이, 상권이 많이 활성화되고, 학생들도 많이 다니고. 근데 학교 입학하자마자 보니까 이게 굉장히 어디서 떼 온 것 마냥, 어떤 맥락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완전히 딴 세상 같은 세상이 하나 펼쳐져 있는데, 이제는 근데 좀 어느 정도 이 지역의 역사나 학교, 학생들의 생활 같은 거 이해하면서, “이 지역이 왜 이렇게 됐나” 이해는 갔지만, 사실 처음엔 되게 부정적이었는데 이제 학교를 다니고, 이런 연구도 하고, 사람들 주민도 만나고,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 게 아니라 긍정적인 영향으로 바꿀 수 있는 그런 잠재력이 많은 곳이라는 것.
이동연: 네. 그 얘긴 나중에 좀 더 해주시고요. 이원재 처장님은?
이원재: 저는 아마 유일하게 여기에서 생활을 안 해본 사람인 것 같은데, 여기 학교 출신도 아니고. 저는 아는 분들이 여기 재직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자주 드나든 건데, 일단 저는 오히려 제가 더 객관적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제 세대만 해도 한예종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죠. 사실 저도 문화연대에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거고, 사실 최근 지난 10년 사이에 한예종이 한국사회에서 굉장히 많은 이슈와 여러 모로 뛰어난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문화 정책적으로 쟁점도 많이 됐었고, 이런 부분들이 근래에 많이 알려졌다고 생각이 돼요. 근데 예전에 처음 든 생각은 저는 돌연변이 이런 느낌도 많이 들었고, 예술계 학제 안에서도 그렇고 한국 사회에서도 그렇고 “한예종은 돌연변이다”라는 느낌이 제가 봤을 땐 많이 들고요. 그 안에는 많은 긍정성들이 있고, 이질성들도 있는 것 같아요. 원래 애초에 만들어진 학교의 모델링 자체도 기존의 다른 학교와 다른 방식이었으니까 그런 것 같고. 그런 면에서 여기를 처음 왔을 때는 저는 그렇게 그게 충격적이지 않았어요. 지역도 저는 슬럼화된 곳을 많이 봐서. 근데 저는 학교 안이 굉장히 충격, 학생들의 모습이 충격적이었어요. 왜냐하면 저도 학교 강의도 많이 가보고 학교도 여러 곳을 다녔는데, 보면 대학 같지 않은, 학생들이 일단 없고 캠퍼스에, 그 다음에 학생들이 대부분 대학생 같지 않고, 물론 기본적으로 연령대도 높지만. 제가 제일 많이 했던 질문이 “한예종 학생들은 왜 그렇게 우울해 보여요?”. 이게 제일 많이 학생들이나 교수들한테 했던 질문인데, 제일 많은 객관적인 서베이나 제일 많이 들었던 대답은 “작업량이 많다”, “다른 학교처럼 캠퍼스 생활을 즐길 시간이 없고, 이게 되게 하드웍이다. 기본적으로 학습량이 많다. 어떤 원이든”. 저는 그게 더 충격적이었어요. 이 지역이 슬럼하고 이런 것보다는 캠퍼스 안이 캠퍼스 안 같지 않은. 물론 그건 무덤과 안기부로 설명하시는 분도 많이 계시지만, 그 기운이 있어서 그렇다는 것도 있지만. 어쨌든, 전반적으로 캠퍼스 분위기가 안 나는, 그런 것들이……. 저는 아까 음습하다고 표현했는데, 저는 되게 그로테스크하게 보였어요. 근데 “어떻게 그렇게 창의적인 작업이 여기서 나오지?” 이런 거 있잖아요. 다 슬퍼 보이고 우울해 보이고 고난해(?) 보이는데. 제가 같이 작업했던 친구들이나 이런 분들도 한예종 출신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문화재단이나 예술원 이런 쪽도. 그런 것들이 신기한 것 같고. 그 다음에는 뭐 그런 거에서 실험성 같은 것들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예술적 실험성 이런 것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동연: 예. 제가 느낀 첫인상은 몇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이제 약간 주변이 저도 물론 부유층 자제는 아니지만, 그 주변이 한 70년대 영화 세트장 같은 느낌이 든 거예요. 울랄라 빈대떡. 옛날에 지금은 있지만 토프레소라든지 이런 돈치킨, 이런 좀 세련된 그런 건 없었고, 오로지 일단은 울랄라 빈대떡이랑 김밥천국이었거든요. 제가 봤을 땐, 근데 이제 완전히 70년대 세트장 분위기가 확 났었고, 그 다음에 두 번째는 학교인데, 제가 학교에 처음 부임했을 때, 학교에 일찍 다녀야 할 것 같아서 일찍 왔는데, 학교에 아주머니들이 막 돌아다녀요 학교에. 그리고 등산했다가, 일층 로비에서 커피 타 마시고, 챙모자 쓰시고 왔다갔다 하시고, 그래서 “이게 학교인가?”. 너무 자연스럽게 들락날락 거리시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아까도 계속 말씀드리지만은 옛날에 돌곶이역이 없었어요. 돌곶이역부터 학교까지 나 있는 사잇길, 그게 옛날에는 메인도로였대요. 사잇길에 보면 아까 영화 세트장처럼 느꼈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서울시에서 볼 수 없는 그게 많아요. 점집부터 해서 기름집, 쌀집, 방앗간,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런 자그마한 상점들이지만 어렸을 때, 제가 초등학생들 봤던 상가 이름부터 상가 이미지 이런 것들을 보존하고 있어서, “야~ 이건 또 다른 안동하회마을인가” 이런 생각도 좀 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차원에서 인상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그런 것들이 앞서서 제가 말씀드렸던 대로, “한예종 주변을 예술가 마을로 만드는 데 있어서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을 좀 해봅니다. 혹시 이와 관련해서 다른 분들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이동연: 학생들은 입학하고선 이 동네 첫인상, 느낌이 어땠어요?
김지영: 충격
이동연: 충격이었어요?
김지영: 네. 한예종 입학하기 전에 되게 뭔가 로망이 있잖아요. 근데 본관, 그쪽은 되게 멋있는데, 나갔을 때, 다른 데 있는 그런 느낌. 일단 서울, 이런 데도 와 본 적도 별로 없고, 집 주거 형태도 낯설고 …….
이동연: 대부분 다 입학 전에는 아파트 생활하셨죠? 이런 경우는 흔치 않은 공간 …… 김희규 학생은 인상이 어땠어요?
김희규: 저는 일단 외대를 먼저 거쳐서 여기를 왔었는데요. 외대 앞만 해도 일반 사람들이 말하는 대학가의 풍경들이, 상권이 많이 활성화되고, 학생들도 많이 다니고. 근데 학교 입학하자마자 보니까 이게 굉장히 어디서 떼 온 것 마냥, 어떤 맥락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완전히 딴 세상 같은 세상이 하나 펼쳐져 있는데, 이제는 근데 좀 어느 정도 이 지역의 역사나 학교, 학생들의 생활 같은 거 이해하면서, “이 지역이 왜 이렇게 됐나” 이해는 갔지만, 사실 처음엔 되게 부정적이었는데 이제 학교를 다니고, 이런 연구도 하고, 사람들 주민도 만나고,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 게 아니라 긍정적인 영향으로 바꿀 수 있는 그런 잠재력이 많은 곳이라는 것.
이동연: 네. 그 얘긴 나중에 좀 더 해주시고요. 이원재 처장님은?
이원재: 저는 아마 유일하게 여기에서 생활을 안 해본 사람인 것 같은데, 여기 학교 출신도 아니고. 저는 아는 분들이 여기 재직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자주 드나든 건데, 일단 저는 오히려 제가 더 객관적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제 세대만 해도 한예종을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죠. 사실 저도 문화연대에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거고, 사실 최근 지난 10년 사이에 한예종이 한국사회에서 굉장히 많은 이슈와 여러 모로 뛰어난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문화 정책적으로 쟁점도 많이 됐었고, 이런 부분들이 근래에 많이 알려졌다고 생각이 돼요. 근데 예전에 처음 든 생각은 저는 돌연변이 이런 느낌도 많이 들었고, 예술계 학제 안에서도 그렇고 한국 사회에서도 그렇고 “한예종은 돌연변이다”라는 느낌이 제가 봤을 땐 많이 들고요. 그 안에는 많은 긍정성들이 있고, 이질성들도 있는 것 같아요. 원래 애초에 만들어진 학교의 모델링 자체도 기존의 다른 학교와 다른 방식이었으니까 그런 것 같고. 그런 면에서 여기를 처음 왔을 때는 저는 그렇게 그게 충격적이지 않았어요. 지역도 저는 슬럼화된 곳을 많이 봐서. 근데 저는 학교 안이 굉장히 충격, 학생들의 모습이 충격적이었어요. 왜냐하면 저도 학교 강의도 많이 가보고 학교도 여러 곳을 다녔는데, 보면 대학 같지 않은, 학생들이 일단 없고 캠퍼스에, 그 다음에 학생들이 대부분 대학생 같지 않고, 물론 기본적으로 연령대도 높지만. 제가 제일 많이 했던 질문이 “한예종 학생들은 왜 그렇게 우울해 보여요?”. 이게 제일 많이 학생들이나 교수들한테 했던 질문인데, 제일 많은 객관적인 서베이나 제일 많이 들었던 대답은 “작업량이 많다”, “다른 학교처럼 캠퍼스 생활을 즐길 시간이 없고, 이게 되게 하드웍이다. 기본적으로 학습량이 많다. 어떤 원이든”. 저는 그게 더 충격적이었어요. 이 지역이 슬럼하고 이런 것보다는 캠퍼스 안이 캠퍼스 안 같지 않은. 물론 그건 무덤과 안기부로 설명하시는 분도 많이 계시지만, 그 기운이 있어서 그렇다는 것도 있지만. 어쨌든, 전반적으로 캠퍼스 분위기가 안 나는, 그런 것들이……. 저는 아까 음습하다고 표현했는데, 저는 되게 그로테스크하게 보였어요. 근데 “어떻게 그렇게 창의적인 작업이 여기서 나오지?” 이런 거 있잖아요. 다 슬퍼 보이고 우울해 보이고 고난해(?) 보이는데. 제가 같이 작업했던 친구들이나 이런 분들도 한예종 출신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문화재단이나 예술원 이런 쪽도. 그런 것들이 신기한 것 같고. 그 다음에는 뭐 그런 거에서 실험성 같은 것들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예술적 실험성 이런 것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이동연: 예. 제가 느낀 첫인상은 몇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이제 약간 주변이 저도 물론 부유층 자제는 아니지만, 그 주변이 한 70년대 영화 세트장 같은 느낌이 든 거예요. 울랄라 빈대떡. 옛날에 지금은 있지만 토프레소라든지 이런 돈치킨, 이런 좀 세련된 그런 건 없었고, 오로지 일단은 울랄라 빈대떡이랑 김밥천국이었거든요. 제가 봤을 땐, 근데 이제 완전히 70년대 세트장 분위기가 확 났었고, 그 다음에 두 번째는 학교인데, 제가 학교에 처음 부임했을 때, 학교에 일찍 다녀야 할 것 같아서 일찍 왔는데, 학교에 아주머니들이 막 돌아다녀요 학교에. 그리고 등산했다가, 일층 로비에서 커피 타 마시고, 챙모자 쓰시고 왔다갔다 하시고, 그래서 “이게 학교인가?”. 너무 자연스럽게 들락날락 거리시는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아까도 계속 말씀드리지만은 옛날에 돌곶이역이 없었어요. 돌곶이역부터 학교까지 나 있는 사잇길, 그게 옛날에는 메인도로였대요. 사잇길에 보면 아까 영화 세트장처럼 느꼈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서울시에서 볼 수 없는 그게 많아요. 점집부터 해서 기름집, 쌀집, 방앗간,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런 자그마한 상점들이지만 어렸을 때, 제가 초등학생들 봤던 상가 이름부터 상가 이미지 이런 것들을 보존하고 있어서, “야~ 이건 또 다른 안동하회마을인가” 이런 생각도 좀 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 차원에서 인상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그런 것들이 앞서서 제가 말씀드렸던 대로, “한예종 주변을 예술가 마을로 만드는 데 있어서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을 좀 해봅니다. 혹시 이와 관련해서 다른 분들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이동연: 혹시 이와 관련해서 다른 분들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이 지역의 인상, 학교의 첫 번째 인상이라든지, 또 느낀 점이라든지. 없으시면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은데요, 본격적으로 저희가 돌곶이 문화지도를 현장답사 이런 것들에 대한,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느꼈던 점, 재미났던 점, 이런 것들을 좀 말씀드리고 싶은데, 주로 아마 현장에 참여했던 분들이 먼저 얘기를 해주시고, 그 부분에 대해서 좀 코멘트를 같이 해도 좋겠습니다. 저희가 처음에는 이제 몇 번 답사를 했어요. 이종호 선생님하고 이승엽 선생님, 심광현 선생님, 저 이렇게 해서 학생들하고 같이 요 주변 일대를 두세 차례, 이렇게 걸어 다니면서 쭉 봤고요. 그때 이원재 처장도 같이 참여했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문화지도라는 게 기본적으로 현장답사를 통해서만 이뤄지는 거니깐, 먼저 그 얘기를 좀 하고 싶습니다. 작은 별자리를 그린 현장연구원들은 어떤 작업을 하고, 어떤 에피소드들이 있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윤상정: 별자리라는 게 되게 처음에 서두에도 썼지만, 어떤 네 개의 큰 별자리가 공통으로 거기에 마련된 장소, 비슷하게 기억이나 그런 게 존재할 수 없는 영역이라면, 작은 별자리는 자기가 돌아다니면서 그런 작은 별자리들이 많이 생겨가지고, 그것들이 서로 같이 많이 보다 보면 이 동네 좀 더 풍성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했고요. 특별한 에피소드라면 만신 김구만(‘김금화’의 誤記) 선생님이 유명하셔서, 찾아뵙고 만나려고 계속 시도를 했는데 바쁘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만나뵙지 못했고요. 그 때 월추암에 다른 할머니를 찾아뵈었더니, “쓸데없이 이런 데 돈 쓰지 말고 가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고요. 그리고 제가 작은 별자리를 하면서 중점적으로 했던 거는 다섯 가지인데요, 하나는 공동의 역사 같은 거고, 개인의 경험,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상징 부분이 자의적일 수밖에 없잖아요. 별자리를 그린다는 게. 그래서 상징이 하나 들어갔고, 마지막으로 의미와 전망인데요. 그래서 이게 돌곶이라는 동네가 어떤 의미를 갖고, 앞으로 어떻게 같이 할 수 있을까 그것까지 덧붙이는 거까지 작업을 했습니다.
이동연: 예. 그럼 몇 군데 돌아다닌 거예요? 점집은?
윤상정: 직접 들어가 본 데는 월추암 한 군데요.
이동연: 한 군데고, 나머지는 서베이하고 그런 ……?
윤상정: 돌아다니면서 밖에서만 사진 찍고, 이런 식으로.
이동연: 김세현 학생은 주로 여기 이면도로, 화랑로를 돌아다닌 것 같은데, 전반적인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어요.
김세현: 저는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아까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지금 눈에 들어오는데, 돌곶이역 주변이랑 럭키 할인마트 주변으로는 보통의 상권들, 카페나 그런 편의점, 그리고 대학가에 항상 들어오는 원룸들이 지금 이제 막 난입하고 있는 상황이고, 그 이면도로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제가 둘러봤던 구멍가게나 옛날 미용실이나 오래된 여관 이런 것들이 공존해 있는 상태인데, 왠지 모르게 조금씩 더 그런 상권들이 그 이면도로 안쪽으로 조금조금씩 밀려오고 있는 게 느껴져서, 그런 부분들이 돌곶이 생태라는 측면에서 생각하게 됐던 게 있고, 그게 전반적인 느낌이었고. 제가 둘러본 곳은 첫 번째로는 봉제였는데, 봉제공장이나 그런 미싱공장들이 여기 위치하게 된 역사적인 맥락이나 그런 것도 알게 됐지만, 가능성 측면에서 보자면 한예종이랑 교류가 있었다는 점, 그 점에서 조금 저희가 적극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을까. 가령 예를 들면, 그쪽에서 연희과나 무대미술과 쪽이랑 작은 자재나 부품 같은 거래가 많지는 않지만, 조금씩 있어왔다라는 얘기를 들었고, 또 이면도로 안쪽으로 들어왔을 때 오래된 여관이나 구멍가게 같은 경우에는, 제 입장에서 볼 때는 오래된 것들이 경제논리나 그런 것들에 의해서 바뀌지 않고, 어떻게 나쁘게 말하자면 방치된 걸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을 예술적인 소스나 영감으로 작업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제가 느낀 점은 그 정도였습니다.
이동연: 저는 이제 적어도 화랑로 일대의 배치되어 있는 다양한 형태의 작은 별자리들을 보게 되면, 상당히 어지럽게 되어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그걸 보면 그 자체의 역사적 결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알다시피 여기 매미집, 방석집이라고이라고 하는 허름한 맥주집 같은 게 있잖아요? 그게 형성된 배경에는 안기부라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거든요. 안기부 직원들이 밤에 술 먹고, 자기 딴에는 스트레스를 풀거나, 권력의 욕망 같은 것을 배출하는 음습한 공간이었고, 그게 여전히 지금까지 지속되어 있고, 보시면 아시겠지만 평일 날에는 별로지만, 금요일 밤에는 주차가 항상 되어 있어요. 보면 퇴근하는 차량이 불편할 정도로 차가 대 있는데. 어쨌든 미우나 고우나 영업은 되고 있는 상황인 건데, 그게 여전히 없어질 기미는 없다는 거죠. 어떻게 보면 안기부 효과가 드러난 거라고 볼 수 있겠고, 그로 인해서 개발 안 된 주변지역의 동대문 창신동에서 밀려난 봉제공장들, 오버로꾸, 미싱상들이 어지럽게 되어 있고, 개발이 안 되다보니까 다세대 주택으로 형성된, 예컨대 90년대 초반의 주택이 그대로 형태를 유지하면서 살다보니까 당연히 그 주택 구조가 안 변하니까, 그 주택을 상대로 했던 가게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거죠. 수퍼마켓, 구멍가게, 작은 여관, 기름집부터 해서 그게 어떻게 보면 되게 생태적인 거죠.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돌곶이역 주변으로 반경 100미터로 보면, 흔히 우리가 대학가에서 볼 수 있는 아니면 도심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카페부터 해서 커피전문점, 그 공간하고 어울리지 않는 음식점들 …… 이 돌곶이문화지도를 그릴 때 저희도 물론 참고하긴 했지만, 전반적인 이 일대가 어떻게 크게 구성되고 있는가에 대한, 또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에 대한 이런 얘기 좀 하고 싶은데, 건축과 학생들 먼저 저거 했었죠? 큰 별자리 그림 작업 했었죠? 크게 보면 이제 역하고 길하고 그 다음에 정류장, (정류장하고 역하고 마찬가지죠) 그리고 면적하고, 주택 이렇게 네 가지를 잡았는데, 조사해 본 결과로서는 이 지역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세요?
김지영: 일단 주택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학교 주변에 한예종이 있고, 돌곶이가 있으면, 그 접해 있는 부분은 아직도 그 예전 70년대 있던 주택들이 가장 밀집되어 있는데, 그 넘어서 이쪽 바깥으로 나가거나 외대 쪽으로 나갈수록 외대 오피스텔에 대학생이 들어서고, 그 다음에 역 쪽으로 개발이 되면서 점점 오피스텔이든 높이가 점점 높아지고, 그리고 아파트가 새로 분양되고, 이러면서 작은 변화들이 있긴 한 거 같아요. 근데 그런 건 발전되는 게 좋긴 한 것 같은데, “래미안부터 올라오면 저희 지역만의 특색이 없어지지 않을까” 그런 걱정이 되고, 주택은 그렇게 봤고요.
이동연: 역은 어떤가요? 역하고 정류장. 지하철 이런 것들, 동선 이런 것들. 돌곶이, 신이문역, 상월곡역, 그 다음에 버스정류장, 마을버스 정류장, 특별한 특색이 있는 건?
김희규: 특색이라고 그러면 일단, 저희 학교 근처에 크게 세 개의 역이 있는데, 돌곶이역이 있고, 신이문역이 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역이라고 불리는, 그리고 밑에 외대앞역이 있는데, 크게 말해서 이제 학교와 가장 연관이 깊은 건 돌곶이 지역이고요. 가장 많은 학생이 그 역을 통해서 등교를 하는데, 이제 외대앞역은 거의 80,90퍼센트가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상가 건물들이 주로 포진이 되어 있는 반면에, 돌곶이역은 학생보다는 돌곶이 주민분들에 대한, 신이문역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까 역을 다가가 보면 사람들의 동선보다도 역세권에 대한 예가 좀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이제 조금 돌곶이역, 신이문역이 다른 역보다, 대학 근처에 있는 역임에도 그런 특색이 있다는 것을 조사했어요.
이동연: 보통 등교할 때 어떻게 와요? 집에서. 예를 들면 여기까지 오는 동선을 설명하면 어떻게 될까요?
김지영: 선생님이 아까 말씀하셨던, 돌곶이에서 그 길로 많이 오는 것 …… (이동연: 걸어서?) 걸어오는 학생도 많이 있는데, 사실 거길 지나다니기 꺼려하는 학생도 많아서, 돌곶이에서 나와서 학교 내부로 들어와서 …….
이동연: 아 네. 미술원 같은 경우도, 전통원도. 관통해서 오는. 주로 전철로 많이 이동.
김지영: 네 저는 후문으로 나가서 래미안 앞에 마을버스 타고, 외대역으로 가거나, 회기역으로 가요.
이동연: 네. 옛날에는 신이문역에서 많이 내리지 않았나요? 학생들이. 저만 하더라도, 외대역앞보다는 신이문에서 많이 내려가지고, 스쿨버스 (물론 얼마 안 다니지만은) 스쿨버스나 걸어서 오는데, 이게 후문이 뚫리면서 아마 많은 학생들이 외대역, 저도 이제 외대역 앞에서 내리거든요. 마을버스 타고 이렇게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많이 달라진 풍토가 아닌가 ……. (김지영: 이제는 신이문 잘 안 가는 ……) 거의 안 가죠. 이예슬 학생은 어떻게 와요?
이예슬: 저도 전통원에서 수업 있을 때는 외대는 회기역에서 내려서 마을버스 타고 오고, 연극원 수업이 있을 때는 돌곶이역이요.
이동연: 걸어다니는 경우는 과거에 없어요? 예를 들면 학교를 관통하지 말고, 그 샛길로 간다거나, 말해서 이 일대를 등굣길로 삼는 경우가 있나요?
이예슬: 아니요. 저는 위험한 것 같아서, 잘 안다닌 것 같아요. 누리 그런 데 보면 여학생들 같은 경우는 치한을 만났다거나, 그런 글들이 나와서, 밤에 잘 안 다니고 그런 샛길로 안 다니게 되는 것 같아요.
이동연: 사실상 등굣길이라고 하는 게, 길을 활용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길을 많이 연구했던 것 같은데, 건축과에서. 학생들은 길을 많이 찾았는가에 대한, 면적 점유율 같은 것도 표로 만들고 그랬던 거 같은데, 이 지역의 길이 매력 있지 않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김지영: 네. 길이 정돈되어 있지 않은 느낌인데, 그 와중에서도 큰 길에서 상점들은 주민들의 생활이 많이 보이고, 길 바로 마주하고 있는 상점들에서는 활동이 보이는데, 조금만 들어가도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모르겠는, 복잡하게 주택들이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거기를 돌아다니면서 과제를 하면서도, 예를 들어서 과제가 점집의 포진. 이런 걸 해보기도 했고, 거기서 점을 보기도 했는데, 그렇게 소소하게 이야기를 찾는 것은 되게 재미있었어요.
이동연: 길에 대해서 어떻게? 김희규씨가 직접 조사했을 텐데.
김희규; 일단 한예종 주위의 길은 지역의 역사와 관련이 깊기도 하지만, 대학로나 홍대처럼 자본이 깊게 들어오지 않은 곳이어서, 일단 이 돌곶이만의 지역 특색이 될 수 있는 그런 다양한 것들이 거리에 나와 있는데, 이 지역의 자원이 될 만한 수공업들도 되게 많고, 일단 주택가들도 거리가 있지 않고, 다닥다닥 붙어있고, 밀집되어 있는 곳들이 많아서, 주민들 간의 교류도 상당히 많았던 걸로 알고 있고요. 다른 거리에서는 볼 수 없는, 학교 주위에는 있는데, 학교와는 큰 관련이 없지만, 돌곶이만의 특색이 많이 담겨져 있는 길들이 많이 있었어요.
이동연: 혹시 이와 관련해서 다른 분들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이 지역의 인상, 학교의 첫 번째 인상이라든지, 또 느낀 점이라든지. 없으시면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싶은데요, 본격적으로 저희가 돌곶이 문화지도를 현장답사 이런 것들에 대한,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느꼈던 점, 재미났던 점, 이런 것들을 좀 말씀드리고 싶은데, 주로 아마 현장에 참여했던 분들이 먼저 얘기를 해주시고, 그 부분에 대해서 좀 코멘트를 같이 해도 좋겠습니다. 저희가 처음에는 이제 몇 번 답사를 했어요. 이종호 선생님하고 이승엽 선생님, 심광현 선생님, 저 이렇게 해서 학생들하고 같이 요 주변 일대를 두세 차례, 이렇게 걸어 다니면서 쭉 봤고요. 그때 이원재 처장도 같이 참여했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문화지도라는 게 기본적으로 현장답사를 통해서만 이뤄지는 거니깐, 먼저 그 얘기를 좀 하고 싶습니다. 작은 별자리를 그린 현장연구원들은 어떤 작업을 하고, 어떤 에피소드들이 있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윤상정: 별자리라는 게 되게 처음에 서두에도 썼지만, 어떤 네 개의 큰 별자리가 공통으로 거기에 마련된 장소, 비슷하게 기억이나 그런 게 존재할 수 없는 영역이라면, 작은 별자리는 자기가 돌아다니면서 그런 작은 별자리들이 많이 생겨가지고, 그것들이 서로 같이 많이 보다 보면 이 동네 좀 더 풍성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했고요. 특별한 에피소드라면 만신 김구만(‘김금화’의 誤記) 선생님이 유명하셔서, 찾아뵙고 만나려고 계속 시도를 했는데 바쁘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만나뵙지 못했고요. 그 때 월추암에 다른 할머니를 찾아뵈었더니, “쓸데없이 이런 데 돈 쓰지 말고 가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고요. 그리고 제가 작은 별자리를 하면서 중점적으로 했던 거는 다섯 가지인데요, 하나는 공동의 역사 같은 거고, 개인의 경험,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상징 부분이 자의적일 수밖에 없잖아요. 별자리를 그린다는 게. 그래서 상징이 하나 들어갔고, 마지막으로 의미와 전망인데요. 그래서 이게 돌곶이라는 동네가 어떤 의미를 갖고, 앞으로 어떻게 같이 할 수 있을까 그것까지 덧붙이는 거까지 작업을 했습니다.
이동연: 예. 그럼 몇 군데 돌아다닌 거예요? 점집은?
윤상정: 직접 들어가 본 데는 월추암 한 군데요.
이동연: 한 군데고, 나머지는 서베이하고 그런 ……?
윤상정: 돌아다니면서 밖에서만 사진 찍고, 이런 식으로.
이동연: 김세현 학생은 주로 여기 이면도로, 화랑로를 돌아다닌 것 같은데, 전반적인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어요.
김세현: 저는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아까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지금 눈에 들어오는데, 돌곶이역 주변이랑 럭키 할인마트 주변으로는 보통의 상권들, 카페나 그런 편의점, 그리고 대학가에 항상 들어오는 원룸들이 지금 이제 막 난입하고 있는 상황이고, 그 이면도로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제가 둘러봤던 구멍가게나 옛날 미용실이나 오래된 여관 이런 것들이 공존해 있는 상태인데, 왠지 모르게 조금씩 더 그런 상권들이 그 이면도로 안쪽으로 조금조금씩 밀려오고 있는 게 느껴져서, 그런 부분들이 돌곶이 생태라는 측면에서 생각하게 됐던 게 있고, 그게 전반적인 느낌이었고. 제가 둘러본 곳은 첫 번째로는 봉제였는데, 봉제공장이나 그런 미싱공장들이 여기 위치하게 된 역사적인 맥락이나 그런 것도 알게 됐지만, 가능성 측면에서 보자면 한예종이랑 교류가 있었다는 점, 그 점에서 조금 저희가 적극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을까. 가령 예를 들면, 그쪽에서 연희과나 무대미술과 쪽이랑 작은 자재나 부품 같은 거래가 많지는 않지만, 조금씩 있어왔다라는 얘기를 들었고, 또 이면도로 안쪽으로 들어왔을 때 오래된 여관이나 구멍가게 같은 경우에는, 제 입장에서 볼 때는 오래된 것들이 경제논리나 그런 것들에 의해서 바뀌지 않고, 어떻게 나쁘게 말하자면 방치된 걸 수도 있지만, 그런 것들을 예술적인 소스나 영감으로 작업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제가 느낀 점은 그 정도였습니다.
이동연: 저는 이제 적어도 화랑로 일대의 배치되어 있는 다양한 형태의 작은 별자리들을 보게 되면, 상당히 어지럽게 되어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그걸 보면 그 자체의 역사적 결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알다시피 여기 매미집, 방석집이라고이라고 하는 허름한 맥주집 같은 게 있잖아요? 그게 형성된 배경에는 안기부라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거든요. 안기부 직원들이 밤에 술 먹고, 자기 딴에는 스트레스를 풀거나, 권력의 욕망 같은 것을 배출하는 음습한 공간이었고, 그게 여전히 지금까지 지속되어 있고, 보시면 아시겠지만 평일 날에는 별로지만, 금요일 밤에는 주차가 항상 되어 있어요. 보면 퇴근하는 차량이 불편할 정도로 차가 대 있는데. 어쨌든 미우나 고우나 영업은 되고 있는 상황인 건데, 그게 여전히 없어질 기미는 없다는 거죠. 어떻게 보면 안기부 효과가 드러난 거라고 볼 수 있겠고, 그로 인해서 개발 안 된 주변지역의 동대문 창신동에서 밀려난 봉제공장들, 오버로꾸, 미싱상들이 어지럽게 되어 있고, 개발이 안 되다보니까 다세대 주택으로 형성된, 예컨대 90년대 초반의 주택이 그대로 형태를 유지하면서 살다보니까 당연히 그 주택 구조가 안 변하니까, 그 주택을 상대로 했던 가게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거죠. 수퍼마켓, 구멍가게, 작은 여관, 기름집부터 해서 그게 어떻게 보면 되게 생태적인 거죠.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돌곶이역 주변으로 반경 100미터로 보면, 흔히 우리가 대학가에서 볼 수 있는 아니면 도심에서 볼 수 있는 풍경들이 생겨나는 것 같아요. 카페부터 해서 커피전문점, 그 공간하고 어울리지 않는 음식점들 …… 이 돌곶이문화지도를 그릴 때 저희도 물론 참고하긴 했지만, 전반적인 이 일대가 어떻게 크게 구성되고 있는가에 대한, 또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에 대한 이런 얘기 좀 하고 싶은데, 건축과 학생들 먼저 저거 했었죠? 큰 별자리 그림 작업 했었죠? 크게 보면 이제 역하고 길하고 그 다음에 정류장, (정류장하고 역하고 마찬가지죠) 그리고 면적하고, 주택 이렇게 네 가지를 잡았는데, 조사해 본 결과로서는 이 지역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세요?
김지영: 일단 주택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학교 주변에 한예종이 있고, 돌곶이가 있으면, 그 접해 있는 부분은 아직도 그 예전 70년대 있던 주택들이 가장 밀집되어 있는데, 그 넘어서 이쪽 바깥으로 나가거나 외대 쪽으로 나갈수록 외대 오피스텔에 대학생이 들어서고, 그 다음에 역 쪽으로 개발이 되면서 점점 오피스텔이든 높이가 점점 높아지고, 그리고 아파트가 새로 분양되고, 이러면서 작은 변화들이 있긴 한 거 같아요. 근데 그런 건 발전되는 게 좋긴 한 것 같은데, “래미안부터 올라오면 저희 지역만의 특색이 없어지지 않을까” 그런 걱정이 되고, 주택은 그렇게 봤고요.
이동연: 역은 어떤가요? 역하고 정류장. 지하철 이런 것들, 동선 이런 것들. 돌곶이, 신이문역, 상월곡역, 그 다음에 버스정류장, 마을버스 정류장, 특별한 특색이 있는 건?
김희규: 특색이라고 그러면 일단, 저희 학교 근처에 크게 세 개의 역이 있는데, 돌곶이역이 있고, 신이문역이 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역이라고 불리는, 그리고 밑에 외대앞역이 있는데, 크게 말해서 이제 학교와 가장 연관이 깊은 건 돌곶이 지역이고요. 가장 많은 학생이 그 역을 통해서 등교를 하는데, 이제 외대앞역은 거의 80,90퍼센트가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상가 건물들이 주로 포진이 되어 있는 반면에, 돌곶이역은 학생보다는 돌곶이 주민분들에 대한, 신이문역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까 역을 다가가 보면 사람들의 동선보다도 역세권에 대한 예가 좀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이제 조금 돌곶이역, 신이문역이 다른 역보다, 대학 근처에 있는 역임에도 그런 특색이 있다는 것을 조사했어요.
이동연: 보통 등교할 때 어떻게 와요? 집에서. 예를 들면 여기까지 오는 동선을 설명하면 어떻게 될까요?
김지영: 선생님이 아까 말씀하셨던, 돌곶이에서 그 길로 많이 오는 것 …… (이동연: 걸어서?) 걸어오는 학생도 많이 있는데, 사실 거길 지나다니기 꺼려하는 학생도 많아서, 돌곶이에서 나와서 학교 내부로 들어와서 …….
이동연: 아 네. 미술원 같은 경우도, 전통원도. 관통해서 오는. 주로 전철로 많이 이동.
김지영: 네 저는 후문으로 나가서 래미안 앞에 마을버스 타고, 외대역으로 가거나, 회기역으로 가요.
이동연: 네. 옛날에는 신이문역에서 많이 내리지 않았나요? 학생들이. 저만 하더라도, 외대역앞보다는 신이문에서 많이 내려가지고, 스쿨버스 (물론 얼마 안 다니지만은) 스쿨버스나 걸어서 오는데, 이게 후문이 뚫리면서 아마 많은 학생들이 외대역, 저도 이제 외대역 앞에서 내리거든요. 마을버스 타고 이렇게 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게 많이 달라진 풍토가 아닌가 ……. (김지영: 이제는 신이문 잘 안 가는 ……) 거의 안 가죠. 이예슬 학생은 어떻게 와요?
이예슬: 저도 전통원에서 수업 있을 때는 외대는 회기역에서 내려서 마을버스 타고 오고, 연극원 수업이 있을 때는 돌곶이역이요.
이동연: 걸어다니는 경우는 과거에 없어요? 예를 들면 학교를 관통하지 말고, 그 샛길로 간다거나, 말해서 이 일대를 등굣길로 삼는 경우가 있나요?
이예슬: 아니요. 저는 위험한 것 같아서, 잘 안다닌 것 같아요. 누리 그런 데 보면 여학생들 같은 경우는 치한을 만났다거나, 그런 글들이 나와서, 밤에 잘 안 다니고 그런 샛길로 안 다니게 되는 것 같아요.
이동연: 사실상 등굣길이라고 하는 게, 길을 활용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길을 많이 연구했던 것 같은데, 건축과에서. 학생들은 길을 많이 찾았는가에 대한, 면적 점유율 같은 것도 표로 만들고 그랬던 거 같은데, 이 지역의 길이 매력 있지 않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김지영: 네. 길이 정돈되어 있지 않은 느낌인데, 그 와중에서도 큰 길에서 상점들은 주민들의 생활이 많이 보이고, 길 바로 마주하고 있는 상점들에서는 활동이 보이는데, 조금만 들어가도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모르겠는, 복잡하게 주택들이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거기를 돌아다니면서 과제를 하면서도, 예를 들어서 과제가 점집의 포진. 이런 걸 해보기도 했고, 거기서 점을 보기도 했는데, 그렇게 소소하게 이야기를 찾는 것은 되게 재미있었어요.
이동연: 길에 대해서 어떻게? 김희규씨가 직접 조사했을 텐데.
김희규; 일단 한예종 주위의 길은 지역의 역사와 관련이 깊기도 하지만, 대학로나 홍대처럼 자본이 깊게 들어오지 않은 곳이어서, 일단 이 돌곶이만의 지역 특색이 될 수 있는 그런 다양한 것들이 거리에 나와 있는데, 이 지역의 자원이 될 만한 수공업들도 되게 많고, 일단 주택가들도 거리가 있지 않고, 다닥다닥 붙어있고, 밀집되어 있는 곳들이 많아서, 주민들 간의 교류도 상당히 많았던 걸로 알고 있고요. 다른 거리에서는 볼 수 없는, 학교 주위에는 있는데, 학교와는 큰 관련이 없지만, 돌곶이만의 특색이 많이 담겨져 있는 길들이 많이 있었어요.
이동연: 이준희 실장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체적인 이 지역의 구성에 대해서 …….
이준희: 저도 일단 문화적인 관점도 있는데, 아무래도 이 특성 상 저도 제 개인의 경험적인 흔적들이 많아서, 처음에는 아까 잠깐 얘기했었지만, 제가 있을 때는 정문으로 사용되는 문은 거의 앞쪽이었어요. 뒤에는 다 막혀있었고. 신이문역이 주된 역이었고요. 그리고 특징이 건물 자체가 우리한테 맞춰졌다기보단, 있는 건물에 우리가 맞춰서 들어갔기 때문에, 제한 사항이 많았는데. 예를 들면 저는 연극원이었는데, 연극원 연습실이 부족해서 미술원 이쪽에 넘어와서 공간 빌리고 연습하고, 체육관에서 연습하고, 그런 과정으로 옮겨 다니면서 했었던. 그리고 영상원 친구들하고 작업하면서 영상원 친구들은 이 지역을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간지가 너무 난다고. 영화의 세트장이라고. 그래서 제가 영상원과 촬영작업을 많이 했는데, 벗어난 적이 없어요. 여기에서 다 소화가 되는 거예요. 돌아다니다 보면 이곳저곳에서 영상원 애들이 막 찍고 있어요. 보고 같은 곳이죠 여기가. 전통예술원은 워낙 의릉 땅을 저희가 많이 갖고 있었기 때문에, 어디서든 구석에서 장구 치고 하니까 그런 모습이 사실은 처음에 되게 그랬는데, 너무나 이게 다른 문화인 거죠 다른 학교랑. 약간 동아리 같은 느낌도 들면서 그랬어요. 그 때 당시에 식당 사장님들하고는 거의 같이 고민하는 사이였고, 그래서 괜히 누가 동아리연합회라고 해도 연합회 존재 자체도 별로 유명무실한데, 거기에 와서 설렁탕 주고가고, 남았다고. 그런. 같이 먹고 살길 고민하고, 옆에 있던 친구는 전통예술원의 우리나라 판소리로 치면 콩쿨에 나가서 굉장히 상을 받고, 아주 유명한 친구인데, 설렁탕집 사장님하고는 아무렇지 않은 사이고. 그러니까 그러한 것들이 재미있었던 거죠. 제 입장에서는. 그래서 이게 희한한 지역에서 희한하게 있지만, 아까 이원재 처장님 말씀하신 것에 저는 되게 공감을 많이 했거든요. 그때 저희들의 사고가 되게 유연하고 그리고 딱 지역이다라고 규정되진 않았지만, 상당히 밀접했어요. 근데 그걸 위해서 가지 않았고, 이 학생들은 자기 작품을 위해서 이 지역을 활용하는 데 관심이 많았던 거지만. 지역이 개발에 크게 관심이 없었죠. 그렇지만 그 때 그림들은 상당히 많이 어울렸고, 근데 이제 제가 97년도에 들어와서 2007년도에 나갔거든요. 왔다갔다 많이 했는데, 그 과정을 쭉 보면, 뒤에 열리고 학교 건물 공사 끝나고 그거 보면서, 그러면서 이 뒷동네가 보이는 거죠. “아 여기가 이렇구나”라는 걸. 외대 쪽도 저쪽 후문은 별로 이용을 안 했거든요. 지금 막 열리고 하면서 그 때 당시 느끼고 하는 게 천장산을 중심으로 한 공립에 관련된 어쨌든 학교들이 포진되어 있고, 성북을 넘어서지만. 그리고 천장산 관련해서 그런 학교들이 있는데, 이 학교들끼리의 어떤 천장산을 중심으로 한 공립에 관련된 어쨌든 학교들이 포진되어 있고, 성북을 넘어서지만. 그리고 천장산 관련해서 그런 학교들이 있는데, 이 학교들끼리의 어떤 천장산을 중심으로, 꼭 중심이 아니더라도, 교류나 서로 이런 부분에 대해서 그게 참 없고, 지금은 모르겠는데 제가 있었을 때까진 거의 없었어요. 서로서로 관심도 없고. 그리고 의릉에 관련돼서도, 그냥 좀 사람들에게 피곤한 존재여서. 그냥 이 지역은 우리 학생들한테서는 “내가 예술활동을 하는데, 활용가치가 높은” 그 정도였던 거죠. 그래서 확실한 건 뭔가 핵심적인 부분인 계속 빠져있다. 그걸 또 느낀 게, 제가 졸업하고 인근 다른 연극영화과 예술학부에 강의를 나가보면서, 너무 다른 거예요. 지금 우리 학교처럼 있는 거예요. 건물 딱 지어서 작업실 되어 있고, 너무 잘 되어 있는 거죠. 근데 거기서 오는 그 분절됨을 되게 많이 느꼈거든요. 그래서 되게 가난하고, 가난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되게 없고, 공간이 좀 뭔가 옛날에 그 안 좋았던 게, 사실은 좋았다라고 다니면서 확신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결국에는 지역하고 만나는 게 신이문역하고 이쪽하고 한 면이었다면, 지금은 외대 쪽도 왔다갔다 하는 것도 많아진 것 같고, 돌곶이 쪽도 문이 열려서 더 활발해진 것 같고, 신이문이 오히려 그에 비해서 줄어들었지만 어떻게 보면, 균형이 좀 더 골고루 되어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고, 제가 졸업할 때쯤 일어났던 최근의 현상이, 졸업하고 딴 데는 비싸니까 졸업생들이 멀리 가지 않고 이 근처에 계속 잔류하고 있는 거죠. 잔류하고 있으면서 자기네들끼리 연습실도 좀 만들고, 뭐도 해보고 하는 게 잔상이 일어났다라는 것이고, 그리고 좀 더 넘어서야 할 부분에 있어서는 천장산을 중심으로 학교들 간의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전혀 없는 구조. 전체 그림으로 보면, 되게 교육적인 부분에서는 커뮤니티가 굉장히 중요한, 서울의 어떻게 보면 제가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는데, 되게 독보적인 커뮤니티의 지역이 아닌가. 하나의 산을 중심으로 해서. 그러한데, 그러한 게 전혀 없다라는 것. 그래서 이 부분이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핵심이 빠졌다라는 것은 다른 학교와도 계속 공허한 핵심이 빠졌다라는 게 계속 거기에 있다라는 거든요. 그러니까 들어와서 교육 받고 나가고, 들어와서 교육 받고 나가고. 그게 끝인 거죠. 그런데 구체적으로 학생들의 진출과 여러 가지 향후 지속 가능한 어떤 활동에 대한 고민을 학교들이 많이 하고 있다는 거죠. 그거에 대한 부분이 저도 직접 재단 들어와서 느낀 부분이 “지역에 있다” 그래서 지역에 있는 자생적인 어떤 움직임들이 독특한 돌곶이 지역과 우리 학생들이 만나주고, 여기에서 뭔가 풀어준다면 되게 핵심적인 게 풀리지 않을까 합니다.
이동연: 이준희 실장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체적인 이 지역의 구성에 대해서 …….
이준희: 저도 일단 문화적인 관점도 있는데, 아무래도 이 특성 상 저도 제 개인의 경험적인 흔적들이 많아서, 처음에는 아까 잠깐 얘기했었지만, 제가 있을 때는 정문으로 사용되는 문은 거의 앞쪽이었어요. 뒤에는 다 막혀있었고. 신이문역이 주된 역이었고요. 그리고 특징이 건물 자체가 우리한테 맞춰졌다기보단, 있는 건물에 우리가 맞춰서 들어갔기 때문에, 제한 사항이 많았는데. 예를 들면 저는 연극원이었는데, 연극원 연습실이 부족해서 미술원 이쪽에 넘어와서 공간 빌리고 연습하고, 체육관에서 연습하고, 그런 과정으로 옮겨 다니면서 했었던. 그리고 영상원 친구들하고 작업하면서 영상원 친구들은 이 지역을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간지가 너무 난다고. 영화의 세트장이라고. 그래서 제가 영상원과 촬영작업을 많이 했는데, 벗어난 적이 없어요. 여기에서 다 소화가 되는 거예요. 돌아다니다 보면 이곳저곳에서 영상원 애들이 막 찍고 있어요. 보고 같은 곳이죠 여기가. 전통예술원은 워낙 의릉 땅을 저희가 많이 갖고 있었기 때문에, 어디서든 구석에서 장구 치고 하니까 그런 모습이 사실은 처음에 되게 그랬는데, 너무나 이게 다른 문화인 거죠 다른 학교랑. 약간 동아리 같은 느낌도 들면서 그랬어요. 그 때 당시에 식당 사장님들하고는 거의 같이 고민하는 사이였고, 그래서 괜히 누가 동아리연합회라고 해도 연합회 존재 자체도 별로 유명무실한데, 거기에 와서 설렁탕 주고가고, 남았다고. 그런. 같이 먹고 살길 고민하고, 옆에 있던 친구는 전통예술원의 우리나라 판소리로 치면 콩쿨에 나가서 굉장히 상을 받고, 아주 유명한 친구인데, 설렁탕집 사장님하고는 아무렇지 않은 사이고. 그러니까 그러한 것들이 재미있었던 거죠. 제 입장에서는. 그래서 이게 희한한 지역에서 희한하게 있지만, 아까 이원재 처장님 말씀하신 것에 저는 되게 공감을 많이 했거든요. 그때 저희들의 사고가 되게 유연하고 그리고 딱 지역이다라고 규정되진 않았지만, 상당히 밀접했어요. 근데 그걸 위해서 가지 않았고, 이 학생들은 자기 작품을 위해서 이 지역을 활용하는 데 관심이 많았던 거지만. 지역이 개발에 크게 관심이 없었죠. 그렇지만 그 때 그림들은 상당히 많이 어울렸고, 근데 이제 제가 97년도에 들어와서 2007년도에 나갔거든요. 왔다갔다 많이 했는데, 그 과정을 쭉 보면, 뒤에 열리고 학교 건물 공사 끝나고 그거 보면서, 그러면서 이 뒷동네가 보이는 거죠. “아 여기가 이렇구나”라는 걸. 외대 쪽도 저쪽 후문은 별로 이용을 안 했거든요. 지금 막 열리고 하면서 그 때 당시 느끼고 하는 게 천장산을 중심으로 한 공립에 관련된 어쨌든 학교들이 포진되어 있고, 성북을 넘어서지만. 그리고 천장산 관련해서 그런 학교들이 있는데, 이 학교들끼리의 어떤 천장산을 중심으로 한 공립에 관련된 어쨌든 학교들이 포진되어 있고, 성북을 넘어서지만. 그리고 천장산 관련해서 그런 학교들이 있는데, 이 학교들끼리의 어떤 천장산을 중심으로, 꼭 중심이 아니더라도, 교류나 서로 이런 부분에 대해서 그게 참 없고, 지금은 모르겠는데 제가 있었을 때까진 거의 없었어요. 서로서로 관심도 없고. 그리고 의릉에 관련돼서도, 그냥 좀 사람들에게 피곤한 존재여서. 그냥 이 지역은 우리 학생들한테서는 “내가 예술활동을 하는데, 활용가치가 높은” 그 정도였던 거죠. 그래서 확실한 건 뭔가 핵심적인 부분인 계속 빠져있다. 그걸 또 느낀 게, 제가 졸업하고 인근 다른 연극영화과 예술학부에 강의를 나가보면서, 너무 다른 거예요. 지금 우리 학교처럼 있는 거예요. 건물 딱 지어서 작업실 되어 있고, 너무 잘 되어 있는 거죠. 근데 거기서 오는 그 분절됨을 되게 많이 느꼈거든요. 그래서 되게 가난하고, 가난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되게 없고, 공간이 좀 뭔가 옛날에 그 안 좋았던 게, 사실은 좋았다라고 다니면서 확신이 들더라고요. 그러면서 결국에는 지역하고 만나는 게 신이문역하고 이쪽하고 한 면이었다면, 지금은 외대 쪽도 왔다갔다 하는 것도 많아진 것 같고, 돌곶이 쪽도 문이 열려서 더 활발해진 것 같고, 신이문이 오히려 그에 비해서 줄어들었지만 어떻게 보면, 균형이 좀 더 골고루 되어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고, 제가 졸업할 때쯤 일어났던 최근의 현상이, 졸업하고 딴 데는 비싸니까 졸업생들이 멀리 가지 않고 이 근처에 계속 잔류하고 있는 거죠. 잔류하고 있으면서 자기네들끼리 연습실도 좀 만들고, 뭐도 해보고 하는 게 잔상이 일어났다라는 것이고, 그리고 좀 더 넘어서야 할 부분에 있어서는 천장산을 중심으로 학교들 간의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전혀 없는 구조. 전체 그림으로 보면, 되게 교육적인 부분에서는 커뮤니티가 굉장히 중요한, 서울의 어떻게 보면 제가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는데, 되게 독보적인 커뮤니티의 지역이 아닌가. 하나의 산을 중심으로 해서. 그러한데, 그러한 게 전혀 없다라는 것. 그래서 이 부분이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핵심이 빠졌다라는 것은 다른 학교와도 계속 공허한 핵심이 빠졌다라는 게 계속 거기에 있다라는 거든요. 그러니까 들어와서 교육 받고 나가고, 들어와서 교육 받고 나가고. 그게 끝인 거죠. 그런데 구체적으로 학생들의 진출과 여러 가지 향후 지속 가능한 어떤 활동에 대한 고민을 학교들이 많이 하고 있다는 거죠. 그거에 대한 부분이 저도 직접 재단 들어와서 느낀 부분이 “지역에 있다” 그래서 지역에 있는 자생적인 어떤 움직임들이 독특한 돌곶이 지역과 우리 학생들이 만나주고, 여기에서 뭔가 풀어준다면 되게 핵심적인 게 풀리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