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정종명(66학번)이 서라벌예술대학 시절과 졸업 후 미아리 달동네에서의 문학 수업기를 회고한 수필이다. 특기장학생으로 입학한 자신만만했던 신입생이 오정희·이경자·김년균 등 문청 학우들과 교류하며 문학의 길을 모색하던 과정을 담담하게 되짚는다. 신춘문예 낙방 후 직장도 없이 김년균 시인의 셋방에 얹혀 살며 길음시장에서 끼니를 때우던 기억은 1960~70년대 문학 청년들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전한다. 서울의 변두리 길음동 미아동 일대가 상경 유학생의 생활 공간이자 한 작가의 문학적 뿌리가 내린 장소였음을 증언하는 회고록적 수필이다.
내 문학의 뿌리는 제4강의실
정종명 (66학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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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기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서라벌예대 문창과에 입학한 나는 약간의 우월감에 젖어 있었다. 바로 위 학년에 작가 이동하, 시인 김형영 형이 포진하고 있었다. 1년 후면 나도 그들처럼 학생 작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주리라는 터무니없는 시건방을 여러 모로 과시했던 것 같다.
50여 명에 이르는 학생 가운데서 나중에 문단에 나온 문우를 손꼽으면 김년균·오정희·이경자·윤정모·이우선·김희원·장경호·이남진·이옥희·안병국 등이 나의 동기였다. 그중에서 오정희와 이경자는 나와 동인회 비슷한 모임을 만들어 학교 앞에다 정한 내 하숙집에도 스스럼없이 드나들 정도로 절친했다. 내가 3년간의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했을 때, 이미 신춘문예를 통과해 당당한 작가로 입신한 오정희는 문창과 조교로 재임하고 있었다.
신춘문예 최종심에서 낙방의 고배를 마신 그해에 학교는 졸업했으나 직장 잡기가 난감했다. 그 무렵 김년균 형이 월간문학사에 근무하고 있었는데, 미아리 달동네에다 방 하나를 세 들어 혼자 살고 있었다. 문창과 동기생이기는 하지만 군 복무를 마치면서 대학에 들어온 그 형이 나의 딱한 사정을 알고 일단 자기 집에다 거처를 정해 놓고 차차 진로를 모색해 보자고 제의했다.
끼니는 대개 미아리 길음시장에서 매식으로 때웠고, 김년균 형이 출근하고 나면 나는 어두컴컴한 그 빈방으로 혼자 돌아갔다. 책상 앞에 붙어 앉아 작품을 쓴답시고 고심했지만 여름날 뿌리 뽑힌 고구마 줄기처럼 심신이 고루 시들어버린 나머지 이렇다 할 진척은 없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그 당시에 쓴 약 5백 여장의 중편 하나를 기념 삼아 지금도 가지고 있는데, 지금 보면 어디에도 내놓을 형편이 못 되는 엉터리 작품이었다. 그 엉터리 작품을 싫증도 안 내고 끈기 있게 읽어 주면서 “잘 썼다. 넌 틀림없이 큰 작가 될 거야.”하고 격려를 아끼지 않던 김년균 형의 그 무던한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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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이근배·오정희 외,『문학이라 쓰고 인생이라 읽다』, 작가세계, 2013, 122~125쪽.
김주영·이근배·오정희 외,『문학이라 쓰고 인생이라 읽다』, 작가세계, 2013, 122~1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