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구

1853년 - 1939년
서예가 · 인물 · 개인 · 화가
조선시대 문신이자 서화가이다. 덕온공주와 윤의선 사이에 후사가 없어 양자로 들어왔다. 고종 8년(1871) 직장(直長)으로서 문과에 급제한 후 벼슬이 예조·이조판서에 이르렀다. 1895년 을미사변 이후로 법부·탁지부·내부 등의 대신으로 10여 회 임명받았지만 모두 거절하고 장위산 밑에 은거하며 ‘장위산인(獐位山人)’이라 자호하였다. 일제가 남작 작위를 수여했으나 거절하고, 두문불출 세사를 멀리하였다. 글씨는 해서·행서를 많이 썼으며 그림은 난과 대를 잘 그렸다. 성북구 장위동의 농토는 대부분이 윤씨 일가의 소유였는데 1960년경부터 윤씨 일가에서 매도하고 또 개척되어 현재는 주택가로 밀집되었다. 그가 살았던 ‘장위동 김진흥 가옥’은 1977년 3월 17일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5호에 지정되었다.
장위동
윤용구 서예 대련 1, British Museum, 2016.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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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구 서예 대련 1, British Museum, 2016.08.16

윤용구 서예 대련 1, British Museum, 2016.08.16

  • 한문명칭:尹用求
  • 이명칭:장위산인(獐位山人), 석촌(石村), 해관(海觀)
  • 유형:서예가 · 인물 · 개인 ·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