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경성제국대학 졸업 후 휘문중에서 교사로 생활하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1943년 일본의 전시상황과 연해주 등지의 독립군 활동 상황을 전파하는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가 해방 후에 출옥하였다. 당시 성북정 189-1번지(현 성북로 27)에 거주하였다. 1995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영화감독이다. 자신이 각본과 감독, 주연을 맡아 아리랑 고개가 배경으로 등장하는 무성영화 『아리랑』을 만들었다. 민족현실과 저항정신을 담은 민족영화의 선구자로 한국영화를 성장시켰고 나운규프로덕션을 조직하여 이태준의 소설 『오몽녀』 등 문예작품을 영화화하는데도 주력하였다. 작품으로는 『잘 있거라』, 『옥녀』, 『사랑을 찾아서』, 『벙어리 삼룡이』 등이 있다.
만화가, 화가이다. 1955년부터 신문에서 4컷 시사만화인 〈고바우영감〉을 연재하면서 현대사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담아낸 현대사의 산증인이다. 한국전쟁 때 정릉동 집 다락에 석 달 가까이 숨어 지내며 전쟁의 참상을 스케치했고, 인물캐릭터 200여개를 만들었다. 〈고바우영감〉은 1950년부터 『사병만화』·『만화신문』 등의 기관지와 『월간희망』 등에 수록하다가 1955년부터 『동아일보』에서 장기연재하였다. 이후 『조선일보』·『문화일보』 등을 거치며 자리를 옮기다 2000년 9월 끝맺는다. 〈고바우영감〉은 14,139회에 걸쳐 연재한 한국 최장수의 시사만화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3년 생존작가의 작품으로는 최초로 원화가 등록문화재 제538호로 지정됐다. 박수근 화백, 박고석 화백을 이웃으로 두고 명동 모나리자 다방에서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정릉 입구 오두막 선술집에서 들러 목을 축이곤 했다는 것이 그의 회상이다.
돈암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강영준은 경성인문중등학원에 다니던 중 지인에게 보낸 편지로 인해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시국에 관하여 인심을 어지럽히는 사항을 유포'하였다는 것이 이유였다. 조선임시보안령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그는 경성부 동대문구 돈암정 499-11번지(삼선교로16길 13)에 거주하고 있었다. 2017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