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 성북동에 세워졌던 학교이다. 일제강점기 현재의 성북동 지역에는 학교에 갈 나이가 지났음에도 가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이 많았는데, 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기 위하여 동네의 유지들이 뜻을 모아 영명학교를 설립하였다. 50여명의 신입생으로 문을 열었는데, 학교의 원장은 이의석이었으며, 이춘길, 유일, 이희철, 김상욱 등이 직원으로 일하였는데, 이들 모두는 무보수로 봉사하였다.
성북유치원이 설립된 지 2년 후인 1936년에는 성북리에 새로운 학교가 설립되었다. 학교의 이름은 영명학교永明學校였으며 신설목적은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는 학령초과아동을 교육하기 위해서였다. 이 학교의 원장은 이의석李義錫이었으며 이춘길李春吉, 유일劉鎰, 이희철李熙哲, 김상욱金湘旭 등이 이 학교의 직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무보수로 이 학교에서 일했다.
성북유치원이 설립된 지 2년 후인 1936년에는 성북리에 새로운 학교가 설립되었다. 학교의 이름은 영명학교永明學校였으며 신설목적은 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는 학령초과아동을 교육하기 위해서였다. 이 학교의 원장은 이의석李義錫이었으며 이춘길李春吉, 유일劉鎰, 이희철李熙哲, 김상욱金湘旭 등이 이 학교의 직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무보수로 이 학교에서 일했다.
학령초과아동 위해 영명학교 신설
“부내 성북정의 유지들은 동리에 학령초과아동이 많이 있으나 그들은 배울 길이 없어 가두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든 나머지 학령초과아동의 교육을 본위로 하는 영명학원(永明學院)을 창설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미 50여여명의 입학지원자도 있게 되었으므로 10일에는 동학원 개원식을 거행하는 동시에 직원까지 선거하였다고 하는데 그 결과 이의석(李義錫)씨는 원장에 취임하게 되고 이춘길(李春吉), 유일(劉鎰), 이희철(李熙哲), 김상욱(金湘旭) 등 제씨는 직원으로 취임하게 되었다는 바 전기 제씨는 전부가 무보수로 동학원을 위하여 힘쓰기로 되었다 한다.”
『동아일보』, 1936.04.12.
학령초과아동 위해 영명학교 신설
“부내 성북정의 유지들은 동리에 학령초과아동이 많이 있으나 그들은 배울 길이 없어 가두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든 나머지 학령초과아동의 교육을 본위로 하는 영명학원(永明學院)을 창설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미 50여여명의 입학지원자도 있게 되었으므로 10일에는 동학원 개원식을 거행하는 동시에 직원까지 선거하였다고 하는데 그 결과 이의석(李義錫)씨는 원장에 취임하게 되고 이춘길(李春吉), 유일(劉鎰), 이희철(李熙哲), 김상욱(金湘旭) 등 제씨는 직원으로 취임하게 되었다는 바 전기 제씨는 전부가 무보수로 동학원을 위하여 힘쓰기로 되었다 한다.”
『동아일보』, 1936.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