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성북구는 1920년대 보다 더욱 인구가 늘었을 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의 유입이 많아집니다. 특히 1920년대부터 조성된 학도촌의 분위기는 이 시기 더욱 짙어지는데 이길용은 동아일보를 통해 발표한 수필「신록의 대경성 부감기」에서 성북동을 완연한 학도의 마을이라고 표현합니다.
1930년대 성북구는 1920년대 보다 더욱 인구가 늘었을 뿐만 아니라 예술가들의 유입이 많아집니다. 특히 1920년대부터 조성된 학도촌의 분위기는 이 시기 더욱 짙어지는데 이길용은 동아일보를 통해 발표한 수필「신록의 대경성 부감기」에서 성북동을 완연한 학도의 마을이라고 표현합니다.
· 이길용, 「신록의 대경성 부감기(4)」(수필), 『동아일보』1933.6.10. 석간 3면
‘학도의 마을’이라는 성북동의 이미지를 강조
“평지에서 보아 언덕인 듯 만 듯한 저쪽으로 문화촌을 이루고 있는 것이 성북동, 혜화공보와 보성공보도 형제처럼 이웃했는데 중앙불전은 좀 더 높은 곳에 지었으면… 할 만큼 이름에 알맞지 않아 보인다. 어쨌든 완연 학도의 마을이다.”
· 이길용, 「신록의 대경성 부감기(4)」(수필), 『동아일보』1933.6.10. 석간 3면
‘학도의 마을’이라는 성북동의 이미지를 강조
“평지에서 보아 언덕인 듯 만 듯한 저쪽으로 문화촌을 이루고 있는 것이 성북동, 혜화공보와 보성공보도 형제처럼 이웃했는데 중앙불전은 좀 더 높은 곳에 지었으면… 할 만큼 이름에 알맞지 않아 보인다. 어쨌든 완연 학도의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