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벌예대 문창과 출신 작가들의 학창시절 회상기를 모은 『문학이라 쓰고 인생이라 읽다』에 수록된 한승원 작가의 수필이다. 작가가 회상하는 1960년 미아리고개 서라벌예대 문창과 강의실은 한국 문단의 미래를 밝힐 ‘별’들의 집합소였다. 서정주, 박목월, 김동리 등 전설적인 거장들의 강의를 들으며 한승원과 이문구, 조세희 같은 예비 문사들은 독설이 오가는 치열한 합평을 견디며 문학적 기량을 닦았다. 예술에 굶주려 도서관과 공연장을 누비고, 정릉천 뽕뽕다리 주변에서 대포를 나누던 낭만, 그리고 선배들의 수업을 도강하며 키웠던 오기와 패기까지. 이 글은 한국 현대문학의 요람이었던 그 시절, 청춘의 뜨거운 열정과 그리움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별들이 번쩍이던, 미아리고개 강의실
한승원(60학번, 소설가)
1960년 3월, 미아리고개의 2년제 서라벌예술초급대학 문예창작과 1학년 강의실에는 별들이 번쩍거렸다. 학과 정원이 60여 명이었는데, 그들 가운데 삼분의 일가량이, 이런저런 대학의 문학 콩쿠르에서 장원, 차상, 차하, 최우수상 따위에 입선한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등록금 전액 면제의 갑류 장학생이거나, 반액 면제 혜택의 을류 장학생들이었다.
그 가운데는 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문단에 등단한 시인도 있었다. 지금 미국에서 대단한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세방 시인이 그였다. 나머지는 등록금을 온전히 내고 들어온 일반 학생들이었는데 나와 이문구와 하현식은 거기에 속했다. 그 속에서 시골뜨기인 나는 만학이었으므로 늘 가슴 두근거림을 안은 채 하루하루를 살았다. 학생들은 모두 교수진이 좋아서 미아리고개의 서라벌예대 문창과로 모여든 오기와 패기 넘치는 문사들이었다. 시인으로는 서정주·박목월·김구용 선생이, 소설가로는 김동리 선생, 평론가로는 조연현 선생이 강의를 했다.
‘시 창작론’과 ‘시 실기’ 강의는 서정주 선생과 김구용 선생이 했고, ‘문장론’은 박목월 선생이 했고, ‘소설 실기’와 ‘소설 창작론’은 김동리 선생이 했고, ‘희곡론’ 강의와 ‘시나리오론’ 강의는 지금 나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어떤 분들이 맡았다. 40대 중반이거나 후반이던 그 선생님들은 모두 열강을 했다. 강의를 받는 학생들의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실기 시간은 늘 치열했다.
이마에 별 한둘씩을 달고 있는 학생들은 실기 시간에 누군가 제출한 작품에 대하여 사정없이 찍고 까고 헐뜯었다. 오만과 치기가 넘쳐났다. 작품을 제출한 학생은 뭇매를 맞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강의실에는 나중에 경희대로 전학 간 조세희 소설가(후에 ‘난장이’연작 소설로 서울의 종이 값을 올려놓았다.), 이세방 시인, 이문구 소설가(『관촌수필』의 작가), 나중에 캐나다로 이민 간 박상륭 소설가, 졸업 후 한양대로 편입한 이건청, 하현식·장효문시인, 강호무·한상윤 소설가, 이재금·조정자·곽현숙 시인 그리고 내가 있었다.
나는 교수들의 강의 한마디 한마디, 학생들의 감상 소감 발표 한마디 한마디를 가슴에 새겨들었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발견이었고, 하루 하루의 삶은 피와 살이 되고 있었다.
김구용 선생은 T.S. 엘리엇의 『황무지』와 「J.A.프루프록의 연가」, 단테의 『신곡』들을 줄줄 외면서 강의를 했고, 학생들에게도 외우라고 했다. 미술 전람회에 반드시 가라고 하고, 좋은 연극·영화를 보라고 하고, 클래식 음악을 열심히 들으라고 권했다. (이하 생략)
나는 토요일 일요일에는 국립도서관으로 도시락을 싸들고 가서 세계문학 전집을 읽었고, 점심을 굶으면서도 유치진 선생의 남산 원형극장에서 공연하는 <햄릿>, <세일즈맨의 죽음>, <포기와베스> 등을 관람했고, 음악 감상실에 드나들었다.
미아리 학교 앞에서 길음동으로 가려면 정릉천을 건너야 했다. 내를 가로질러 뽕뽕다리가 놓여 있었다. 뽕뽕다리 양옆에 대포집과 밥집, 떡집, 빵집들이 널려 있었다. 학생들은 끼리끼리 어울려 대포를 마셨다. 교수님들을 모시고 가서 마시기도 했다.
나는 하현식과 함께 2학년 교실에 가서 도강을 했다. 선배들은 후배들의 도강을 모른 체했다.
선배들의 강의실에는 소설가 김원일과 시인 신중신이 있었다. 훗날 영화감독이 된 김원두도 거기에 들어 있었다. 신중신은 시 실기 시간에 발표한 「내 이렇게 살다가」라는 시를 『사상계』 신인상에 응모하여 당선되었다. 키 작달막한 오 모는 재학 중에 『자유문학』 소설부 신인상을 받고 등단했다. 나는 도강을 하면서 선배들의 치열한 활동을 부러워했다.
아, 누가 다시 가져다줄 것인가. 하루하루 가슴 두근거리게 하던 그 미아리 서라벌예대 문창과 다니던 시절을.
출처: 김주영·이근배·오정희 외, 『문학이라 쓰고 인생이라 읽다』, 작가세계, 2013, 67~69쪽.
김주영·이근배·오정희 외, 『문학이라 쓰고 인생이라 읽다』, 작가세계, 2013, 67~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