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아리/주거

1958년 09월
장소 · 인문지리
성북구 미아리고개와 길음동 일대의 주거와 관련된 내용이다. 해방 이후 무주택 빈민들을 위해 서울 곳곳에 공동 숙박소와 수용소를 설치하였는데, 미아리도 그 중 하나였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는 피난민들을 정착시키기 위하여 미아리에 난민정착촌을 조성하면서 이곳에 있던 공동묘지를 망우리 등 외곽으로 이전하였다. 자연히 이 지역은 낙후될 수밖에 없었고,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 불량주택 개량과 도시재개발을 추진하였다. 2000년대 이후에는 서울시의 정책에 의해 길음뉴타운이 조성되었으며, 그동안의 지속적인 재개발로 인해 돈암동과 길음동 일대의 주거형태는 아파트가 중심이 되었다.
길음동돈암동
저무른 무자(戊子)의 대회(大晦)! 희비쌍곡선(喜悲双曲線)이 교착(交錯) 요구호동포(要救護同胞) 이백오십만(二百五十萬)은 운다, 동아일보, 1948.12.31

저무른 무자(戊子)의 대회(大晦)! 희비쌍곡선(喜悲双曲線)이 교착(交錯) 요구호동포(要救護同胞) 이백오십만(二百五十萬)은 운다, 동아일보, 1948.12.31

저무른 무자(戊子)의 대회(大晦)! 희비쌍곡선(喜悲双曲線)이 교착(交錯) 요구호동포(要救護同胞) 이백오십만(二百五十萬)은 운다, 동아일보, 1948.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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