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신천지』에 발표한 수필이다. 성북동 자신의 집에 방우산장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된 경위와 집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서술한다. 자기 삶에서 진정으로 추구하는 바를 '소'에 빗대어 표현하였지만, '소'는 자기 옆에 있든지 없든지 상관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소'를 생각하는 것조차 일종의 집착이기에, 조지훈은 그 소를 그저 마음에 두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겠다는 삶의 태도를 이 수필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방우산장(放牛山莊)'은 내가 거처하고 있는 이른바 '나의 집'에다 스스로 붙인 집 이름이다.
집이란 물건은 고루거각(高樓巨閣)이든 용슬소옥(容膝小屋)이든지 본디 일정한 자리에 있는 것이요, 떠 매고 돌아다닐 수 없는 것이매 집 이름도 특칭의 고유명사가 아닐 수 없으나 나의 방우산장은 원래 특정한 장소, 일정한 건물 하나에만 명명한 것이 아니고 보니 육척 수신(瘦身) 장구(長軀)를 담아서 내가 그 안에 잠자고 일하며 먹고 생각하는 터전은 다 방우산장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산장이라 했으니 산 속에 있어야만 붙일 수 있는 이름이로되 십리 둘레에 일점 산 없는 곳이 없고 보니 나의 방우산장은 심산(深山)에 있거나 시항(市巷)에 있거나를 가리지 않고 일여(一如)한 산장이다. 이는 내가 본디 산에서 나고 또 장차 산으로 돌아갈 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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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우산장(放牛山莊)에는 아직 한 장의 현판(懸板)도 없다. 불행하게도 한 장의 현판을 걸었던들 방우산장은 이미 나의 집이 아니게 되었을 것이요, 나의 형터리도 없는 집 이름은 몇 번이든지 바꿔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두려운 일은 곧 뒷날 내 죽은 뒤 어느 사람이 있어 나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노라는 제 정성으로 방우산장이란 묘석을 내 무덤에다 세워 줄까 저어함이다.
자신의 집을 ‘방우산장‘이라고 지은 이유와 삶의 가치를 ‘소‘에 빗대어 표현한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여기서의 방우산장은 꼭 성북동의 집만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자기가 사는 곳은 모두 방우산장이라는 표현으로 보아 성북동 집을 생각해볼 수도 있는 부분이다. 현재 조지훈의 집, 즉 방우산장은 남아있지 않고, 성북로 66(성북동 155-15) 건물 앞에 터만 남아있다. ‘조지훈 집터(방우산장)‘이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