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관동 인구변화에 대한 내용이다. 석관동의 인구통계로 가장 오래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인데, 당시의 인구는 551명으로 한적한 농촌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해방 이후에는 장위동지역과 통합된 장석동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1949년에는 5,880명, 1953년에는 2,682명, 1961년에는 8,215명이었다. 1970년 통계에는 분리되어 석관동으로 나오는데 31,492명으로 크게 증가하였고, 이러한 추세는 지속되어 1981년에는 45,349명이었다. 하지만 이후부터 감소하는 추세로 돌아서 1990년에는 44,570명이었고, 2019년 34,046명이었다. 개발제한으로 인한 도시 노후화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데, 이를 타개하기 위한 도시재생이나 제한적인 개발 방식 등이 논의되고 있다.
2. 各洞別人口集積推移(9)
9) 石串洞 地域
石串洞의 人口統計가 발견된 것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1930년의 것이 있는데 당시의 인구는 551명으로 역시 한적한 농촌지역이었다.
光復以後에는 長位洞地域과 統合되어 1961년의 통계에도 長石洞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兩地域의 인구가 1949년에는 5,880명, 1953년에는 2,682명, 1961년에는 8,215명이었다.
1970년의 통계는 分洞된대로 나와 있는데 31,492명으로 크게 증가하였고 이 추세는 1980년대 초반까지도 계속되어 1980년에는 45,250명으로 증가하더니 1981년의 45,349명을 고비로 감소하기 시작, 1990년에는 44,570명까지 감소하였는데 역시 월곡·장위동지역과 마찬가지로 주거환경의 열악성을 기피하려는 경향과 임대아파트의 대량 공급이 원인인 것 같다.
2. 各洞別人口集積推移(9)
9) 石串洞 地域
石串洞의 人口統計가 발견된 것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1930년의 것이 있는데 당시의 인구는 551명으로 역시 한적한 농촌지역이었다.
光復以後에는 長位洞地域과 統合되어 1961년의 통계에도 長石洞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兩地域의 인구가 1949년에는 5,880명, 1953년에는 2,682명, 1961년에는 8,215명이었다.
1970년의 통계는 分洞된대로 나와 있는데 31,492명으로 크게 증가하였고 이 추세는 1980년대 초반까지도 계속되어 1980년에는 45,250명으로 증가하더니 1981년의 45,349명을 고비로 감소하기 시작, 1990년에는 44,570명까지 감소하였는데 역시 월곡·장위동지역과 마찬가지로 주거환경의 열악성을 기피하려는 경향과 임대아파트의 대량 공급이 원인인 것 같다.
(1) 인구
• 성북구의 인구는 2011년 12월말 현재 192,990세대 476,028명으로 이중 남자가 235,755명, 여자가 240,273명으로 남녀 구성비는 ‘49.53:50.47’이며 서울시 전체인구 10,464,051명의 4.5%를 차지.
• 20개 동 중 인구가 가장 많은 동은 종암동으로 15,429세대 38,183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최소 동은 현재 7,527세대 15,183명이 거주하고 있는 동선동이고, 동별 평균 인구수는 23,810명
• 돌곶이가 위치하고 있는 석관동은 16,006세대 38,164명이 거주하고 있음.
42쪽 표 [성북구 인구 및 세대] (2011.12.31.) 참고
(1) 인구
• 성북구의 인구는 2011년 12월말 현재 192,990세대 476,028명으로 이중 남자가 235,755명, 여자가 240,273명으로 남녀 구성비는 ‘49.53:50.47’이며 서울시 전체인구 10,464,051명의 4.5%를 차지.
• 20개 동 중 인구가 가장 많은 동은 종암동으로 15,429세대 38,183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최소 동은 현재 7,527세대 15,183명이 거주하고 있는 동선동이고, 동별 평균 인구수는 23,810명
• 돌곶이가 위치하고 있는 석관동은 16,006세대 38,164명이 거주하고 있음.
42쪽 표 [성북구 인구 및 세대] (2011.12.31.)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