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동 주거 형태에 관한 내용이다. 정릉동은 북한산으로 가는 주요 길목 중 하나로 조선시대에는 한가로운 농촌 마을이었으며, 성 안 사대부의 유람처 또는 별서지였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부터 서울 인구가 급증하면서 서울 외곽이었던 정릉리에도 사람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1930년대 중반에는 정릉리가 경성부의 토막민을 수용하기 위한 장소로 선정되면서, 이주민들이 식수와 생활용수를 얻기 쉬운 정릉천에 토막을 지었다. 해방 후에는 그 자리를 무허가 판잣집이 대신했다. 6.25전쟁 휴전 이후, 급격히 늘어나는 서울 인구를 감당하기 위해 정릉동 등의 외곽 지역에 공영주택 건설이 추진되었다. 공영주택은 '문화주택'으로 불리며 1960~1970년대 크게 확산되었고 정릉동은 고급주택단지로 부상했다. 1979년에는 정릉천을 덮는 복개 공사가 시작되면서, 정릉천의 토막집과 판잣집은 완전히 사라졌다. 현재는 재개발로 정릉동에 아파트 단지가 많이 들어섰지만, 일부 지역에 도시형 한옥과 공영주택이 여전히 남아있다.
한가로운 농촌 마을 몇 개로 구성된 정릉동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때는 1930년 전후였다. 1920년대 중반까지도 27만명 가량의 인구를 유지하던 경성부는 1930년을 전후로 급격히 인구가 불어나 1993년이면 37만여 명이 사는 대도시가 되었다. 자연히 교외 지역도 마냥 한가로운 농촌지대로 남을 수 없게 되었다. 시내에서 행랑살이 하던 사람, 지방에서 일자리를 찾아 올라온 사람들이 정릉리와 같은 외곽 지역으로 분산되었다. 그리하여 1930년대 초반 고양군 숭신면의 성북리, 돈암리, 정릉리, 미아리의 집들은 2,000호에 달하게 되었다. 정릉고개(아리랑고개) 너머 정릉리까지는 전기가 가설되었고 자전거와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신작로가 닦였다.
한가로운 농촌 마을 몇 개로 구성된 정릉동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때는 1930년 전후였다. 1920년대 중반까지도 27만명 가량의 인구를 유지하던 경성부는 1930년을 전후로 급격히 인구가 불어나 1993년이면 37만여 명이 사는 대도시가 되었다. 자연히 교외 지역도 마냥 한가로운 농촌지대로 남을 수 없게 되었다. 시내에서 행랑살이 하던 사람, 지방에서 일자리를 찾아 올라온 사람들이 정릉리와 같은 외곽 지역으로 분산되었다. 그리하여 1930년대 초반 고양군 숭신면의 성북리, 돈암리, 정릉리, 미아리의 집들은 2,000호에 달하게 되었다. 정릉고개(아리랑고개) 너머 정릉리까지는 전기가 가설되었고 자전거와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신작로가 닦였다.
어느새 정릉천은 토막으로 들어찼고 해방 후에는 그 자리를 무허가 판잣집들이 대신했다. 정릉천의 토막과 판잣집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그리고 무허가 건물들이 사라진 정릉천을 덮는 복개 공사는 1979년에 시작해 1986년에 완료되었다. 정릉3동 청수교부터 종암사거리 월암교까지 뻗친 넓은 자동차 도로(지금의 정릉로)는 이때 생겨났다. 그와 함께 지난 날 정릉천 토막민들의 흔적도 서울 시민들의 시야에서 말끔히 사라졌다.
어느새 정릉천은 토막으로 들어찼고 해방 후에는 그 자리를 무허가 판잣집들이 대신했다. 정릉천의 토막과 판잣집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그리고 무허가 건물들이 사라진 정릉천을 덮는 복개 공사는 1979년에 시작해 1986년에 완료되었다. 정릉3동 청수교부터 종암사거리 월암교까지 뻗친 넓은 자동차 도로(지금의 정릉로)는 이때 생겨났다. 그와 함께 지난 날 정릉천 토막민들의 흔적도 서울 시민들의 시야에서 말끔히 사라졌다.
공영주택은 '문화주택'이라고도 불리며 1960~1970년대에 크게 확산되었다. 특히 1965년 9월 동방생명보험주식회사는 정릉과 장위 지역에서 대지 200~300평에 50평 규모의 2층 고급주택(일명 동방주택)을 건립하여 분양하였다. 당시 정릉동도 성북동이나 평창동처럼 고급주택단지로 부상하면서 유명 인사들이 이곳을 찾기도 하였다. 이처럼 정릉동이 개발되는 한편으로는 그날 벌어 살아가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무허가 판잣집도 늘어만 갔다.
정릉시장 주변 주택가에는 1970년대 지어진 2층형 국민주택과 단독주택이 밀집해 있고, 일부 지역에는 도시형 한옥이 20~30여채 남아 있는데 2012년 5월 주거환경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정릉골은 북한산국립공원과 접하는 계곡 지형에 자리 잡고 있어 경사가 급한 편이다. 대부분 시멘트 블럭 벽체에 슬레이트지붕의 소규모 노후주택이 밀집해 있다. 비정형의 골목길이 거미줄처럼 나 있어 비상차량 접근이 어려운 구역이 많다. 북한산국립공원과 인접한 정릉3재개발구역과 정릉8재개발구역도 경사지형에 1960~1970년대 주택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국민대학교 주변에는 대형 원룸 주택이 밀집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