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문학평론가, 영문학자이자 성북동의 문인이다. 일본에 유학하여 문학예술과와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경성중학교에서 영어와 수학을 가르쳤다. 『조선일보』 학예부장을 지내고 1933년에는 구인회에 참가하였다. 6.25전쟁 때 납북되었다. 시집으로는 『기상도』(1936), 『바다와 나비』(1946), 수필집 『바다와 육체』(1948) 등이 있다.
「격! 흉금을 열어 선배에게 일탄을 날림」으로 첫 집단행동을 한 구인회는 바로 두 번째 행동에 돌입한다. 바로 강연회이다. 첫 번째 강연회는 1934년 6월 30일 열린 “시와 소설의 밤”이었다. 당시 광고는 “시와 소설의 밤”의 주체가 구인회임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발표자는 이태준, 박태원, 정지용, 김기림이었고, 장소는 종로 중앙기독청년회관(YMCA)이다. 역시 종로였다.
(중략)
구인회 회원들도 성북동을 찾았다. 수연산방을 나와 성북천을 건너 조금만 오르면 이종석의 별장이 있다. 걸어서 5분도 되지 않을 거리이다. 이 별장에서 이태준은 구인회 회원인 정지용, 이상 등과 함께 여유를 즐기기도 했다. 단순히 그 한번뿐만 아니라 구인회 회원들은 자주 성북동을 찾아왔을 가능성이 높다. 수연산방은 일종의 별장 같은 구조를 갖고 있는데, 이런 좋은 곳을 손님들이 가만히 두었을리 없다.
구인회는 이후 여러 번 회원들의 교체를 겪는다. 마지막에 남은 사람은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박태원, 김상용, 이상, 김유정, 김환태 등 8명이다. 구인회는 1936년 동인지인 『시와 소설』의 발행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접는다. 구인회도 1936년 10월에는 소멸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정지용, 이상, 박태원 등과의 인연은 계속됐다. 이상은 1937년 젊은 나이로 요절하여 더 이상 인연을 이어가지 못했지만 정지용, 박태원과는 해방 이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하여 함께 활동했다.
「격! 흉금을 열어 선배에게 일탄을 날림」으로 첫 집단행동을 한 구인회는 바로 두 번째 행동에 돌입한다. 바로 강연회이다. 첫 번째 강연회는 1934년 6월 30일 열린 “시와 소설의 밤”이었다. 당시 광고는 “시와 소설의 밤”의 주체가 구인회임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발표자는 이태준, 박태원, 정지용, 김기림이었고, 장소는 종로 중앙기독청년회관(YMCA)이다. 역시 종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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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 회원들도 성북동을 찾았다. 수연산방을 나와 성북천을 건너 조금만 오르면 이종석의 별장이 있다. 걸어서 5분도 되지 않을 거리이다. 이 별장에서 이태준은 구인회 회원인 정지용, 이상 등과 함께 여유를 즐기기도 했다. 단순히 그 한번뿐만 아니라 구인회 회원들은 자주 성북동을 찾아왔을 가능성이 높다. 수연산방은 일종의 별장 같은 구조를 갖고 있는데, 이런 좋은 곳을 손님들이 가만히 두었을리 없다.
구인회는 이후 여러 번 회원들의 교체를 겪는다. 마지막에 남은 사람은 이태준, 정지용, 김기림, 박태원, 김상용, 이상, 김유정, 김환태 등 8명이다. 구인회는 1936년 동인지인 『시와 소설』의 발행을 마지막으로 활동을 접는다. 구인회도 1936년 10월에는 소멸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정지용, 이상, 박태원 등과의 인연은 계속됐다. 이상은 1937년 젊은 나이로 요절하여 더 이상 인연을 이어가지 못했지만 정지용, 박태원과는 해방 이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하여 함께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