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동에 사는 시인이 옛 고향집과 가족들에 대한 기억을 소재로 하여 쓴 시이다. 성년이 되어 고향을 떠나 이주와 정착을 반복하며 살아온 시인은 유년 시절의 어느날 고향집 가족들이 각자의 공간에서 일상을 보내던 모습을 노년이 된 지금에도 잊지 못하며, 돌아보면 그날의 사소한 기억(영상)이야말로 삶의 원형이자 자신을 붙들어 준 힘이었음을 노래한다.
즐거운 나의 집
사랑방에는 할아버지가 앉아 계신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것은 텃도지가 밀려 잔뜩 주눅이 든 허리 굽은 새우젓 장수다.
건넌방에는 아버지가 계신다.
금광 덕대를 하는 삼촌에다 금방앗간을 하는 금이빨이 자랑인 두집담 주인과 어울려
머리를 맞대고 하루 종일 무슨 주판질이다.
할머니는 헛간에서 국수틀을 돌리시고 어머니는 안방에서 재봉틀을 돌리신다.
찌걱찌걱찌걱...... 할머니는 일이 힘들어 볼이 부우셨고,
돌돌돌돌...... 어머니는 기계 바느질이 즐거워 입을 벙긋대신다.
나는 사랑방 건넌방 헛간 안방을 오가며 딱지를 치고 구슬 장난을 한다.
중원군 노은면 연하리 470, 충주시 역전동 477의 49, 혹은
안양시 비산동 489의 43, 서울시 성북구 정릉동 227의29.
이렇게 옮겨 살아도 이 그림은 깨어지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사랑방에 아버지는 건넌방에, 할머니는 헛간에 어머니는 안방에 계신다.
내가 어려서부터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외지로 떠돈 건 이에서 벗어나고자 해서였으리.
어쩌랴, 바다를 건너 딴 나라도 가고 딴 세상을 헤매다가도 돌아오면 다시 그 자리니.
어느새 할아버지보다도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많아지면서 나는 나의 이 집이 좋아졌다.
사랑방과 건넌방과 헛간과 안방을 오가면서
철없는 아이가 되어 딱지를 치고 구슬 장난을 하면서
나는 더없이 행복하다, 이 그림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