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송기원(68학번)이 돈암동 서라벌예술대학 입학 당시를 회고한 수필이다. 전라도 바닷가 5일 장터를 떠돌던 장돌뱅이 어머니가 속옷에 돈주머니를 달아주며 “뺏골 빠진 돈”이라 당부하던 장면을 중심으로, 자식의 출세에 건 어머니의 간절한 한과, 그 한이 끝내 풀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던 아들의 조숙한 자의식이 교차한다. 미아리고개를 넘어 무허가 판잣집 산동네 한가운데 자리한 서라벌예술대학의 풍경은 당시 성북 변두리의 실제 생활 공간을 생생하게 전한다. 고향의 장터와 성북구의 산동네, 어머니의 세속적 염원과 아들의 문학적 운명이 맞부딪히는 이 짧은 글은, 1960년대 지방 출신 문학 청년이 서울과 성북구라는 공간을 처음 마주한 감각을 솔직하게 담아낸 회고적 수필이다.
이 돈이 뭔 돈인지 잘 알제?
송기원(68학번, 소설가)
내가 서라벌예술대학에 입학하자 어머니는 나에게 여러 번 당부하였다. “아무튼 출세를 해야 헌다잉. 기연시 출세를 해서 금의환향을 해사제 이 엠씨 한이 풀릴 거잉께. 나사 니가 출세만 한담사 여그서 문 일은 더 못하겄냐? 나가 살이 닳아 없어지고 빼가 뿌서져서 가루가 되야도 니가 출세를 할 때까장 두시바라지를 하고 말텡께.” 당시 어머니는 전라도 바닷가의 시골 5일 장터에서 거적 몇 장에다가 차일을 치고 난장에 퍼질러 앉아 김이며 미역·멸치 따위 건어물을 파는 장돌뱅이였다. 그리고 나는 그런 장돌뱅이 어머니가 하루도 쉬지 않고 5일장을 돌아다니며 모은 쌈짓돈을 받아 서울로 소위 유학을 온 셈이었다.
그런 어머니에게는 자식의 출세란 일테면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의 ‘암행어서 출두!’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자식이 ‘서울에 있는 대학’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출세는 이미 절반쯤 ‘따 놓은 당상’ 이었다. 어머니가 그렇게 여긴데는 무엇보다도 고교 시절에 보인 나의 문학적 재능에 대한 시골 장터 사람들의 순박한 오해에 기인한 탓도 없지 않았다. 어쩌다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교의 백일장에 장원을 하고 또 지방신문의 신춘문예에 당선을 하자 장터 사람들이 “아, 옛날 같으면 과거시험에 장원급제를 한 셈 아니여?”하고 어머니를 부추긴 것이 어머니에게 ‘암행어서 출두!’같은 환상을 품게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이 돈이 뭔 돈인지 잘 알제? 니 엄씨 뺏골 빠진 돈이다! 출세허는 일 말고 헛된 곳에 쓸 생각일랑 아예 말어!” 어머니는 내 아래 속옷에 대학 등록금이며 생활비를 넣은 돈주머니를 달면서 내 귓바퀴에 입김을 쏟아 넣우며 되풀이하고는 했다. 어머니가 당부해 마지않는 소위 출세라는 것이 얼마나 무망한가를 자식은 너무나도 빤히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뺏골 빠진 돈’으로 자식을 뒷바라지하여 대학에 보내 보았자, 훗날 자식이 소위 어머니의 한을 풀어 줄 희망은 털끝만큼도 없을 것이었다. 기껏 출세랍시고 해 봤자 시인 나부랭이가 되어 가난하고 꾀죄죄한 문인 행세를 하는 것이 고작일 것이었다. 이미 조숙하여 고교 때에 지방에서 벌써 시인 노릇까지 흉내내 본 자식으로서는 어머니와는 달리 출세에 대한 어떤 세속적인 환상도 일찌감치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 후였다.
서라벌예술대학은 시내에서 미아리고개를 넘어가면 바로 오른쪽의 산등성이에 덩그렇게 위치해 있었다. 원래 바윗덩어리로 이루어진 돌산의 중턱을 다듬어 거기에 올려놓듯 세운 대학 건물은 예술 어쩌고 하면 흔히 떠올리기 마련인 무슨 화려하거나 고상한 분위기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당시만 해도 미아리는 서울의 변두리에 속했다. 그런 미아리 일대에서도 예술대학은 무허가 판잣집들이 게딱지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산동네의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는데, 게다가 반듯하게 자란 나무 한 그루 없이 본관을 위시해서 교사들만 무질서하게 들어서 있는 삭막하기 이를 데 없는 분위기였다. 어쨌든 장돌뱅이 어머니의 무거운 한을 어깨에 짊어지고 서울로 올라와 벌써부터 서울이라는 곳 자체에 주눅이 들어 헉헉대는 나에게는 기이하게도 미아리고개를 넘어서서 예술대학의 건물이 보이기만 하여도 금방 주눅에서 풀려나 생기가 도는 것이었다.
그런 예술대학의 분위기 속에서 나는 한 마리 암뱀이 되어 당연한 것처럼 암흑의 사상을 품어 퇴폐며 탐미, 그리고 위악이라는 새끼들을 낳았다. 아아, 그 새끼들 덕분에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도록 문인 행세를 하며 살아남을 줄 누가 알았으랴.
출처: 김주영·이근배·오정희 외, 2013,『문학이라 쓰고 인생이라 읽다』, 작가세계, 18~19쪽.
김주영·이근배·오정희 외, 2013,『문학이라 쓰고 인생이라 읽다』, 작가세계, 18~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