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동소문로13길 38( 동소문동6가 27-1)에 위치한 공립 초등학교이다. 1944년 돈암국민학교로 개교하였다. 미군들이 지어준 건물이 깡통을 엎어 놓은 것 같았다고 하여 깡통학교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 멀리 돈암동 외곽에 있던 학교까지 다니던 학생들이 새로 생긴 돈암국민학교에 몰리며 한때는 전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학생 수가 많았다. 1995년 교육법 개정으로 1996년에 돈암초등학교로 개칭하였다. 2005년 신축 교사인 서관을 개관하였고, 2006년 2월 병설 유치원을 개원하였다. 2019년 50학급을 편성하여 운영하였다. 2025년 기준 604명이 재학 중이다.
1944년 신설된 돈암국민학교(현재 돈암초등학교)는 미군들이 지어준 건물이 꼭 커다란 깡통을 엎어 놓은 것 같았다고 해서 깡통학교라는 별명이 붙었다. 멀리 돈암동 외곽에 있던 학교까지 다니던 학생들이 새로 생긴 돈암국민학교에 몰리며 한때는 전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학생 수가 많았다.
엄청 많았어요. 50명. 반도 5반 이렇게 있었어. 6.25 때 지금으로 따지면 초등학교 졸업하고 1년 있다 결혼한 애가 있을 정도로 나이 차이가 많았어. 연령이 한 반에 여섯 일곱 살 차이가 난 사람도 있었어. … 먹는 것도 잘 못 먹어서 미국에서 준 분유를 점심 때 양재기에 들고 큰 솥에 끌인 것을 배급 받아먹고. 학교에서 끓여서 줬다고.
-주민 인터뷰-
1944년 신설된 돈암국민학교(현재 돈암초등학교)는 미군들이 지어준 건물이 꼭 커다란 깡통을 엎어 놓은 것 같았다고 해서 깡통학교라는 별명이 붙었다. 멀리 돈암동 외곽에 있던 학교까지 다니던 학생들이 새로 생긴 돈암국민학교에 몰리며 한때는 전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학생 수가 많았다.
엄청 많았어요. 50명. 반도 5반 이렇게 있었어. 6.25 때 지금으로 따지면 초등학교 졸업하고 1년 있다 결혼한 애가 있을 정도로 나이 차이가 많았어. 연령이 한 반에 여섯 일곱 살 차이가 난 사람도 있었어. … 먹는 것도 잘 못 먹어서 미국에서 준 분유를 점심 때 양재기에 들고 큰 솥에 끌인 것을 배급 받아먹고. 학교에서 끓여서 줬다고.
-주민 인터뷰-
학교는 돈암초등학교 다니셨나요?
학교는, 성북구 학군이 성북초등학교지. 성북초등학교. 요 동네 사는 사람들이 주로 학군이 혜화학군이 아니야. 사람들이 성북으로 가야하는데, 조금 있는 집 애들이나 사람들은 가라로(거짓으로) 조작을 해서 혜화초등학교로 갔었다고. 나 같은 경우도 성북초등인데, 돈암(초등학교)을 다녔다고.
이유가 있었나요?
중학교를 좋은 데로 가니까. 중학교 시험이 있었거든. 경기중학교, 서울, 보성 이런 데를 많이 가니까. 성북초등학교는 좋은 학교를 많이 못 갔어. 돈암은 어지간히 갔었거든. 저기서부터 쭉 돈암까지 다녔지. 4학년까지 다니다가 혜화로 옮겨주더라고. 4학년 때 리라초등학교가 처음으로 생겼어. 공부 잘하는 애들이 리라로 갔지. 혜화, 성북, 삼선에서도 리라를 갔어. 요 골목엔 성북고등학교가 있었잖아. 옛날에. 동구여상 애들이 내려오고. 주로 학생골목이었어. 아침저녁으로 많이 지나다녔지. 전부다 학생 애들이 지나다녔지.
학교는 돈암초등학교 다니셨나요?
학교는, 성북구 학군이 성북초등학교지. 성북초등학교. 요 동네 사는 사람들이 주로 학군이 혜화학군이 아니야. 사람들이 성북으로 가야하는데, 조금 있는 집 애들이나 사람들은 가라로(거짓으로) 조작을 해서 혜화초등학교로 갔었다고. 나 같은 경우도 성북초등인데, 돈암(초등학교)을 다녔다고.
이유가 있었나요?
중학교를 좋은 데로 가니까. 중학교 시험이 있었거든. 경기중학교, 서울, 보성 이런 데를 많이 가니까. 성북초등학교는 좋은 학교를 많이 못 갔어. 돈암은 어지간히 갔었거든. 저기서부터 쭉 돈암까지 다녔지. 4학년까지 다니다가 혜화로 옮겨주더라고. 4학년 때 리라초등학교가 처음으로 생겼어. 공부 잘하는 애들이 리라로 갔지. 혜화, 성북, 삼선에서도 리라를 갔어. 요 골목엔 성북고등학교가 있었잖아. 옛날에. 동구여상 애들이 내려오고. 주로 학생골목이었어. 아침저녁으로 많이 지나다녔지. 전부다 학생 애들이 지나다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