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5년 11월 『신동아』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성북동에 사는 손거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름과 달리 가난한 손거부는 자식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난한 그가 자식을 교육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당대의 가난한 사람들의 시대상을 잘 보여준다.
손 서방도 성북동에서는 꽤 인기 있는 사람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거나, 혼인이거나 초상이거나 집터 닦는 데거나 우물 파는 데거나 하다못해 뉘 집 아이가 넘어져 다쳐 가지고 떠들썩하는 데라도, 손 서방이 아니 나서는 데는 별로 없다. 일정한 직업도 없지만, 천성이 터벌터벌하여서 남의 말참례하기를 좋아하고 아무한테나 허튼소리를 잘 걸다가 때로는 당치않은 구설도 듣는 수가 더러 있지만 아무튼지 떠들썩하는 자리에는 누구보다도 잘 어울리는 사람이 손 서방이다. 그래 자기도 어디서 문소리 한 번만 크게 들려오도 이내 그리로 달려가는 버릇이거니와 저쪽에서들도 혼상 간에 마당이 좀 왁자해져야 될 일이 벌어진 집에서는 으레 손 서방을 찾아다니며 데려간다.
하지만 성북동에 중산층만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가난한 사람들역시 성북동의 주민이었다. 이태준이 그린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었다. 그의 소설 「손거부」를 보자. 주인공 손서방은 주인공(아마도 이태준)을 찾아와 문패를 써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며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나는 이런 문패를 처음 써볼 뿐만 아니라 호구조사 나오는 순사한테 방패막이로 한다는 그의 말이 우습기도 하고 또 그의 어리숙함에 일종의 취미도 느끼었다. 우선 첫머리엔 ‘고양군 숭인면 성북리’라고 쓰고,
“거기가 몇 번지요?”
물었다.
“번지 그까짓 안 쓰면 어떻습니까?”
“왜 안 쓴단 말이요? 아, 장자, 차자 이름을 다 쓴다면서 정작 번지를 안 쓰면 되우?”
“우린 아직 번지가 없답니다.”
“번지가 없다뇨?”
“그게 개천둑에다 진 집입죠. 이를테면 국유집죠. 알아들으시겠습니까? 그래 이제 면에서 나와 번질 매겨 주기 전엔 아직 모릅니다.”
이 대화를 보면 개천가 국유지를 따라 무허가 집들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무허가 건물이 손서방의 집 하나밖에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성북동에 중산층만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가난한 사람들역시 성북동의 주민이었다. 이태준이 그린 사람들은 바로 그들이었다. 그의 소설 「손거부」를 보자. 주인공 손서방은 주인공(아마도 이태준)을 찾아와 문패를 써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며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다.
나는 이런 문패를 처음 써볼 뿐만 아니라 호구조사 나오는 순사한테 방패막이로 한다는 그의 말이 우습기도 하고 또 그의 어리숙함에 일종의 취미도 느끼었다. 우선 첫머리엔 ‘고양군 숭인면 성북리’라고 쓰고,
“거기가 몇 번지요?”
물었다.
“번지 그까짓 안 쓰면 어떻습니까?”
“왜 안 쓴단 말이요? 아, 장자, 차자 이름을 다 쓴다면서 정작 번지를 안 쓰면 되우?”
“우린 아직 번지가 없답니다.”
“번지가 없다뇨?”
“그게 개천둑에다 진 집입죠. 이를테면 국유집죠. 알아들으시겠습니까? 그래 이제 면에서 나와 번질 매겨 주기 전엔 아직 모릅니다.”
이 대화를 보면 개천가 국유지를 따라 무허가 집들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무허가 건물이 손서방의 집 하나밖에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손거부」의 손서방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부인과 아들 둘을 둔 가장이다. 딸도 하나 있었지만 어려서 죽었다. 아들들이 학교에 들어가자 그는 아들의 책값과 월사금을 대느라 ‘일정한 직업은 없지만’ ‘진일 마른일 다 쫓아 댕’기다 하루는 채석장에서 일하다 손이 쪄 엄지손가락 하나를 못 쓰게 된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도 아들을 하나 더 낳는다. 이태준의 눈에 비친 성북동의 토막민들은 항상 취업난에 시달렸다.
「손거부」의 손서방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부인과 아들 둘을 둔 가장이다. 딸도 하나 있었지만 어려서 죽었다. 아들들이 학교에 들어가자 그는 아들의 책값과 월사금을 대느라 ‘일정한 직업은 없지만’ ‘진일 마른일 다 쫓아 댕’기다 하루는 채석장에서 일하다 손이 쪄 엄지손가락 하나를 못 쓰게 된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에도 아들을 하나 더 낳는다. 이태준의 눈에 비친 성북동의 토막민들은 항상 취업난에 시달렸다.
나는 이런 문패를 처음 써 볼 뿐 아니라 호구 조사 오는 순사한테 방패막이로 한다는 그의 말이 우습기도 하고 또 그의 어리숙함에 일종의 취미도 느꼈다. 우선 첫 마리엔 ‘고양군 숭인면 성북리’라고 쓰고,
“거기가 몇 번지요?”
물었다.
“번지 그까짓 안 쓰면 어떻습니까?”
“왜 안 쓴단 말요? 아, 장자 차자 이름을 다 쓰면서 정작 번질 안 쓰면 되우?”
“우린 아직 번지가 없답니다.”
“번지가 없다뇨?”
“그게 개천둑에다 진 집입죠. 이를테면 국유집죠. 알아들이시겠습니까? 그제 인제 면에서 나와 번질 매겨주기 전엔 아직 모릅니다.”
문패를 쓰기 위해 손거부가 주인공을 찾아온 장면이다. 주인공은 손거부에게 번지수를 물어보지만, 개천둑 국유지에 지은 집은 번지가 없다. 이 소설이 발표된 1941년에는 일제강점기 후반에는 경성으로 수많은 사람이 모여들었고, 대부분 가난한 사람이었다. 이들은 손거부와 같이 불법으로 국유지에 토막이라는 집을 짓고 열악하게 살았다. 소설 「손거부」는 이런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한번은 손에 피를 뚝뚝 흘리면서 올라왔다.
“아 웬일유?”
“채석장에서 일허다 돌에 짓쪘답니다.”
자식 교육을 위해서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손거부는 채석장에서 일 하다 손가락 하나를 잃는다. 당시 도시 빈민의 삶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한편 성북동에는 60년대 후반까지 채석장이 존재했는데(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 등), 소설은 소설이 쓰인 1930년대 후반~40년대 초반에 이미 성북동에 채석장이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