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로 55(성북동 133-86)에 위치한 이발관이다. 새이용원을 운영하는 이발사 이덕훈은 1958년 정식 면허를 따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이발사가 되었다. 홍익고 후문 쪽에 있었던 명랑이발관에서 1975년부터 28년을 동업으로 운영하다, 2003년 동업자가 지병으로 은퇴하자 현재 위치로 옮겨 ‘새이용원’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요즘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출장 이발을 나가기도 하고, 휴일이면 노인정에 무료 이발 봉사도 다니며 삶이 주는 작은 행복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거(현재 운영 중인 이용원)는‘새이용원’이고 골목 위에 명랑이발원에서 내가 28년 있었거든. 요 앞 맞은편 서울슈퍼로 들어가는 골목 안에 마주보이는 집이 이렇게 판잣집으로 된 집 있잖아. 간판이 명랑이발소라고 있었어. 거기서 28년 있었어. 나하고 같이 동업하던 사람이 거기서 그만 두고 여기에 이거 차려놓고. 여기서 하다가 병들어 가지고 그만두고 내가 하게 된 거야.
이덕훈(1936~, 성북2동 북정골 45년 거주)
이거(현재 운영 중인 이용원)는‘새이용원’이고 골목 위에 명랑이발원에서 내가 28년 있었거든. 요 앞 맞은편 서울슈퍼로 들어가는 골목 안에 마주보이는 집이 이렇게 판잣집으로 된 집 있잖아. 간판이 명랑이발소라고 있었어. 거기서 28년 있었어. 나하고 같이 동업하던 사람이 거기서 그만 두고 여기에 이거 차려놓고. 여기서 하다가 병들어 가지고 그만두고 내가 하게 된 거야.
이덕훈(1936~, 성북2동 북정골 45년 거주)
['새이용원' 사장님 인터뷰]
잠시 후, 일을 끝낸 이발사 할머니가 덥석 내 손을 잡으며 바깥이 춥지 않느냐고 묻는다. 정이 많은 분이라고 느꼈다. “나, 아직 이렇게 건강해요.” 그러면서 할머니는 다시 한 번 내 손을 꼭 잡는다. 정말 내 손이 아플 정도로 아귀힘이 보통이 아니다. 연세가 얼마나 되셨냐고 물었더니 올해 86세라고 한다. 내가 이발관을 찾아온 이유를 말하자 자신의 이름은 이덕훈이며, 성북동에 54년간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옛날 젊을 때 찍은 사진까지 꺼내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19세 때 이발 기술을 배우기 시작하여 21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이발사 일을 했다고 한다. 처음엔 을지로 입구 보건사회부 구내이발관에서 친정어머니와 함께 7년간 일했다. 그때는 하루 20시간씩 일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시내에서 20년을 일하다 성북동으로 들어와 이발사 일을 한 지 47년이 되었다. 밖에 붙여놓은 자신의 얼굴 사진과 안내문은 7년 전에 찍고 만든 것이라고 한다. 지금 건물에서 일한 지는 2003년부터니까 17년이 되었다고 했다. 그전에는 도로 바로 건너편 골목에서 다른 이발사와 동업으로 ‘명랑이발관’을 운영하다가 독립해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평생 67년을 오로지 이발사 일을 하며 살았다.
아버지도 일제강점기 때부터 소련과 만주 국경 지역에서 이발사로 일하다 8·15때 한국으로 귀국했으며, 6·25때는 전쟁에도 참가했다며 남편의 ‘6·25참전용사증’을 보여준다.
사업을 하던 남편은 50세 때부터 병이 나서 20년간 병수발을 했는데 결국 향년 70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또한 아들이 모두 넷인데, 첫째는 58세 때 죽고, 60년생인 둘째는 40대 중반에 죽고, 셋째는 현대수산에 다녔는데 코로나 사태로 장사가 잘 안되자 홧김에 술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지 금년에 58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마지막 남은 막내아들은 산업대학을 나와서 D건설에 근무하며 지금 사당동에 살고 있다고 한다.
정기 휴일인 화요일에는 목욕도 하고 아픈 곳에 침도 맞으러 다니며 나름대로 1주일간 쌓인 피로를 푼다고 한다. 집이 가까운 곳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작은 3인용 낡은 소파를 가리키며 여기서 잔다며 이발관이 자기가 사는 집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발관 안에 쌓아둔 짐이 할머니의 세간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이발사 할머니는 또 내 손을 잡으며 말한다.
“5천 원이야. 10년 전 가격 그대로니까 다음에는 이발하러 와. 요즘은 코로나로 손님이 줄어서 임대료 내기도 힘들어.”
그 말을 듣자 울컥 울대가 막히며 가슴이 짠했다. 문을 나서는데 뒤따라 나온 할머니가 쌍화탕 한 병을 주며 먹으라고 한다.
“이거 지금 따끈할 때 먹으면 추위에 좋아.”
성북천 산책길을 걸어 집으로 오는 동안 할머니의 마지막 말이 떠올라 자꾸 이발관 쪽을 바라보며 제자리걸음만 했다. 손에 쥔 쌍화탕 병의 온기가 할머니의 따스한 손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