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돈암동의 인구변화와 관련된 내용이다. 돈암동 지역은 조선시대 동소문 밖 ‘성저십리(城底十里)’로서 동소문동, 삼선동, 동선동, 돈암동을 포함하였는데, 가장 오래된 인구통계가 남아있는 1915년에는 1,138명으로 한가로운 시골의 모습이었다. 이후 1930년대부터 서울의 확장으로 돈암동 지역이 개발되고 인구가 빠르게 늘어, 1949년 통계에는 62,685명으로 급격한 증가세를 보였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잠시 인구가 줄기도 하였으나 1960년대 이후 빠르게 증가하여, 성북구에서 가장 일찍부터 인구가 집적하고 또 가장 번화한 지역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주거지역이 점차 상업업무지역으로 바뀌면서 상주인구가 감소하였다. 2000년대의 재개발을 거치면서 주거형태가 아파트 중심으로 변모하였고, 인구도 돈암 1․2동을 합쳐 4만 여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 各洞別人口集積推移(2)
2) 敦岩洞 地域
여기서 돈암동지역이라 함은 돈암동은 물론 동선동, 삼선동을 총망라 한 지역을 말한다. 이미 법정동명까지 달라진 東仙洞, 三仙洞을 敦岩洞으로 묶어 다루는 것은 이들 지역이 地域的으로 近接되어 있고 成長背景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래서인지 지금부터 57년 전만 해도 이들 동의 법정동은 모두 敦岩洞이었기 때문이다
이 地域의 人口統計로 가장 오래 된 것이 1915년의 것이 있는데 1,138명으로 그 당시만 해도 한가로운 시골의 面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러던 것이 그 후 5년인 1920년에는 1,304명으로 약간의 증가를 보였으나 아직은 都市地域으로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 후 19년만인 1949년의 인구 가 62,685명인데 언제부터 급격한 증가세를 나타냈는지 기록이 발견되지 않아 알 길이 없다. 6·25사변을 겪은 1953년 3월 1일 현재의 인구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23,341명으로 크게 줄었으나 그 후 8년만인 1961년에는 100,067명으로 10만명을 돌파하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그 후에도 증가세는 계속되어 1970년에는 134,171명까지 증가하더니 이듬해부터 감소하기 시작, 10년 후인 1980년에는 104,730명, 다시 10년 후인 1990년에는 80,526명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역시 성북구에서는 가장 일찍부터 인구가 집적하고 또 가장 번화한 지역으로 성장하더니 주거지역이 점차 상업업무지역으로 바뀌면서 상주인구가 감소한 때문 이라 보여지고 최근 동소문동의 재개발사업에 따른 불량건물의 대량철거도 한 원인이다.
2. 各洞別人口集積推移(2)
2) 敦岩洞 地域
여기서 돈암동지역이라 함은 돈암동은 물론 동선동, 삼선동을 총망라 한 지역을 말한다. 이미 법정동명까지 달라진 東仙洞, 三仙洞을 敦岩洞으로 묶어 다루는 것은 이들 지역이 地域的으로 近接되어 있고 成長背景도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래서인지 지금부터 57년 전만 해도 이들 동의 법정동은 모두 敦岩洞이었기 때문이다
이 地域의 人口統計로 가장 오래 된 것이 1915년의 것이 있는데 1,138명으로 그 당시만 해도 한가로운 시골의 面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었다. 그러던 것이 그 후 5년인 1920년에는 1,304명으로 약간의 증가를 보였으나 아직은 都市地域으로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 후 19년만인 1949년의 인구 가 62,685명인데 언제부터 급격한 증가세를 나타냈는지 기록이 발견되지 않아 알 길이 없다. 6·25사변을 겪은 1953년 3월 1일 현재의 인구는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23,341명으로 크게 줄었으나 그 후 8년만인 1961년에는 100,067명으로 10만명을 돌파하는 폭발적인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그 후에도 증가세는 계속되어 1970년에는 134,171명까지 증가하더니 이듬해부터 감소하기 시작, 10년 후인 1980년에는 104,730명, 다시 10년 후인 1990년에는 80,526명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역시 성북구에서는 가장 일찍부터 인구가 집적하고 또 가장 번화한 지역으로 성장하더니 주거지역이 점차 상업업무지역으로 바뀌면서 상주인구가 감소한 때문 이라 보여지고 최근 동소문동의 재개발사업에 따른 불량건물의 대량철거도 한 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