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성북동 풍경 : 이태준의 소설 「달밤」
성북동으로 이사 나와서 한 대엿새 되었을까, 그날 밤 나는 보던 신문을 머리맡에 밀어 던지고 누워 새삼스럽게, “여기도 정말 시골이로군!”하였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단편소설 작가인 이태준의 소설 「달밤」 주인공 ‘나’가 말하는 성북동의 모습이다. ‘나’는 성북동을 시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시냇물 소리와 솔바람 소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황수건이라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황수건은 못난이였다. 소설 속 ‘나’는 “못난이들은 서울에서 대놓고 살 수 없는데 성북동은 시골이기 때문에 못난이 황수건이 눈에 더 잘 띈다.”고 했다. 시골에서는 황수건과 같은 사람들이 도시에서보다는 잘 살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하지만 이러한 황수건도 이제 성북동에서 살기가 힘들어진다. 성북동에서 ‘노랑수건’하면 자신을 다 알 정도로 유명했던 황수건은 성북동 내에서 자신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성북동이 신문사의 한 구역으로 배정되면서 신문배달 보조역 직을 잃게 된다. 참외장사는 잘 되지 않고 아내는 달아났다. 소설의 주인공이 보는 황수건은 처량하다. 소설 「달밤」에서 나타나는 성북동은 이제 옛날 시골 동네가 아니었다. 시골이 아닌 성북동에서 황수건이 차지할 곳은 없었다. 1933년 현재 이태준은 변화하는 성북동의 모습을 이 짧은 소설에 담은 것이다.
1930년대 성북동 풍경 : 이태준의 소설 「달밤」
성북동으로 이사 나와서 한 대엿새 되었을까, 그날 밤 나는 보던 신문을 머리맡에 밀어 던지고 누워 새삼스럽게, “여기도 정말 시골이로군!”하였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단편소설 작가인 이태준의 소설 「달밤」 주인공 ‘나’가 말하는 성북동의 모습이다. ‘나’는 성북동을 시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시냇물 소리와 솔바람 소리 때문만은 아니었다. 황수건이라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다. 황수건은 못난이였다. 소설 속 ‘나’는 “못난이들은 서울에서 대놓고 살 수 없는데 성북동은 시골이기 때문에 못난이 황수건이 눈에 더 잘 띈다.”고 했다. 시골에서는 황수건과 같은 사람들이 도시에서보다는 잘 살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하지만 이러한 황수건도 이제 성북동에서 살기가 힘들어진다. 성북동에서 ‘노랑수건’하면 자신을 다 알 정도로 유명했던 황수건은 성북동 내에서 자신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성북동이 신문사의 한 구역으로 배정되면서 신문배달 보조역 직을 잃게 된다. 참외장사는 잘 되지 않고 아내는 달아났다. 소설의 주인공이 보는 황수건은 처량하다. 소설 「달밤」에서 나타나는 성북동은 이제 옛날 시골 동네가 아니었다. 시골이 아닌 성북동에서 황수건이 차지할 곳은 없었다. 1933년 현재 이태준은 변화하는 성북동의 모습을 이 짧은 소설에 담은 것이다.
「달밤」의 황수건은 조금 모자라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지만 나름 열심히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성북동에 있던 삼산학교에서 급사로 일하기도 했고, 거기서 쫓겨난 이후에는 신문사의 보조 배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부모님과 형님 내외, 자신 내외, 이렇게 7식구가 같이 살아 쉬이 놀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나중에 보조배달원마저 잘리게 되자 그는 다시 삼산학교 급사로 들어갈 요량으로 운동도 하고 학교 사무실을 찾아가 조르기도 하지만 그 역시 자기보다 힘 좋고 일 잘하는 급사가 이미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달밤」의 황수건은 조금 모자라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지만 나름 열심히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성북동에 있던 삼산학교에서 급사로 일하기도 했고, 거기서 쫓겨난 이후에는 신문사의 보조 배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부모님과 형님 내외, 자신 내외, 이렇게 7식구가 같이 살아 쉬이 놀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나중에 보조배달원마저 잘리게 되자 그는 다시 삼산학교 급사로 들어갈 요량으로 운동도 하고 학교 사무실을 찾아가 조르기도 하지만 그 역시 자기보다 힘 좋고 일 잘하는 급사가 이미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북동으로 이사 나와서 한 대엿새 되었을까. 그날 밤 나는 보던 신문을 머리맡에 밀어던지고 누워 새삼스럽게 “여기도 정말 시골이로군!” 하였다. 무어 밖이 컴컴한 걸 처음 보고 시냇물 소리와 쏴- 하는 솔바람 소리를 처음 들어서가 아니라 황수건이라는 사람을 이날 저녁에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몇 마디 사귀지 않아서 곧 못난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 못난이는 성북동의 산들보다 물들보다 조그만 지름길들보다 더 나에게 성북동이 시골이란 느낌을 풍겨주었다. (이태준 「달밤」 중에서)
이태준의 단편 소설 「달밤」은 1933년 11월 발표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30년대의 성북동을 배경으로 하는 풍속소설로 ‘나’ 와 신문 보조배달부 황수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나’는 사대문 안에 살다가 성북동으로 이사와 이곳이 시골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작품 속 황수건은 보조배달부에서 원배달부가 되는 것이 소원인 어리석고 못난 사내이다. 그러나 그는 변화하는 세태 속에서도 순수하며 순정을 갖고 살고 있다. 작가는 작품 속 ‘나’를 통해 황수건, 그리고 서민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황수건은 원배달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보조배달부의 일마저 잃어버리고 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마저 도망가고 말았다.
“수건인가?”
하고 아는 체 하려다 그가 나를 보면 무안해할 일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휙 길 아래로 내려서 나무 그늘에 몸을 감추었다.
그는 길을 보지도 않고 달만 쳐다보며, 노래는 이 이상은 외우지도 못하는 듯 첫 줄 한 줄만 되풀이하면서 전에는 본 적이 없었는데 담배를 다 퍽퍽 빨면서 지나갔다.
달밤은 그에게도 유감한 듯하였다. (이태준 「달밤」 중에서)
소설에 나타난 모습을 모두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소설이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잘 표현해주는 매체라는 것이다. 이태준의 단편 소설에서 보이는 1930년대 동소문 밖 성북동의 모습은 애상적이면서도, 한편으로 알 수 없는 따뜻함이 묻어나오는 곳이다.
성북동으로 이사 나와서 한 대엿새 되었을까. 그날 밤 나는 보던 신문을 머리맡에 밀어던지고 누워 새삼스럽게 “여기도 정말 시골이로군!” 하였다. 무어 밖이 컴컴한 걸 처음 보고 시냇물 소리와 쏴- 하는 솔바람 소리를 처음 들어서가 아니라 황수건이라는 사람을 이날 저녁에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몇 마디 사귀지 않아서 곧 못난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이 못난이는 성북동의 산들보다 물들보다 조그만 지름길들보다 더 나에게 성북동이 시골이란 느낌을 풍겨주었다. (이태준 「달밤」 중에서)
이태준의 단편 소설 「달밤」은 1933년 11월 발표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30년대의 성북동을 배경으로 하는 풍속소설로 ‘나’ 와 신문 보조배달부 황수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나’는 사대문 안에 살다가 성북동으로 이사와 이곳이 시골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작품 속 황수건은 보조배달부에서 원배달부가 되는 것이 소원인 어리석고 못난 사내이다. 그러나 그는 변화하는 세태 속에서도 순수하며 순정을 갖고 살고 있다. 작가는 작품 속 ‘나’를 통해 황수건, 그리고 서민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황수건은 원배달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보조배달부의 일마저 잃어버리고 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마저 도망가고 말았다.
“수건인가?”
하고 아는 체 하려다 그가 나를 보면 무안해할 일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휙 길 아래로 내려서 나무 그늘에 몸을 감추었다.
그는 길을 보지도 않고 달만 쳐다보며, 노래는 이 이상은 외우지도 못하는 듯 첫 줄 한 줄만 되풀이하면서 전에는 본 적이 없었는데 담배를 다 퍽퍽 빨면서 지나갔다.
달밤은 그에게도 유감한 듯하였다. (이태준 「달밤」 중에서)
소설에 나타난 모습을 모두 사실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소설이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잘 표현해주는 매체라는 것이다. 이태준의 단편 소설에서 보이는 1930년대 동소문 밖 성북동의 모습은 애상적이면서도, 한편으로 알 수 없는 따뜻함이 묻어나오는 곳이다.
소설의 첫 부분이다. 당시 성북동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이태준이 성북동으로 이사 온 것은 1933년으로 알려져 있다. 성북동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돈암지구가 토지구획정리사업 대상지가 되어서 사업이 시작된 1936년이고, 그나마도 이태준이 살았던 ‘수연산방’ 지역은 대상지에 포함되지 않았다. 사대문 근처에 살지만, 시골스러운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는 사실은 못난이 황수연의 ‘활약’에 알맞은 배경이었을 것이다.
삼산학교에 급사로 있을 시대에 삼산학교에다 남겨 놓고 나온 일화도 여러 가지라는데, 그 중에 두어 가지를 동네 사람들의 말대로 옮겨보면, 역기 그때부터도 이야기를 대단 즐기어 선생들이 교실에 들어간 새 손님이 오면 으레 손님을 앉히고는 자기도 걸상을 갖다 떡 마주 놓고 앉는 것은 물론, 마주 앉아서는 곧 자기류의 만담 삼매로 빠지는 것인데, 한 번은 도 학무국에서 시학관이 나온 것을 이따위로 대접하였다.
신문 보조배달원에서도 해고된 황수건의 옛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부분이다. 삼산학교는 1907년 5월 18일 봉시(奉侍) 황수연(黃壽延)이 중심이 되어 만든 학교이다. 현재 성북동 46-3번지에 위치한 전등사 주변으로 추정된다. 삼산학교는 해방 이후에 공립화 되며 현재의 성북초등학교로 이어지는데, 그때까지는 주민들 스스로의 힘으로 운영된 일종의 사립 교육기관이었으며, 현재 성북구지역에 최초로 만들어진 근대식 학교로 알려져 있다.
어제다. 문안에 들어갔다 늦어서 나오는데 불빛 없는 성북동 길 위에는 밝은 달빛이 깁을 깐 듯하였다.
그런데 포도원께를 올라오노라니까 누가 맑지도 못한 목청으로
"사……케……와 나……미다카 다메이……키……카……."(술은 눈물인가 한숨인가…….)
를 부르며 큰길이 좁다는 듯이 휘적거리며 내려왔다. 보니까 수건이 같았다.
소설의 결말 부분에 해당한다. 황수건은 이 전에 주인공에게 포도를 훔쳐 주었다가 주인에게 매를 맞았으며, 이 부분은 그 이후에 해당한다. 혜화문 근처에는 20세기 초반부터 수도원이 있었으며, 수도원에서는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주변에 포도밭을 만들었다(현재에도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이 있다). 「달밤」에서는 이 포도원 중 한 곳이 성북동에 위치했음을 보여준다. '깁'은 비단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