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작가가 정릉집에 살 때 뒷산에서 어미새를 잃은 꾀꼬리의 새끼를 데려와 키웠던 일을 회상하며 쓴 수필이다. 작가는 어미새를 찾아주기 위해 딸과 함께 뒷산으로 가서 높은 나뭇가지에 새를 놓아주었지만 어미새가 외면하고 가버리자 다시 집으로 데려와 키웠다. 짧은 시간이지만 새를 키우면서 작가는 생명의 연약함과 아픔, 그리고 그에 대한 깊은 사랑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이 새와 함께한 신기한 체험을 작가는 소설 『토지』에도 썼다고 밝혔다.
환상의 새, 또 하나의 환상의 새가 있다. 십여 년 전 정릉집 뒷산에서 데려왔었던 꾀꼬리의 새끼다.
그 신기한 체험을 <土地>에도 썼지만 태풍이 지나간 뒤의 일이었다. 나는 그 소리가 환청인 것만 같았다. 일정한 곳에서 쉴 새 없이 들려오는 소리는 마음을 찢는 것만 같았다. 비가 내리는데 우산을 받쳐 들고 딸애랑 함께 소리를 따라 뒷산으로 올라가 보았다. 나뭇가지에 흡사 넝마와도 같은 꾀꼬리의 새끼 한 마리가 울고 있었다. 우리가 가까이 갔을 때 그는 깃털을 세우며 사나운 몸짓을 했다.
그러나 아직 날지 못하고 기진한 새는 쉽게 잡혔다. 집으로 내려온 우리는 상자를 마련하여 횃대를 만들어 새를 올려 주었다. 처음에는 좁쌀도 깨도 입을 굳게 다문 채 거부했다. 그러나 어느 서슬엔가 먹이는 입 속으로 들어갔고 굶주렸던 새는 미친 듯 모이를 받아먹기 시작했다. 비가 개고 해가 난 오후 기성을 지르며 어미 새가 뒷산에 나타났다.
꾀꼬리는 호호호 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며 울지만 때론 왜가리처럼, 비행기 프로펠러 돌아가는 듯 괴성을 지를 때도 있다. 우리는 새끼를 안고 나갔다. 본시 있던 나뭇가지에 새끼를 올려놓고 우리는 숨어서 그것을 지켜보았다. 지렁이 한 마리를 물고 온 꾀꼬리는 주변을 선회할 뿐 결국 새끼를 둔 채 사라지고 말았다. 새끼는 마음을 찢는 듯한 그 울음을 계속하였다.
하는 수 없이 우리가 다가갔을 때 새끼는 내 손등으로 옮겨 앉았으며 , 분명 그것은 환희라 할 밖에 없는 몸짓, 울음소리였다. 그 나뭇가지는 새끼 새에게 있어서 지옥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잔디밭에 앉아서 새를 내려주었다. 그러나 새는 나를 놓치기라도 할 것 같이 무릎에 올라앉는 것이었다. 내려주면 올라오고, 내려주면 올라오고.
우리는 지렁이를 잡아 먹이고 밤이면 촛불을 켜들고 풀숲을 헤쳐 여치도 잡아다 새에게 먹였다. 넝마 같기만 했던 새는 하루가 다르게 윤이 났고 깃털의 빛깔도 선명해졌다. 밖에 나갔다 오면 횃대 위에서 이리저리 뛰며 기뻐 어쩔 줄 모르던 새, 언어의 가소로움을 나는 그때 느꼈다. 전신으로 표현하는 기쁨, 그것은 가장 깊은 사랑의 표현이었다.
밤에 원고를 쓸 때는 새가 있는 상자에 보자기를 덮어 주었다. 밤은 소리 없이 흘러가고 생각이 떠오르지 않으면 나는 '나리야' 하고 불러본다. '삐욱!' 반드시 새는 대답을 하였다. '나리야' '삐욱!' '삐욱!'결국 나리는 다 크지 못하고 죽었다. 새는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먹는다는 말을 믿고 과식을 시켰던 것이 잘못된 것이었다. 기운이 없어 보이던 새는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횃대에서 떨어져 죽어 있었다. 가뿐하였던 몸무게, 노란빛이 아지랑이만 같았던 형체, 그 후 나는 오랫동안 방 안에서 우는 구돌개미 소리에 놀라 일어나곤 했었다. 꿈결에 나리 목소리만 같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