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당 성북구 당 위원장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성북 제2동의 동회장이던 그는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서울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이는 일제시대 이래 주민조직의 핵심을 담당했던 동회의 위상이 1950년대 중반까지는 여전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제2동의 동회장은 김일金一씨였다. 이 중 제2동의 동회장 김일은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서울시 국회의원 16인 중 1인으로 9,838표로 당선되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만주 봉천 삼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남경 금릉대학을 중퇴한 이후 국민회의 선전부장, 자유당 성북구 당 위원장 등을 역임했었던 인물이었다.
제2동의 동회장은 김일金一씨였다. 이 중 제2동의 동회장 김일은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서울시 국회의원 16인 중 1인으로 9,838표로 당선되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만주 봉천 삼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남경 금릉대학을 중퇴한 이후 국민회의 선전부장, 자유당 성북구 당 위원장 등을 역임했었던 인물이었다.
제3대 국회의원 선거는 1954년 5월 20일에 시행되었는데 이때에도 서울시 국회의원 정원은 제2대 때와 동일하게 16명이었고 城北區도 1인의 의원을 선출하였다. 이때의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은 自由黨의 金一(당시 53세)이었고 9,838표를 득표하였다. 그의 경력은 滿洲 奉天 三省中學校 졸업, 中國 南京 金陵大學 중퇴, 國民會 宣傳部長, 自由黨 城北區黨委員長이었다. 그의 주소지는 城北區 城北洞 60∼8번지였다.
제3대 국회의원 선거는 1954년 5월 20일에 시행되었는데 이때에도 서울시 국회의원 정원은 제2대 때와 동일하게 16명이었고 城北區도 1인의 의원을 선출하였다. 이때의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은 自由黨의 金一(당시 53세)이었고 9,838표를 득표하였다. 그의 경력은 滿洲 奉天 三省中學校 졸업, 中國 南京 金陵大學 중퇴, 國民會 宣傳部長, 自由黨 城北區黨委員長이었다. 그의 주소지는 城北區 城北洞 60∼8번지였다.
동회장 중에는 후일 국회의원이 된 이도 있었다. 1951년 당시 성북 제 1동의 동회장은 조태우(趙泰友)씨, 그리고 제 2동의 동회장은 김일(金一)씨였다. 이중 제 2동의 동회장 김일은 1954년 제 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서울시 국회의원 16인 중 1인으로 9,838표로 당선되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만주 봉천 삼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남경 금릉대학을 중퇴한 이후 국민회의 선전부장, 자유당 성북구 당위원장 등을 역임했었던 인물이었다. 이는 일제시대 이래 주민조직의 핵심을 담당했던 동회의 위상이 50년대 중반까지는 여전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 사건이었다.
동회장 중에는 후일 국회의원이 된 이도 있었다. 1951년 당시 성북 제 1동의 동회장은 조태우(趙泰友)씨, 그리고 제 2동의 동회장은 김일(金一)씨였다. 이중 제 2동의 동회장 김일은 1954년 제 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서울시 국회의원 16인 중 1인으로 9,838표로 당선되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만주 봉천 삼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남경 금릉대학을 중퇴한 이후 국민회의 선전부장, 자유당 성북구 당위원장 등을 역임했었던 인물이었다. 이는 일제시대 이래 주민조직의 핵심을 담당했던 동회의 위상이 50년대 중반까지는 여전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 사건이었다.
○ 김일(金一) : 1951년 당시 성북제2동 동회장
·1954년 제 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서울시 국회의원 16인 중 1인으로 9,838표로 당선되기도 했으며 만주 봉천 삼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남경 금릉대학을 중퇴한 이후 국민회의 선전부장, 자유당 성북구 당위원장 등을 역임했었던 인물
·일제시대 이래 주민조직의 핵심을 담당했던 동회의 위상이 1950년대 중반까지 여전했음을 보여 주는 인물
○ 김일(金一) : 1951년 당시 성북제2동 동회장
·1954년 제 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서울시 국회의원 16인 중 1인으로 9,838표로 당선되기도 했으며 만주 봉천 삼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남경 금릉대학을 중퇴한 이후 국민회의 선전부장, 자유당 성북구 당위원장 등을 역임했었던 인물
·일제시대 이래 주민조직의 핵심을 담당했던 동회의 위상이 1950년대 중반까지 여전했음을 보여 주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