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보문동 인근에 있던 방직회사이다. 일본 미쓰이 그룹의 계열사로, 1887년 자본금 100엔으로 설립된 종연방직은 러일전쟁 이후 면방적 및 견방적 관계회사를 흡수하여 일본의 대 방적업체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1925년 경성에 제사공장(製絲工場)을 동대문 밖 신설리에 세우면서 조선에 진출하였으며, 1930년대까지 종연방적의 전초기지로서 역할을 담당했다. 종연방직 제사공장은 여성노동자들의 비율이 높은 곳으로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운동도 활발했던 곳이다. 1933년 9월 여성 노동자들은 임금인상과 대우 개선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단행하였으나 일제 경찰과 회사 측은 강경하게 진압하면서 파업을 오래 지속하지는 못했다. 신설리 여성노동자 파업은 열악했던 여성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을 알 수 있다.
종연방적주식회사는 일본에서 설립한 회사로 미쓰이三井 그룹의 계열사였다. 1887년 자본금 100엔으로 설립된 종연방적은 러일전쟁 이후 면방적綿紡績 및 견방적絹紡績 관계회사를 끊임없이 흡수하며 일본의 대 방적업체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종연방적이 조선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은 1925년 11월 경성에 제사공장製絲工場을 설립하면서부터다. 종연방적이 공장을 설립한 곳은 동대문 밖 신설리였다. 이후 신설리 종연방적 제사공장은 1930년대까지 종연방적의 전초기지로서 역할을 담당했다.
종연방적주식회사는 일본에서 설립한 회사로 미쓰이三井 그룹의 계열사였다. 1887년 자본금 100엔으로 설립된 종연방적은 러일전쟁 이후 면방적綿紡績 및 견방적絹紡績 관계회사를 끊임없이 흡수하며 일본의 대 방적업체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종연방적이 조선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은 1925년 11월 경성에 제사공장製絲工場을 설립하면서부터다. 종연방적이 공장을 설립한 곳은 동대문 밖 신설리였다. 이후 신설리 종연방적 제사공장은 1930년대까지 종연방적의 전초기지로서 역할을 담당했다.
서울고무공장과 종연방적 제사공장은 신설리에 세워졌다는 것과 함
께 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두 공장 모두 여성노동자들의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공업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비중은 1920년대부터 급격하게 늘어났다. 1920년 이전 거의 없었던 공업 분야의 여성노동자들은 1920년 1만여 명을 돌파한 것을 기점으로 1940년에는 8만여 명까지 늘어났다.6 여성 노동자의 증가율은 같은 기간 남성 노동자 증가율보다 더 높은 것이었다. 공업 중에서도 여성노동자들이 많이 진출한 분야는 섬유공업이었다. 그 중에서도 제사는 여성 노동자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1920년대 초부터 제사 분야에서 여성 노동자의 비율은 85~90%에 이르렀는데, 이는 식민지배가 끝나는 1940년대까지 유지됐다.7 그 정도로 제사 분야에서 여성노동자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고무공업 역시 여성노동자들이 많이 진출한 분야였다. 전반적으로 화학공업에서는 여성 노동자들의 비율이 높지 않았지만 고무 분야는 여성노동자의 비율이 60~70%에 이를 정도로 높았다.8 고무 분야에서도 여성노동자들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서울고무공장과 종연방적 제사공장은 신설리에 세워졌다는 것과 함
께 또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두 공장 모두 여성노동자들의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공업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비중은 1920년대부터 급격하게 늘어났다. 1920년 이전 거의 없었던 공업 분야의 여성노동자들은 1920년 1만여 명을 돌파한 것을 기점으로 1940년에는 8만여 명까지 늘어났다.6 여성 노동자의 증가율은 같은 기간 남성 노동자 증가율보다 더 높은 것이었다. 공업 중에서도 여성노동자들이 많이 진출한 분야는 섬유공업이었다. 그 중에서도 제사는 여성 노동자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1920년대 초부터 제사 분야에서 여성 노동자의 비율은 85~90%에 이르렀는데, 이는 식민지배가 끝나는 1940년대까지 유지됐다.7 그 정도로 제사 분야에서 여성노동자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고무공업 역시 여성노동자들이 많이 진출한 분야였다. 전반적으로 화학공업에서는 여성 노동자들의 비율이 높지 않았지만 고무 분야는 여성노동자의 비율이 60~70%에 이를 정도로 높았다.8 고무 분야에서도 여성노동자들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