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현대
- 시기:?
- 비고:1960년대 조직한 것으로 추정
- 주소: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
- ○ ‘성북동 청괴(靑怪)’ 모임 돌을 너무나도 사랑한 서울대 출신의 동양화가 몇몇은 ‘성북동 청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성북동 푸른도깨비’란 뜻인데 이들은 만나기만 하면 서로 돌에 대해 이야기하고 새로 수집한 돌에 대해 자랑을 했다. 서세옥은 창덕궁 연경당을 본 따 지은 자신의 집 무송재에 근원 김용준이 노시사방에 두고 즐겼다는 수석부터 여러 수석과 석물을 모아놓고 감상했다. 제자인 송영방, 임송희, 신영상 등도 스승을 따라 성북동으로 들어왔다. 근처에 있었던 동숭동 서울대 미술대학까지 멀지 않았고, 형제만큼이나 가까웠던 선후배들과 모여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송영방은 돌과 매화를 미치도록 좋아한다는 뜻의 매석취호(梅石醉豪)를, 임송희는 돌에 취했다는 뜻의 ‘취석헌(醉石軒)’을 각각 당호로 삼았다. 제2의 자아를 표현하는 호에도 돌에 대한 사랑은 여실히 드러난다. 신영상은 오래된 돌이라는 뜻의 노석(老石)을, 임송희는 ‘돌로써’라는 뜻의 ‘이석(以石)’을 호로 쓰면서 돌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표현했다.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89쪽
- ○ ‘성북동 청괴(靑怪)’ 모임 돌을 너무나도 사랑한 서울대 출신의 동양화가 몇몇은 ‘성북동 청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성북동 푸른도깨비’란 뜻인데 이들은 만나기만 하면 서로 돌에 대해 이야기하고 새로 수집한 돌에 대해 자랑을 했다. 서세옥은 창덕궁 연경당을 본 따 지은 자신의 집 무송재에 근원 김용준이 노시사방에 두고 즐겼다는 수석부터 여러 수석과 석물을 모아놓고 감상했다. 제자인 송영방, 임송희, 신영상 등도 스승을 따라 성북동으로 들어왔다. 근처에 있었던 동숭동 서울대 미술대학까지 멀지 않았고, 형제만큼이나 가까웠던 선후배들과 모여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송영방은 돌과 매화를 미치도록 좋아한다는 뜻의 매석취호(梅石醉豪)를, 임송희는 돌에 취했다는 뜻의 ‘취석헌(醉石軒)’을 각각 당호로 삼았다. 제2의 자아를 표현하는 호에도 돌에 대한 사랑은 여실히 드러난다. 신영상은 오래된 돌이라는 뜻의 노석(老石)을, 임송희는 ‘돌로써’라는 뜻의 ‘이석(以石)’을 호로 쓰면서 돌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표현했다.성북동 역사문화자원 조사·연구, 189쪽
- 작성자:오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