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양반들은 주택을 호화롭게 짓고자 하였다. 건축 자재로 나무를 쓰기 보다는 석재를 원하였다. 안암동의 진석산(陳石山)이나, 길음동의 큰돌산은 양질의 돌로 이루어진 바위산이었다. 돌의 질이나 빛깔이 매우 좋아 세도양반이나 돈이 많은 부자들은 이곳의 돌을 이용하여 집을 짓고자 하였다. 특히 진석산(陳石山)의 돌은 일제 때 조선총독부를 지을 때에도 사용하였다.
일부 양반들은 주택을 호화롭게 짓고자 하였다. 건축 자재로 나무를 쓰기 보다는 석재를 원하였다. 안암동의 진석산(陳石山)이나, 길음동의 큰돌산은 양질의 돌로 이루어진 바위산이었다. 돌의 질이나 빛깔이 매우 좋아 세도양반이나 돈이 많은 부자들은 이곳의 돌을 이용하여 집을 짓고자 하였다. 특히 진석산(陳石山)의 돌은 일제 때 조선총독부를 지을 때에도 사용하였다.
종암동의 서쪽지역(종암제1동 지역)은 일출봉(日出峯)과 채석장으로 사용한 진석산(陳石山)이 있고 그밑에 주택가를 이루고 있다. 이 산은 광복 전까지 나무가 울창했으나 광복 후 월남민(越南民)들이 정착하면서 벌목하고 6·25동란 때 전투로 나무가 타버려서 민둥산이 되었다. 진석산(陳石山)은 진씨(陳氏)가 이 산을 소유하여 이름이 붙여졌는데 1960년경까지도 석질(石質)이 좋아 고급주택을 지을 때 이 돌을 사용하였고 국립박물관을 건축할 때도 일부 사용되었다.
종암동의 서쪽지역(종암제1동 지역)은 일출봉(日出峯)과 채석장으로 사용한 진석산(陳石山)이 있고 그밑에 주택가를 이루고 있다. 이 산은 광복 전까지 나무가 울창했으나 광복 후 월남민(越南民)들이 정착하면서 벌목하고 6·25동란 때 전투로 나무가 타버려서 민둥산이 되었다. 진석산(陳石山)은 진씨(陳氏)가 이 산을 소유하여 이름이 붙여졌는데 1960년경까지도 석질(石質)이 좋아 고급주택을 지을 때 이 돌을 사용하였고 국립박물관을 건축할 때도 일부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