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당에서 나온 잡지 『소년』에 1949년 12월부터 연재되다가 한국전쟁으로 연재가 중단되었다. 1952년 청운사에서 단행본이 출간되었다. 쌍둥이 자매인 영란과 은주의 집안이 어려워지자 은주는 입양을 간다. 그 후 은주의 원래 가족들은 경제적 사정이 나아지고, 은주가 입양간 집이 오히려 사정이 안 좋아진다. 영란의 가족은 성북동 혜화문 뒤편의 넓은 주택에 살고 은주는 돈암동의 좁은 집에서 살고 있다. 우연한 사건으로 둘은 다시 만나지만 영란은 질투심에 은주와 오빠 은철을 미워한다. 하지만 영란은 둘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돈암동 언덕에 떠오른 쌍무지개를 함께 보는 것을 끝으로 결말이 난다. 이 작품은 형제자매의 사랑과 가족의 화해를 극적으로 보여주며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비고:잡지 『소년』에 1949년 12월부터 연재되다가 한국전쟁으로 연재가 중단되었고, 1952년 청운사에서 단행본이 출간되었다.
· 김내성,「쌍무지개 뜨는 언덕」, 『소년』, 1950.
부잣집과 가난한 집에 각각 입양된 일란성 쌍둥이 자매의 이야기. 부잣집은 성북동, 가난한 집은 돈암동으로 주소가 설정되어 있음. 당시 교양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로 알려진 성북동의 이미지를 그대로 반영/강화하고 있는 작품
· 김내성,「쌍무지개 뜨는 언덕」, 『소년』, 1950.
부잣집과 가난한 집에 각각 입양된 일란성 쌍둥이 자매의 이야기. 부잣집은 성북동, 가난한 집은 돈암동으로 주소가 설정되어 있음. 당시 교양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동네로 알려진 성북동의 이미지를 그대로 반영/강화하고 있는 작품
그 동안 은철이는 야학에 다니던 것도 그만두고 오로지 은주의 입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제대로 먹지도 않고, 입을 것도 제대로 입지 않고 푼푼이 1만 원쯤 모았다. 은철이는 나머지 2만 원을 장만하기 위해 어머니와 의논한 결과, 돈암동 언덕 위에 까치둥지처럼 널빤지로 지어진 자기 집을 팔고, 바로 그 밑에 방공굴을 사서 살 생각으로 며칠 전부터 집을 내놓았다.
하나뿐인 여동생 은주의 중학교 입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푼돈을 모아왔던 은철은 손님이 두고 간 가방 속 돈을 쓰자는 봉팔의 제안에 두고 갈등한다. 하지만 은철은 제안을 뿌리치고 가방을 되찾아 주인에게 돌려주기로 결심한다. 이 장면은 은철이 겪고 있는 내적 갈등 속 상황으로, 입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집을 내놓게 된 것을 묘사한 것이다. 여기서 돈암동 언덕 위 판자촌이 등장하는데, 당시 성북천 언덕 위에는 방공호와 널빤지 집들이 뒤얽혀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
택시는 이윽고 창경궁을 지나 혜화동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운전사 아저씨! 너무 바싹 따라가지 말고 이제부터는 천천히 따라가 주세요."
골목 안에서는 차가 빨리 달리지 못했다. 두 대의 택시가 약 100미터의 간격을 두고 천천히 혜화초등학교 앞을 지나 성북동으로 넘어가는 길의 끄트머리에 다다랐을 때, 앞선 차가 어떤 호화로운 2층집 앞에서 멈추었다.
"운전사 아저씨, 여기서 멈추어 주세요."
은철이가 탄 택시도 멈추었다. 가만히 바라보니 차에서 내린 신사는 운전사에게 요금을 주고 나서는 그 호화로운 양옥집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 얼마인가요?"
"500원인데, 그냥 400원만 내거라."
"네, 고맙습니다."
은철이가 택시를 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요금을 내고 은철이는 차에서 내렸다. 옅은 황혼이 혜화동 일대를 덮기 시작했다.
은철이는 주춤주춤 양옥집으로 걸어가서 대문에 붙은 문패를 쳐댜보았다. 문패에는 '이창훈'이라고 쓰여 있었다.
은철이는 문 틈으로 넓은 정원을 들여다보았다. 정원에는 무성한 수목이 있고, 화초가 만발한 화단이 있고, 수목 사이에는 한 개의 벤치까지 놓여 있었다. 귀를 가만히 기울이니 양옥 2층에서는 피아노 소리에 맞추어 소녀의 귀여운 노래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손님이 두고 간 가방 속 돈을 계기로 봉팔과 다투게 된 은철은 봉팔을 뿌리치고 택시를 이용해 손님을 뒤쫓아간다. 그리고 손님이 살게 된 집에 도착하게 된다. 이 장면은 종로 4가에서 돈암동을 향해 가는 택시 안에서 본 바깥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소설 속 행선지는 혜화초등학교와 성북동 사이에 위치한 2층 양옥집이었는데, 당시 명륜동과 성북동 사이 한양도성 일대에 이러한 고급 주택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은주와 민구는 삼선교 역에서 내려 오른편으로 개천을 끼고 한참 걸어가다가 언덕길을 올라갔다.
그 언덕에는 일제 시대에 방공굴로 팠던 구멍이 삥 돌아가며 예닐곱개 뚫려 있었다. 그러나 지금 그 방공굴에는 모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 가마니를 붙여 놓은 문 틈으로 가느다란 불빛이 새어 나왔다.
"저녁 먹고, 너의 집에 갈게."
민구가 그렇게 말하면서 세 번째 방공굴로 어슬렁어슬렁 걸어 들어갔다.
바로 그 민구네 방공굴 옆으로 좁다란 길이 언덕 위로 하나 뻗어 있다. 그리고 그 길이 뻗어 올라간 언덕 위에는 판잣집이 세 채 서 있다. 그 세 채 가운데 한 채가 은주네 집이다.
방 한 칸, 마루 한 칸, 부엌 한 칸이 있는 집이다. 어두컴컴한 부엌에서 인기척이 났다.
오빠인 은철이가 도둑질을 했다는 것을 믿지 않은 은주는 민구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집에 계신 어머니와 함께 저녁을 차리며 은철을 기다린다. 이 장면은 은주가 살고 있는 집을 묘사한 것이다. 당시 돈암동 언덕에는 방공굴 6~7개가 있었으며 그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또한 은주네 집인 판잣집은 방과 마루, 부엌이 한 칸 정도로 좁게 세워져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돈암동 언덕에서 살고 있었던 사람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정원에 화초가 만발하고 2층 서재에 피아노가 놓여 있는 자기 집과 비교해 볼 때, 은주네 판잣집은 너무나 초라했다. 조그만 판잣집에 다 떨어져 나간 널빤지로 담을 두른 한쪽 귀퉁이에 사람이 드나드는 조그만 쪽문이 한 개 달려 있었다.
(중략)
어머니는 하는 수 없이 영란을 대문 밖에 세워 두고 혼자서 뜰 안으로 들어갔다. 부엌 한 칸, 방 한 칸, 마루 한 칸에 온통 널빤지로만 된 궤짝 같은 집이었다.
친딸을 확인한 영란의 어머니는 은주의 새 교복을 맞추어 은주의 집으로 가는데, 영란도 어머니와 함께 은주의 집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영란은 지저분한 환경이 싫어 대문 밖에서 어머니를 기다린다. 이 장면은 은주네 집 주변 환경을 묘사한 것이다. 당시 돈암동 판잣집은 널빤지로 두른 담에, 한 칸 짜리 부엌과 방, 마루가 온통 널빤지로 되어 있었다. 빈민촌 주민들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은주는 삼선교 다리를 허둥지둥 건너면서 눈물 가득한 얼굴로 하느님에게 빌었다.
'아아, 하느님, 어머니를 살려 주세요.'
길을 걷는 사람이나 길거리에서 뛰노는 아이들이 모두 자기보다 행복해 보였다.
삼선교 개천가를 오른편으로 끼고 은주는 숨이 하늘에 닿을 듯 얼마 동안 달리다가, 군데군데 방공호가 뻥뻥 뚫린 조그만 언덕 위에 외로이 서 있는 자기 집을 불현듯 바라보았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은주는 종로에서 집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고, 은주는 콩쿠르 준비를 한 자신을 원망한다. 이 장면은 은주가 집으로 가는 경로가 서술되어 있다. 지금은 철거되어 없는 삼선교 다리를 건너 성북천을 오른편으로 끼고 직진하면 미아리 고개 밑 돈암동 판잣집에 이를 수 있었던 듯하다. 군데군데 뚫려 있는 방공호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으며, 그 주변에는 널빤지로 지은 판잣집이 다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