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발표한 장편소설로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서술한 일종의 자전적 소설이다. 일제강점기와 분단, 6.25 전쟁과 월남, 미국에서의 삶과 귀국 등 여러 사건들을 온 몸으로 겪어내며 작가는 개인의 삶은 물론 인류의 문명을 조명하며 깊은 성찰을 하고 있다. 특히 문학인으로써 끝없는 고뇌를 통한 구도의 길을 밝히는 자세를 보여주어, 출간 직후 문단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1994년 이산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작품이기도 하다.
우연하게 이루어진 방문이었다. 나는 삼선교에서 택시를 내려보니 참 오랜만에 이 동네에 오는구나 하는 느낌이 일었다. 삼선교 길을 흐르던 냇물이 있던 자리는 포장이 되어 있었다. 다리 저 편과 이 편의 지형을 간직하고 있던 기억 속의 풍경에 순식간에 그림 한 장이 추가되는 운동이 생생하게 실감된다.
거기는 그저 로터리가 되어 있어서 네 갈래 큰길 가운데 휑뎅그렁한 빈터일 뿐이었다. 삼선교 자체는 그렇다 하고 다릿목이었던 지점에 이르기 바로 전에 오른쪽에 있던 그 집도 없어지고 넓은 주차장이 되어 있었다. 그 집에서 서너 집 건너 있던 중국 음식점도 그 주차장 가장자리의 어느 부분이 된 모양이어서 그것도 없어져있다. 하기는 1953~1954년쯤이므로 벌써 40년 전 일이다. 그런데도 그 집 언저리만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되었다는 느낌에 가까울 뿐, 그리고 삼선천이 포장돼 있는데도 여전히 주변 일대는 낯익었다. 건물들도 그 무렵 것이 그대로 서 있는 것이 아니겠지만, 스카이라인의 변화를 가져올 만한 개발은 없었다. 혜화동에서 삼선교까지 오는 거리와 삼선교에서 둘러본 사방 풍경은 그렇게 세월을 덜 타 보였다. 아마 그 집 말고는 특히 눈에 익힌 어느 건물이나 모퉁이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인 듯하다. '그 집'이라 함은 '바울 정신병원'을 말한다. 주차장이 되어 있는 자리에 그 병원이 있었는데 내 친구가 이 병원의 보조의사로 근무했었다.
이 내용은 『화두』 2권 중 에피소드 3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제자와 함께 이태준의 집을 방문하기 위해 약속 장소에서 제자를 기다리는 중 삼선교 근처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대비시켜 서술하였다. 현재는 주차장이 되어버린 다릿목 일대의 모습을 회상하는 부분을 통해 삼선교가 복개되기 전의 모습을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녀가 사는 동네에 상허 이태준이 살던 집이 있다는 말은 지난해에 듣고 있었다. 그 말을 하던 그때 우연히 알게 됐다는 얘기였다. 그때는 그렇게만 들었다가 그 후에 만났을 때 또 그 얘기가 나온 끝에 관심이 있으시면 방문하실 수 있게 자기가 알아보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이 올해 정월이었는데, 방문 교섭이 되었다는 것이다. <해방전후>에서 상허는 적고 있었다. <…현은 정말 살고 싶었다. 살고 싶다기보다는 견디어내고 싶었다. 조국의 적일 뿐 아니라 인류의 적이요, 문화의 적인 나치스의 타도를 오직 사회주의에 기대하던 독일의 한 시인은 몰로토프가 히틀러와 악수를 하고 독소 중립조약이 성립되는 것을 보고는 그만 단순한 생각에 절망하고 자살하였다 한다. 그 시인의 판단은 경솔하였던 것이다. 지금 독소는 싸우며 있지 않은가? 미영중도 일본과 싸우며 있다. 연합군의 승리를 믿자. 정의와 역사의 법칙을 믿자! 정의와 역사의 법칙이 인류를 배반한다면 그때는 절망하여도 늦지 않을 것이다.' 현은 집을 팔지는 않았다. 구라파에서 에이전선이 아직 전개되지 않았고 태평양에서 일본군이 아직 라바울을 지킨다고는 하나 멀어야 이삼 년이겠지 하는 심산으로 집을 최대한도로 잡혀만 가지고 서울을 떠난 것이다.> 이렇게 떠났다가 해방이 되자 <해방전후>를 집필한 그 집으로 가고 있다.
이 내용은 『화두』 2권 중 에피소드 3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제자와 만나 이태준의 집으로 가는 중, 이태준의 작품을 읽고 난 후의 감상에 대한 소회가 기술되었다. 제자가 사는 동네에 상허 이태준이 살았던 집이 있다는 표현으로 보아, 성북동으로 한참 가고 있는 중임을 알 수 있다.
그 골목에 들어서자 한 집 건너서 오른쪽으로 돌로 쌓은 기초 위에 조금 높게, 흰 석회 바탕에 돌이 박힌 기와 얹은 담이 있었다. 담의 온 길이의 중간쯤 되는 곳에 담이 휘어져 들어갔다가 다시 저쪽으로 이어지는 곳에 돌 기초 높이만큼 계단이 있고 계단을 올라선 곳에 기와지붕이 얹힌 두쪽 나무 대문이 보였다. 강양이 대문 기둥에 붙은 벨을 눌렀다. 곧 사람이 나와서 문을 열어 주었다. 강 양이 그 중년 부인에게 인사를 하면서 나를 소개했다.
"들어오세요."
부인이 말했다.
우리는 그제서야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집은 대문을 들어서면서 오른쪽에 있고 건물 앞으로 집 자리만 한 넓이의 뜰인데 그곳에 우물과 나무가 있었다. 집을 향해서 왼쪽은 또 그만한 넓이의 터가 그냥 뜰로 되어 있었다.
이 내용은 『화두』 2권 중 에피소드 3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태준의 집 근처 동회에 도착한 ‘나‘와 제자는 방문 준비를 마치고 목적지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집을 구경하며 ‘나‘는 상념에 잠긴다. 이 장면은 이태준의 집 대문 안팎의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생생하고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마치 실제로 집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앞뜰의 우물은 몇 단 계단을 내려가 있는데 뚜껑을 덮어 놓았고 지금은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 계단 옆에 굵은 감나무가 있고 그 옆이 장독대였다. 장독대 옆으로 담 구석에 단풍나무가 있다. 부인이 쟁반에다 우유 담긴 컵을 얹어가지고 왔다. 우리는 마루 끝에 걸터앉아서 우유를 마시면서 마당을 살펴보았다. 담 밖에서 보인 나뭇가지는 저 감나무였다. 이 부인네는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라한다. 우유를 다 마시고 우리는 집 안팎을 자세히 둘러보았다.
누(樓)가 달려서 ㄱ자가 된 남향집인데 이 누의 남쪽 정면에 '문향루(聞香樓)'라 새긴 나무 현판이 걸려 있다. 이 누는 집을 향해 오른쪽 끝이고 ㄱ자의 가로 부분이 대청과 건넌방이다. 이 대청은 댓돌에서 올라선 곳이 바깥마루고, 그 안쪽에 유리 낀 창살문들로 막힌 그 안쪽이었다. 겨울에 따뜻한 대청이었을 것이다. 대청마루를 막은 유리문들 위에 나무 현판이 둘 걸렸는데, 하나는 '기영세가(耆英世家)'라 새겼는데 김정희(金正喜) 낙관이 보이고, 다른 하나는 '수연산방(壽硯山房)'이라 새겼다. 이 대청마루에 들어서면 오른쪽이 안방이고 왼쪽이 건넌방이다. 방은 크지 않았다. 방문마다 위에 현판이 걸렸다. 대청마루 뒷벽은 아래 반쪽이 벽이고 위쪽은 유리문이 죽 끼어 있다. 이 대청마루 왼쪽으로 좁고 짧은 복도가 돌아 들어간 끝에 뒷방문이 있다. 이 뒷방은 매우 작은 방이었다. 밖으로 향한 작은 창이 열려 있다. 대청 오른쪽이 안방인데 누 마루방과 붙어 있다. 누로 나가자면 안방을 통하게 된다. 이 누에는 사면에 모두 유리문이 달려 있었다. 남향이므로 여기도 겨울 해가 들면 따뜻했을 것이다. 건넌방은 대청마루의 다른 끝에 있는데 퇴창 밖이 툇마루고, 마루 끝에 난간이 둘려 있다. 이 창을 열면 뜰이 보이고 담 너머 산과 하늘이 보이는 방이다. 안방 뒤쪽에 벽을 사이하고 부엌이 있다. 부엌문을 지나 집의 맨 뒷부분에 화장실이 있다.
이 내용은 『화두』 2권 중 에피소드 3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나‘는 이태준의 집 대문을 건너와 앞뜰부터 뒷마루까지 구석구석을 샅샅이 둘러보며 이태준의 자취를 떠올려본다. 앞뜰과 마당, 누마루와 대청마루, 현판들, 안방과 건넌방, 심지어 툇마루까지 집 구조를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어 실제 이태준의 집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현재는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태준의 집, 수연산방의 구조와 일치한다.
이렇게 집을 다 살펴본다. 그의 몇 단편들에 묘사된 집이 이 집이다. 그는 이 집을 짓는 이야기를 수필로 쓰기도 했다. 그의 수필도 모두 읽을 만 하지만 그중에서도 훈훈한 이야기였다. 이제 집안을 다 둘러보고 장독대 앞에 있는 의자에 와 앉아서 집을 바라본다. 집은 그 시절의 규모로도 결코 큰 것이라 할 수 없으나, 그가 수필에서 구식 목수들의 인품을 칭송한 끝에 "이들의 손에서 제작되는 우리 집은 아모리 요새 시체 집이라도 얼마쯤 날림 끼는 적을 것을 은근히 기뻐하며 바란다."고 한 그 바람을 잘 이루고 있어 보인다. 작아서 아담하고 구석구석 알뜰해 보인다. 그는 '시체집'이라 했지만 벌써 반세기 너머 저편의 일이다. 게다가 옛날식으로 일하는 구식 목수들이 지은 집은 보이지 않는 구석까지 알뜰하게 지었음을 짐작할 만하다. 그런저런 사정을 모르고 보는 눈에게도 포근한 기운을 내보일 법하다.
이것이 상허 선생의 집이었다. 여기서 그는 그 구슬 같은 단편들을 다듬어 냈고 격동하는 시기의 숨결을 귀중하게 증언한 <해방전후>를 썼고, 일본 패망 직전에 시골로 가면서도 팔지 않은 이 집을 뒤로하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 것이다.
이 내용은 『화두』 2권 중 에피소드 3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이태준의 집을 구석구석 둘러본 ‘나‘는 이태준의 자취를 느끼며 상념에 잠긴다. 이 장면은 상념에 잠긴 ‘나‘의 생각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곳에서 이태준은 많은 작품들을 발표하였으며, 그가 사는 동네인 성북동의 정취와 풍경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자 하였다. 그러한 이태준의 의지는 지금까지도 성북동 수연산방 곳곳에 남아있다.
그가 이 집을 마지막으로 나섰을 때도 아마 이렇게 돌아보았을까. 지금은 골목이 되어 있지만 그의 단편을 읽으면 주변의 대부분의 집은 그때 없었던 모양이며, 시내로 들어가는 큰길에 나서자면, 지금은 복개된 냇물을 건너야 했을 것이다. 집 뜰에 서서 건너다 보이는 맞은편에도 인가는 있었던 듯하다. 「색시」의 묘사를 보면 그렇다. 그러나 지금처럼 동네가 넓게 들어앉은 분위기는 아니다. 건너편 방향을 묘사할 때 가장 힘주는 대목은 산줄기를 타고 뻗은 옛 성벽과 그 산줄기에서 화려한 저녁노을이다. 지금 보는 언저리 생김새하고는 전혀 다르게, 성문 밖 골짜기에 들어와서 개울 건너 산자락에 터 잡은, 조촐한 뒤뜰을 거느리고 누(樓)까지 달린 조선집이었다.
이 내용은 『화두』 2권 중 에피소드 3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나‘는 이태준의 집을 구경하고 잠시 상념에 잠긴 후 다시 돌아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이 장면은 대문을 나선 후 집 주변을 돌아본 ‘나‘의 시선이 묘사되어 있다. 시간이 흘러 소설 속 성북동의 모습과는 다소 달라졌지만, 옛 성벽과 산줄기에서 화려한 저녁노을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역사의 흐름 앞에 북변 어딘가에서 노역 중일 그의 처지가 순간 가련해진다. 이 장면을 통해 성북동 이태준의 집 주변의 변화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