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암동의 인구변화와 관련된 설명이다. 종암동의 인구는 1930년 649명으로 한산한 농촌지역이었다. 1949년에는 6,400명으로 해방 이후 크게 늘었으나, 6·25전쟁으로 2,684명까지 줄었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는 서울의 도시화로 인해 인구의 증가 폭이 커짐으로써 1970년에는 52,321명까지 증가하였다. 그러나 1974년의 52,585명을 고비로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여, 1980년에는 48,991명, 1990년에는 48,871명으로 감소추세에 접어들었다. 감소의 원인은 종암로 주변의 상가의 확장으로 주거기능의 상대적 감퇴때문으로 보인다. 2018년 기준으로 종암동의 인구는 42,876명 세대수는 17,104세대이다.
2. 各洞別人口集積推移(6)
6) 鍾岩洞 地域
종암동지역의 인구통계로 가장 오래된 것은 1930년의 것인데 당시 이 지역의 인구는 649명으로 역시 한산한 농촌지역이었다.
이 지역의 인구증가가 언제부터 박차를 가하게 되었는지는 광복이전의 통계가 발견되지 않아 알 수가 없고 우리 정부가 수립된 다음 해인 1949년의 통계에 의하면 6,400명으로 19년간에 거의 10배로 증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 6·25 事變으로 인한 人口의 감소는 2,684명까지 줄어 들었다가 1961년에는 21,597명으로 큰 증가세를 나타냈다.
그러나 인구증가가 가장 폭발적이라 할만치 큰 폭으로 증가한 시대는 60년대에서 70년대 사이로 1970년에는 52,321명까지 증가하고 그 다음 1974년의 52,585명을 고비로 점차 줄어 들기 시작, 1980년에는 48,991명, 1990년에는 48,871명으로안정적 감소추세에 있는데 역시 종암로 주변의 노선상가의 확장으로 주거기능의 상대적 감퇴에 인한 것 같다.
2. 各洞別人口集積推移(6)
6) 鍾岩洞 地域
종암동지역의 인구통계로 가장 오래된 것은 1930년의 것인데 당시 이 지역의 인구는 649명으로 역시 한산한 농촌지역이었다.
이 지역의 인구증가가 언제부터 박차를 가하게 되었는지는 광복이전의 통계가 발견되지 않아 알 수가 없고 우리 정부가 수립된 다음 해인 1949년의 통계에 의하면 6,400명으로 19년간에 거의 10배로 증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 6·25 事變으로 인한 人口의 감소는 2,684명까지 줄어 들었다가 1961년에는 21,597명으로 큰 증가세를 나타냈다.
그러나 인구증가가 가장 폭발적이라 할만치 큰 폭으로 증가한 시대는 60년대에서 70년대 사이로 1970년에는 52,321명까지 증가하고 그 다음 1974년의 52,585명을 고비로 점차 줄어 들기 시작, 1980년에는 48,991명, 1990년에는 48,871명으로안정적 감소추세에 있는데 역시 종암로 주변의 노선상가의 확장으로 주거기능의 상대적 감퇴에 인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