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이자 정치가이다. 미국 브라운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여, 1924년부터 보성전문학교에서 영어영문학·경제학·상학·논리학 등을 강의하였다. 1935년 6월 발간된 『삼천리』를 보면 백상규의 별장이 성북동에 있었는데 이 집은 양옥식 별장으로 시가로 치면 몇만 원이 넘었다고 한다. 광복 후 여운형 중심의 조선인민당에 가입하고, 이듬해 서울 천주교회에서 열린 비상국무회의에 참석하여 여운형과 함께 최고정무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경기도 장단에서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6.25 전쟁 때 서린동 자택에서 맏아들 남진과 함께 납북되어 남북평화통일축진협의회의 발기인 겸 중앙위원을 지냈다. 1957년 12월 26일에 북한에서 병사하여 평양시 용성구역의 ‘재북인사들의 묘’에 안치되었다.
백상규(1880~1957)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활동한 경제학자·정치가. 경기도 장단군 출생
·미국 브라운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여, 1924년부터 보성전문학교에서 영어영문학·경제학·상학·논리학 등을 강의
·8·15 광복 후 여운형(呂運亨) 중심의 조선인민당에 가입하고, 이듬해 서울 천주교회에서 열린 비상국무회의에 참석하여 여운형과 함께 최고정무위원으로 선출
·경기 장단에서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6·25 전쟁 때 서린동 자택에서 맏아들 남진(南鎭)과 함께 납북되어 남북평화통일축진협의회의 발기인 겸 중앙위원을 지냄
·1957년경에 북한에서 병사, 평양시 용성구역의 ‘재북인사들의 묘’에 안치됨
·부인 한기주(韓琦柱)는 피아니스트로 활동
백상규(1880~1957)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활동한 경제학자·정치가. 경기도 장단군 출생
·미국 브라운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여, 1924년부터 보성전문학교에서 영어영문학·경제학·상학·논리학 등을 강의
·8·15 광복 후 여운형(呂運亨) 중심의 조선인민당에 가입하고, 이듬해 서울 천주교회에서 열린 비상국무회의에 참석하여 여운형과 함께 최고정무위원으로 선출
·경기 장단에서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6·25 전쟁 때 서린동 자택에서 맏아들 남진(南鎭)과 함께 납북되어 남북평화통일축진협의회의 발기인 겸 중앙위원을 지냄
·1957년경에 북한에서 병사, 평양시 용성구역의 ‘재북인사들의 묘’에 안치됨
·부인 한기주(韓琦柱)는 피아니스트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