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운이 좋아서 짐수레를 밀어주고 얻은 돈으로 빵을 사먹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빈털터리였다. 그는 길음천을 건너서 아리랑 고개 쪽으로 가보기로 작정했다.
병문은 연탄을 나르다 넘어져 울고 있는 춘하를 상호가 달래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 과정에서 춘하의 종아리가 드러나자 그가 가출을 했던 즈음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병문은 중학교 등록금으로 마련해둔 수표가 감쪽같이 사라지자 절망을 느끼고 가출을 하였다. 이 장면은 병문은 중학교 등록 마감일을 넘기고 다음날 집으로 들어가기로 마음을 먹고 빈털터리 상태에서 아리랑고개 쪽으로 향하는 장면이다. 이후 장면에서 병문은 자신의 아버지가 등록금을 들고가 춘하와 잤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소끔 끓어오르며 달포쯤 기승을 부리던 소문이 약간 너누룩해진 형세였다. 그만큼 춘하와 상호가 이제는 제법 길음동 1269번지에 낯설잖은 풍경으로 자리잡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야반도주했던 춘하가 하필이면 다시 옛동네로 돌아오자 동네 사람들은 춘하와 상호에 대해 수근거린다. 상호에게 전과자, 인신매매범, 히로뽕쟁이 등의 혐의가 따라다니고 춘하도 진배없는 처지지만 춘하와 상호가 이렇다 할 해명을 하지 않자 이 둘을 둘러싼 소문은 점차 수그러든다. 이 장면은 춘하와 상호가 길음동에 자리잡게 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병문은 막차를 타는 버릇이 있어서 자정을 훨씬 넘겨 새벽 한시가 다 돼서야 삼선교에서 지하철 막차 승객을 받고 뜨는 25번 좌석버스에 운좋게 비집고 올라탔다.
춘하와 상호에 대한 안 좋은 소문들이 잦아든 후 춘하가 연탄 개평을 나누어 준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이 장면은 병문이 삼선교에서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상황이다. 이 후 병문은 집에 돌아오다 꺾어지는 길목에서 노상방뇨를 하다 연탄을 세고 있는 춘하를 보게 된다.
길음국교 뒷문 물역가게에서 모랫짐을 지면서 찬바람이 들면 방구들 뜯어고치는 일로 한겨울을 나는 쌍용이 애비가 침을 튀기며 목울대를 부풀린다.
"이제부터라도 땅 이름을 잘 살펴보더라고. 석 삼에다 태양 양자라고 했어. 삼양동이 해가 세 개나 드는 동네란 말여."
"그렇게 다지면 길음동은 어때? 길헐 길자에 소리 음인데. 머잖아 좋은 소식 들리겠구먼? 임자 풀이에 따른다믄. 저 우리 오야붕께 누구 막걸리잔 좀 가득 채워도고. 앞으로 저 그 공사판 벌어지면 내 목에 걸린 밥줄을 조였다 풀었다 헐 양반이니께. 아 안그렇소 행님?"
춘하와 상호의 혼례식날은 점차 동네 잔치가 되었다. 아이들과 젊은 축들은 노인정 앞 평상 모여 접시를 비워댔고, 노인정 안에서는 인접한 삼양동의 재개발사업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다. 쌍용이 애비는 삼양동과 길음동에 대해 나름대로 문자풀이를 하며 길음동에도 좋은 소식이 들리기를 기대한다.
"아매도, 이 서울하고도 한강 이북 하늘 아래 딱하나 남은 달동네가 바로 삼양동인데 그기 인자 엄청나게 변하는기라. 말이 일만가구지 생각 좀 해봐라 마. 보거라, 저 이십오번 종점을 사타구니 맨키로 껴안고는 양쪽으로 북한산 줄기 두 자락이나 갉아먹고 들앉은 동네니 집터로는 그만이잖구. 맞다이, 서울에서는 이런 공사판은 노가다 삼십 년에 마지막이자 싶제. 몇 년 죽때리고 앉아서 궁댕이도 접히면 한밑천 뽑고 해야지 아암."
춘하와 상호의 혼례식날 근처 삼양동 재개발 사업에 관한 이야기가 화제로 떠올랐다. 쌍용 애비가 오야붕이라고 지목한 남자가 길음동과 함께 북한산 자락에 있는 삼양동 재개발에 관해 운을 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