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일제강점기
- 시기:1936년 10월
- 나는 집을 나선다. 포도원 앞쯤 내려오면 늘 나는 생각, '버스가 돌다리까지 들어왔으면'을 오늘도 잊어버리지 않고 하면서 개울물을 내려다본다. 여러 날째 씻겨 내려간 개울이라 양치질을 하여도 좋게 물이 맑다.(이태준 전집2) 돌다리 외, 53쪽주인공이 외출을 하면서 보는 성북천의 광경이다. 성북천에 돌다리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현재 ‘쌍다리’라고 불리는 곳은 본래 목조 다리와 석조 다리가 각각 하나씩 있었기에 붙은 이름이다. “여러 날째 씻겨 내려간 개울이라 양치질을 하여도 좋게 물이 맑다.”는 대목에서는 성북천의 물이 항상 맑지만은 않았음도 확인할 수 있다.
- "나는 집을 나선다. 포도원 앞쯤 내려오면 늘 나는 생각, ‘버스가 이 돌다리까지 들어왔으면’을 오늘도 잊어버리지 않고 하면서 개울물을 내려다본다. (중략) 버스는 오늘도 놀리고 간다. 우산을 접으며 뛰어가려니까 스타트해버린다. 나는 굳이 버스의 뒤를 보지 않으려, 그 얄미운 버스 뒤에다 광고를 낸 어떤 상품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 의무를 가지지 않으려 다른 데로 눈을 피한다."(이태준 전집2) 돌다리 외, 58-59쪽현재의 쌍다리 부근에는 마을버스 1종과 지선버스 2종이 다닌다. 하지만 1930년대 후반의 성북동에는 차가 다니지 않았고 삼선교(현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까지 나가야 버스가 다녔다. 이태준이 ‘버스가 돌다리까지 들어왔으면’이라는 바람을 갖은 것은 이 때문이다. 한편 버스 뒤편에 광고가 붙어 있는 것, 자신이 도착할 때 즈음 출발하는 버스를 원망하는 모습은 현재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아 공감과 웃음을 자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