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한학자이다. 1949년 『신천지』에 시 「백탑송」 「산중야」 등을 발표하고 문단에 등단하였다. 해방 전 동학사에 머물렀던 경험으로 불교적인 시를 남겼고, 산문 형태의 긴 시가 특징이다. 1960년대 초 성북동을 거쳐 동선동2가 142번지에 있는 ㄷ자 구조의 한옥에서 살았다. 서재에는 ‘보연재’라고 쓴 편액이 걸려있었다. 미아리고개 너머에 있던 서라벌예술대학에서 강사로 재임하였던 그는 20여 년 동안 대학에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고전과 한문에도 능해 『삼국지』, 『수호전』 등 중국 고전을 번역하였다.
서라벌예대 졸업생 소설가 한승원의 회고
김구용 선생은 T.S엘리엇의 『황무지』와 「J.A.프루프록의 연가」, 단테의 『신곡』 들을 줄줄 외면서 강의를 했고, 학생들에게도 외우라고 했다. 미술 전람회에 반드시 가라고 하고, 좋은 연극·영화를 보라고 하고, 클래식 음악을 열심히 들으라고 권했다.
김주영·이근배·오정희 외, 2013,『문학이라 쓰고 인생이라 읽다』, 작가세계, pp.67-69
서라벌예대 졸업생 소설가 한승원의 회고
김구용 선생은 T.S엘리엇의 『황무지』와 「J.A.프루프록의 연가」, 단테의 『신곡』 들을 줄줄 외면서 강의를 했고, 학생들에게도 외우라고 했다. 미술 전람회에 반드시 가라고 하고, 좋은 연극·영화를 보라고 하고, 클래식 음악을 열심히 들으라고 권했다.
김주영·이근배·오정희 외, 2013,『문학이라 쓰고 인생이라 읽다』, 작가세계, pp.67-69
1922-2001 경북 상주 출생. 시인이자 한학자이다. 1949년 『신천지』에 「산중야」, 「백탑송」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고, 1956년에 현대문학사의 제1회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해방 전 동학사에 머물렀던 경험으로 불교적인 시를 남겼고, 산문 형태의 긴 시가 특징이다. 추사 김정희를 흠모하여 추사의 글씨와 학문에 일가견이 있었다. ‘백화’라는 추사 글씨 초본을 얻은 뒤 당호를 ‘백화시실’이라 하였다. 문단에서 ‘구용체丘庸體’라고 말할 만큼 글씨가 개성이 있어 문인들이 시집 제자題字나 당호 글씨를 얻어갔다. 1960년대 초 성북동을 거쳐 동선동2가 142번지에 있는 ㄷ자 구조의 한옥에서 살았다. 서재에는 ‘보연재寶蓮齋’라고 쓴 편액이 걸려있었다. 20여년 동안 대학에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고전과 한문에도 능해 『삼국지』, 『수호전』 등을 번역하였다.
1922-2001 경북 상주 출생. 시인이자 한학자이다. 1949년 『신천지』에 「산중야」, 「백탑송」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고, 1956년에 현대문학사의 제1회 신인문학상을 받았다. 해방 전 동학사에 머물렀던 경험으로 불교적인 시를 남겼고, 산문 형태의 긴 시가 특징이다. 추사 김정희를 흠모하여 추사의 글씨와 학문에 일가견이 있었다. ‘백화’라는 추사 글씨 초본을 얻은 뒤 당호를 ‘백화시실’이라 하였다. 문단에서 ‘구용체丘庸體’라고 말할 만큼 글씨가 개성이 있어 문인들이 시집 제자題字나 당호 글씨를 얻어갔다. 1960년대 초 성북동을 거쳐 동선동2가 142번지에 있는 ㄷ자 구조의 한옥에서 살았다. 서재에는 ‘보연재寶蓮齋’라고 쓴 편액이 걸려있었다. 20여년 동안 대학에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고전과 한문에도 능해 『삼국지』, 『수호전』 등을 번역하였다.
시인. 경북 상주 출생. 본명은 영탁永卓. 1949년 시 「산중야山中夜」를 《신천지》에 발표하며 등단하였고 1956년에는 제1회 현대문학 신인상을 받았다. 『시집I』(1969), 『시』(1976), 『구곡九曲』(1978), 『송백팔頌百八』(1982) 등의 작품집이 있다.
시인. 경북 상주 출생. 본명은 영탁永卓. 1949년 시 「산중야山中夜」를 《신천지》에 발표하며 등단하였고 1956년에는 제1회 현대문학 신인상을 받았다. 『시집I』(1969), 『시』(1976), 『구곡九曲』(1978), 『송백팔頌百八』(1982) 등의 작품집이 있다.
1956년 4월 미아리고개 너머 산을 깎아 만든 자리에 서라벌예술대학의 3층짜리 교사가 지어졌다. 1953년 용산구 후암동에 있던 우리나라 최초의 예술대학이 새로 건물을 짓고 돈암동 산3-1번지로 이사를 온 것이다. '문인 사관학교’라고 불린 서라벌예대 문예창작학과에는 김동리를 비롯해 당대 최고의 시인 서정주, 안수길, 박목월, 곽종원, 이광래, 정태용, 김구용, 양원달 등이 교수로 있었다.
1956년 4월 미아리고개 너머 산을 깎아 만든 자리에 서라벌예술대학의 3층짜리 교사가 지어졌다. 1953년 용산구 후암동에 있던 우리나라 최초의 예술대학이 새로 건물을 짓고 돈암동 산3-1번지로 이사를 온 것이다. '문인 사관학교’라고 불린 서라벌예대 문예창작학과에는 김동리를 비롯해 당대 최고의 시인 서정주, 안수길, 박목월, 곽종원, 이광래, 정태용, 김구용, 양원달 등이 교수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