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평론가이다. 정한모는 1923년 충청남도 부여에서 출생하였고, 서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모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1960년대부터 어머니와 손녀까지 4대가 함께 30여 년을 성북동에 살았다.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멸입滅入」이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활동하였다. 자연과 일상에서 얻는 시상(詩想)을 담은 시집 『카오스의 사족』, 『아가의 방』, 『새벽』 등을 발표하였다. 문학 연구의 대표 업적으로는 「문체로 본 동인과 효석」, 「김영랑론」, 『현대작가연구』 등이 있다. 1988년 문화공보부 장관을 할 때 납·월북 문인 작품에 대한 제한을 풀었다. 한국시인협회상(1971), 서울특별시문화상(1983), 대한민국예술원상(시부문, 1987)을 수상하였다.
송지영 선생이 소개한 정한모의 글줄에는 당시 성북동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당시 성북동에 거주했던 정한모는 지금은 고급 주택지대라고 간주되는 곳이 당시에는 “성북초등학교에서 개울을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와야만 하는 약수터나 빨래터를 찾는 사람들만이 올라오는 곳이었다.”라고 회고한다.
송지영 선생이 소개한 정한모의 글줄에는 당시 성북동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당시 성북동에 거주했던 정한모는 지금은 고급 주택지대라고 간주되는 곳이 당시에는 “성북초등학교에서 개울을 따라 한참을 걸어 올라와야만 하는 약수터나 빨래터를 찾는 사람들만이 올라오는 곳이었다.”라고 회고한다.
충남 부여 출생. 시인이며 학자이다.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멸입滅入」이 당선되며 등단하였다. ‘시탑’과 ‘주막’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자연과 일상에서 얻는 시상詩想을 담은 시집 『카오스의 사족』, 『아가의 방』, 『새벽』 등을 발표하였다. 『현대작가연구』, 『문학개설』, 『현대시론』 등 연구서를 내고,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쳤으며, 한국시인협회, 국어국문학회, 한국비교문학회 회장을 지냈다. 1988년 문화공보부 장관을 할 때 납·월북 문인 작품에 대한 제한을 풀었다. 문단 진출은 늦었지만 호걸형인 성격과 추진력으로 문단 사람들과 두루 친분을 쌓았다. 1960년대 성북동에 전광용, 정한숙과 이웃해 산 이후 어머니와 손녀까지 4대가 함께 30여 년을 성북동에 살았다.
충남 부여 출생. 시인이며 학자이다.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멸입滅入」이 당선되며 등단하였다. ‘시탑’과 ‘주막’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자연과 일상에서 얻는 시상詩想을 담은 시집 『카오스의 사족』, 『아가의 방』, 『새벽』 등을 발표하였다. 『현대작가연구』, 『문학개설』, 『현대시론』 등 연구서를 내고, 대학에서 후학을 가르쳤으며, 한국시인협회, 국어국문학회, 한국비교문학회 회장을 지냈다. 1988년 문화공보부 장관을 할 때 납·월북 문인 작품에 대한 제한을 풀었다. 문단 진출은 늦었지만 호걸형인 성격과 추진력으로 문단 사람들과 두루 친분을 쌓았다. 1960년대 성북동에 전광용, 정한숙과 이웃해 산 이후 어머니와 손녀까지 4대가 함께 30여 년을 성북동에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