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이다. 본명은 한백유이다. 1914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중국과 일본에서 서양화를 공부하였다. 1944년 귀국해서 강원도 고성에 머물 때 이중섭과 교유하였고, 한국전쟁 시기에는 부산으로 피난가서 박고석, 황염수 등과 화단활동을 하였다. 이후 서울로 이주하여 정릉동에 자리잡고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모던아트협회 창립을 주도하였다. 1961년에는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프랑스로 떠나 작가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추상미술을 개척한 1세대 작가로서, 이중섭, 김환기, 유영국 등과 함께 현대미술 태동기에 서구 모더니즘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개척한 한국 미술사의 산 증인이다.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면서 전시회를 열었고, 2013년에는 프랑스에서 100세 기념전시회도 개최하였다. 대표작으로 「나선」, 「공간」, 「번개탑」 등이 있다.
1950년대는 박고석, 이중섭, 한묵, 고은이 정릉에 머물렀다. 이중섭과 한묵은 1940년대 강원도 원산에서, 박고석과는 부산 피난 시절에 만났다. 박고석과 한묵이 정릉에 살 때 삼선교에 있던 병원에 입원 중이던 이중섭이 나와 한묵의 하숙집에 합류하였다. 시인 구상의 소개로 박고석을 알게 된 고은은 1959년부터 2년 간 박고석의 집에 머물렀다.
1955년으로 기억되는데, 묵이 내가 사는 정릉 골짜기로 이사를 왔다. 손수 끓여먹는 것에 진저리가 나서 하숙을 했다. … 1955년 중섭이 성 베드로 병원을 퇴원하면서 이곳으로 가담해 왔다. 어지간히 지치기도 했던 외로운 사람끼리 벽 하나를 사이에 둔 하숙생활이다. 묵과 중섭과 같이 살면서부터 더욱 그 주변은 두터운 정과 뜨뜻한 기가 오고가는 친구들이 적지 않게 정릉 골짜기로 모여들었다.
- 박고석, 「인간 한묵」-
한묵韓默(본명 한백유)은 1914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 가와바타미술학교에 유학하였다.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부산 피난 시절 ‘기조전’에 참여하고, 1957년 발족한 모던아트협회 창립회원으로 활동하였다. 홍익대학교 교수로 안정된 생활을 하던 중 새로운 예술세계를 찾아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가 현재까지 머물고 있다. 4차원의 공간감을 평면에 구현하였고, 유화, 수채화, 판화, 콜라주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였다.
1973년 박고석, 김수근, 최순우 등의 도움으로 도불渡佛12년 만에 ‘공간사랑’에서 판화를 전시한 이후 여러 차례 한국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3년 프랑스에서 100세 기념전시회를 개최하였다. 대표작으로 <나선>, <공간>, <번개탑> 등이 있다.
1950년대는 박고석, 이중섭, 한묵, 고은이 정릉에 머물렀다. 이중섭과 한묵은 1940년대 강원도 원산에서, 박고석과는 부산 피난 시절에 만났다. 박고석과 한묵이 정릉에 살 때 삼선교에 있던 병원에 입원 중이던 이중섭이 나와 한묵의 하숙집에 합류하였다. 시인 구상의 소개로 박고석을 알게 된 고은은 1959년부터 2년 간 박고석의 집에 머물렀다.
1955년으로 기억되는데, 묵이 내가 사는 정릉 골짜기로 이사를 왔다. 손수 끓여먹는 것에 진저리가 나서 하숙을 했다. … 1955년 중섭이 성 베드로 병원을 퇴원하면서 이곳으로 가담해 왔다. 어지간히 지치기도 했던 외로운 사람끼리 벽 하나를 사이에 둔 하숙생활이다. 묵과 중섭과 같이 살면서부터 더욱 그 주변은 두터운 정과 뜨뜻한 기가 오고가는 친구들이 적지 않게 정릉 골짜기로 모여들었다.
- 박고석, 「인간 한묵」-
한묵韓默(본명 한백유)은 1914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 가와바타미술학교에 유학하였다.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부산 피난 시절 ‘기조전’에 참여하고, 1957년 발족한 모던아트협회 창립회원으로 활동하였다. 홍익대학교 교수로 안정된 생활을 하던 중 새로운 예술세계를 찾아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가 현재까지 머물고 있다. 4차원의 공간감을 평면에 구현하였고, 유화, 수채화, 판화, 콜라주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였다.
1973년 박고석, 김수근, 최순우 등의 도움으로 도불渡佛12년 만에 ‘공간사랑’에서 판화를 전시한 이후 여러 차례 한국에서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3년 프랑스에서 100세 기념전시회를 개최하였다. 대표작으로 <나선>, <공간>, <번개탑> 등이 있다.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개척한 화가이다. 일본 가와바타미술학교에 유학한 이후 1952년 부산 피난 시절 박고석, 황염수와 생사를 같이 하며 가족처럼 지냈고, 이들과 르네상스 다방에서 ‘기조전其潮展’을 개최하며 화단활동을 시작하였다. 서울로 돌아 온 후 정릉동 근처 하숙집에서 생활하였다. 홍익대학교 교수를 지내던 중 새로운 예술세계를 찾아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갔다. 피카소를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소개하였고, 1969년 아폴로 우주선 달 착륙을 계기로 영감을 받아 기하학적인 요소로 4차원의 공간감을 평면에 구현한 작품을 선보였다. 2013년 프랑스에서 100세 기념전시회를 개최하였다.
기하학적 추상미술을 개척한 화가이다. 일본 가와바타미술학교에 유학한 이후 1952년 부산 피난 시절 박고석, 황염수와 생사를 같이 하며 가족처럼 지냈고, 이들과 르네상스 다방에서 ‘기조전其潮展’을 개최하며 화단활동을 시작하였다. 서울로 돌아 온 후 정릉동 근처 하숙집에서 생활하였다. 홍익대학교 교수를 지내던 중 새로운 예술세계를 찾아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갔다. 피카소를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소개하였고, 1969년 아폴로 우주선 달 착륙을 계기로 영감을 받아 기하학적인 요소로 4차원의 공간감을 평면에 구현한 작품을 선보였다. 2013년 프랑스에서 100세 기념전시회를 개최하였다.
추상미술을 개척한 1세대 작가로서, 이중섭, 김환기, 유영국 등과 함께 현대미술 태동기에 서구 모더니즘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개척한 한국 미술사의 산 증인이다. 현재까지도 프랑스에서 현역작가로서 작업에 몰두하고있는 102세 현역작가다.
서울 출생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 가와바타미술학교에 유학했고, 1952년 부산 피난 시절 동료화가 박고석, 황염수와 생사를 같이 하며 가족처럼 지냈다. 부산 피난시절 예술가들의 아지트 역할을 한 르네상스 다방에서 동인전으로 기조전(其潮展)을 개최하며 화단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서울로 돌아와서도 이들과 함께 정릉근처 하숙집에서 지내며 작품활동의 힘을 얻었다. 50년대 ‘전쟁의 단상’을 주제로 폐허와 빈궁 속에서 고난을 헤쳐나갈 상징으로서 빛과 정신적 지지체로서의 가족에 대한 작가의 염원을 담아낸 작업이 주를 이루었다. 모던아트협회 회원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홍익대 교수로서 안정된 생활을 했지만 새로운 예술세계에 목말라 하다가 1961년 프랑스로 떠나 작가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60년대에는 파리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조형요소 탐구’를 중시한 작품들에 매달렸다.
해외 예술동향에 문을 닫고 있었던 60년대의 한국 미술계에 피가소를 처음 소개했다. 1969년 미국의 아폴로우주선이 달에 착륙하는 사건을 계기로 영감을 받아 기하학적 요소로 4차원의 공간감을 평면에 구현한 작품을 선보였다. 색채와 형태, 마티에르에 대한 관심으로 2차원의 평면을 평면으로서 인정한 작업이었다. 평면이라는 제약을 벗어나 시간과 공간이 결합된 새로운 4차원의 공간감을 구현하고자 한 1970년대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작품들은 '공간의 쏘노리테' 군으로 분류된다. 시간과 공간이 결합된 우주적 공간으로서의 4차원 광활한 공간감을 화면에 담아낸 그림들은 한묵 예술의 결정체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원을 통해 리듬과 울림을 표현하려 했는데, 이는 또 다른 4차원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여기에 속도와 시간을 담으려는 작가의 노력은 평면에 방사성 문양과 사선을 집어넣게 됐고, 이를 지그재그로 표현해 우주와 속도의 공간을 표현했다.
평면 구성 안에 공간의 다이내미즘을 담은 한 화백의 작품은 캔버스라는 회화적 공간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탐구를 제시하며 한국 기하 추상의 새 지평을 열었다. 미술계에서는 “우리나라 기하추상의 한 면을 완성한 대표자”로 평가한다.
4년 전인 2012년 10년만에 한국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가진 한묵 화백은 “이 세상 모든 가시적인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의해 존립돼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각에 부딪칠 때가 많다”며 “들에 핀 한 송이 꽃만 하더라도 대기의 압력이 아니고는 피어날 수가 없는 것 아닐까, 외형적인 모든 존재는 생명력이 발산하는 내부 미의 환영에 불과한 것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라며 자신의 작품세계와 관련된 우주론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
추상미술을 개척한 1세대 작가로서, 이중섭, 김환기, 유영국 등과 함께 현대미술 태동기에 서구 모더니즘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개척한 한국 미술사의 산 증인이다. 현재까지도 프랑스에서 현역작가로서 작업에 몰두하고있는 102세 현역작가다.
서울 출생으로 일제강점기에 일본 가와바타미술학교에 유학했고, 1952년 부산 피난 시절 동료화가 박고석, 황염수와 생사를 같이 하며 가족처럼 지냈다. 부산 피난시절 예술가들의 아지트 역할을 한 르네상스 다방에서 동인전으로 기조전(其潮展)을 개최하며 화단활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서울로 돌아와서도 이들과 함께 정릉근처 하숙집에서 지내며 작품활동의 힘을 얻었다. 50년대 ‘전쟁의 단상’을 주제로 폐허와 빈궁 속에서 고난을 헤쳐나갈 상징으로서 빛과 정신적 지지체로서의 가족에 대한 작가의 염원을 담아낸 작업이 주를 이루었다. 모던아트협회 회원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홍익대 교수로서 안정된 생활을 했지만 새로운 예술세계에 목말라 하다가 1961년 프랑스로 떠나 작가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60년대에는 파리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조형요소 탐구’를 중시한 작품들에 매달렸다.
해외 예술동향에 문을 닫고 있었던 60년대의 한국 미술계에 피가소를 처음 소개했다. 1969년 미국의 아폴로우주선이 달에 착륙하는 사건을 계기로 영감을 받아 기하학적 요소로 4차원의 공간감을 평면에 구현한 작품을 선보였다. 색채와 형태, 마티에르에 대한 관심으로 2차원의 평면을 평면으로서 인정한 작업이었다. 평면이라는 제약을 벗어나 시간과 공간이 결합된 새로운 4차원의 공간감을 구현하고자 한 1970년대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작품들은 '공간의 쏘노리테' 군으로 분류된다. 시간과 공간이 결합된 우주적 공간으로서의 4차원 광활한 공간감을 화면에 담아낸 그림들은 한묵 예술의 결정체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원을 통해 리듬과 울림을 표현하려 했는데, 이는 또 다른 4차원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여기에 속도와 시간을 담으려는 작가의 노력은 평면에 방사성 문양과 사선을 집어넣게 됐고, 이를 지그재그로 표현해 우주와 속도의 공간을 표현했다.
평면 구성 안에 공간의 다이내미즘을 담은 한 화백의 작품은 캔버스라는 회화적 공간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탐구를 제시하며 한국 기하 추상의 새 지평을 열었다. 미술계에서는 “우리나라 기하추상의 한 면을 완성한 대표자”로 평가한다.
4년 전인 2012년 10년만에 한국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가진 한묵 화백은 “이 세상 모든 가시적인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의해 존립돼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각에 부딪칠 때가 많다”며 “들에 핀 한 송이 꽃만 하더라도 대기의 압력이 아니고는 피어날 수가 없는 것 아닐까, 외형적인 모든 존재는 생명력이 발산하는 내부 미의 환영에 불과한 것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라며 자신의 작품세계와 관련된 우주론에 대해 이야기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