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보국문로 215(정릉동 829)에 소재한 계곡으로 북한산 내 위치하고 있다. 정릉계곡은 오래전부터 청수동의 계류를 따라 형성된 계곡으로 여름철이면 피서를 즐기기 위한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정릉 유원지 깊은 곳에 위치한 청수장은 장안의 부호들이 즐겨찾는 장소였고 일제강점기에는 많은 일본인들이 주변으로 별장을 짓기도 하였다. 청수장은 삼각산 깊은 계곡의 맑은 물과 인근의 산수가 조화를 이룬 곳에 위치하여 불린 이름이다. 북한산 청수장 지역은 계곡 생태계 보호와 수질보전을 위해 2006년 1월 1일부터 2015년 12월 31일까지 10년간 자연휴식년제 계곡으로 지정, 출입을 금지하였고, 10년의 휴식을 취하고 시민 품으로 돌아왔다. 현재 청수장 자리는 북한산국립공원 탐방안내소로 이용되고 있다.
2. 정릉계곡(貞陵溪谷)
북한산 연봉(北漢山 連峰)의 남쪽에 위치한 산수(山水) 풍경 좋은 「정릉동(貞陵洞)」은 그 남쪽 산록(山麓)에 조선 태조(朝鮮 太祖)의 계비(繼妃)인 신덕왕후(神德王后)의 능(陵)인 정릉(貞陵)이 있음으로 불리워진 이름이다. 변이량(卞季良)이 정릉 고천제문(貞陵 告遷祭文)에서
물은 가늘게 흘러내려 커지고 山은 줄을 이어와서 감쌌읍니다.
수천천이 연양혜 산미미이 반우(水涓涓而演漾兮 山靡靡而盤紆)
라고 정릉의 위치에 대해서 말한 것처럼 아늑한 경내(境內)에 산수(山水)가 회포(回抱)하여 풍광이 명미(明媚)하며 일대에는 수림이 잘 조성되어 도성 사민(士民)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되었다. 정릉(貞陵)에서 동북쪽으로 돌아 올라가면 봉국사(奉國寺)·경국사(慶國寺) 등의 큰 고찰이 있어 깊고 그윽한 산곡문(山谷門)의 자연 풍경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데 돈암동 막바지에 있는 흥천사(興天寺)와 함께 모두 정릉의 원찰(願刹)로 되어 있다.
경국사(慶國寺) 입구 시내의 서쪽에는 오른쪽으로부터 최준례선생지묘(崔遵禮先生之墓)·곽하원선생지묘(郭夏園先生之墓)·김인선생지묘(金仁先生之墓)의 초라한 단갑(短碣)이 서 있는 3위 묘소가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주석(金九主席)의 부인·어머니·장남의 묘소로서 광복 후 임시정부의 환국과 함께 중국에서 이장(移葬)되었으며, 뜻있는 인사들의 참배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봉국사·경국사가 있는 곳을 지나서는 백톰(白톰)과 백운대(白雲臺)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기도 하지만 깊고 긴 한각(漢各)을 따라 물은 맑고 돌은 패어 수석(水石) 좋기로 알려졌다. 더구나 북한산성(北漢山城)의 보국문(輔國門)을 지나 백운대(白雲臺)까지 등산로가 이어지는 오른쪽 골짜기에는 수림(樹林)이 우거지고 계곡(溪谷)이 깊어 굽이굽이 들어가는 곳마다 돌이 패어 못을 이루고 넓은 바위 대(臺)를 이루니, 어딜 가나 자연(自然)의 승경(勝景)이 아닌 곳 없는 천혜(天惠)의 놀이터가 펼쳐져 여름철의 피서·목욕, 봄·가을의 등산(登山)·탐승(探勝)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금은 서울 인구가 많고 이곳에 료정(料亭)·수영장 등 현대 시설이 갖추어짐과 함께 유홍의 물결이 골짜기를 메워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손상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고 있다.
우정(偶丁) 임규(林圭)의「하일정릉도중(夏日貞陵途中)」시는 도로가 불편한 당시의 이 명승지를 찾아가던 모습의 일변을 말하여 준다.
한 발걸음 옮길 때마다 긴 숨 한번씩 쉬는데,
가자고 독촉하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땀은 줄줄 흘러 온 몸을 적시고,
몰려오는 티끌에 두 눈은 어두워진다.
한 그릇 물 마시며 동자(童子)의 예절 생각하고,
나무 그늘에 앉아 옛 사람 은혜 감사한다.
간신히 걸어서 정릉(貞陵)골짜기에 이르니,
숲 속에서 서늘한 바람 불어 정신을 맑게 한다.
2. 정릉계곡(貞陵溪谷)
북한산 연봉(北漢山 連峰)의 남쪽에 위치한 산수(山水) 풍경 좋은 「정릉동(貞陵洞)」은 그 남쪽 산록(山麓)에 조선 태조(朝鮮 太祖)의 계비(繼妃)인 신덕왕후(神德王后)의 능(陵)인 정릉(貞陵)이 있음으로 불리워진 이름이다. 변이량(卞季良)이 정릉 고천제문(貞陵 告遷祭文)에서
물은 가늘게 흘러내려 커지고 山은 줄을 이어와서 감쌌읍니다.
수천천이 연양혜 산미미이 반우(水涓涓而演漾兮 山靡靡而盤紆)
라고 정릉의 위치에 대해서 말한 것처럼 아늑한 경내(境內)에 산수(山水)가 회포(回抱)하여 풍광이 명미(明媚)하며 일대에는 수림이 잘 조성되어 도성 사민(士民)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되었다. 정릉(貞陵)에서 동북쪽으로 돌아 올라가면 봉국사(奉國寺)·경국사(慶國寺) 등의 큰 고찰이 있어 깊고 그윽한 산곡문(山谷門)의 자연 풍경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데 돈암동 막바지에 있는 흥천사(興天寺)와 함께 모두 정릉의 원찰(願刹)로 되어 있다.
경국사(慶國寺) 입구 시내의 서쪽에는 오른쪽으로부터 최준례선생지묘(崔遵禮先生之墓)·곽하원선생지묘(郭夏園先生之墓)·김인선생지묘(金仁先生之墓)의 초라한 단갑(短碣)이 서 있는 3위 묘소가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주석(金九主席)의 부인·어머니·장남의 묘소로서 광복 후 임시정부의 환국과 함께 중국에서 이장(移葬)되었으며, 뜻있는 인사들의 참배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봉국사·경국사가 있는 곳을 지나서는 백톰(白톰)과 백운대(白雲臺)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기도 하지만 깊고 긴 한각(漢各)을 따라 물은 맑고 돌은 패어 수석(水石) 좋기로 알려졌다. 더구나 북한산성(北漢山城)의 보국문(輔國門)을 지나 백운대(白雲臺)까지 등산로가 이어지는 오른쪽 골짜기에는 수림(樹林)이 우거지고 계곡(溪谷)이 깊어 굽이굽이 들어가는 곳마다 돌이 패어 못을 이루고 넓은 바위 대(臺)를 이루니, 어딜 가나 자연(自然)의 승경(勝景)이 아닌 곳 없는 천혜(天惠)의 놀이터가 펼쳐져 여름철의 피서·목욕, 봄·가을의 등산(登山)·탐승(探勝)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지금은 서울 인구가 많고 이곳에 료정(料亭)·수영장 등 현대 시설이 갖추어짐과 함께 유홍의 물결이 골짜기를 메워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손상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고 있다.
우정(偶丁) 임규(林圭)의「하일정릉도중(夏日貞陵途中)」시는 도로가 불편한 당시의 이 명승지를 찾아가던 모습의 일변을 말하여 준다.
한 발걸음 옮길 때마다 긴 숨 한번씩 쉬는데,
가자고 독촉하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땀은 줄줄 흘러 온 몸을 적시고,
몰려오는 티끌에 두 눈은 어두워진다.
한 그릇 물 마시며 동자(童子)의 예절 생각하고,
나무 그늘에 앉아 옛 사람 은혜 감사한다.
간신히 걸어서 정릉(貞陵)골짜기에 이르니,
숲 속에서 서늘한 바람 불어 정신을 맑게 한다.
정릉계곡은 오랜 옛날부터 청수동의 계류를 따라 형성된 계곡으로 여름철이면 피서를 즐기기 위해 찾아오는 인파로 길을 메웠다. 정릉유원지 깊숙한 곳에 위치한 청수장은 장안의 부호들이 즐겨 찾는 장소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많은 일본인들이 주변으로 별장을 지어 자연을 즐기기도 했다. 청수장이라는 명칭은 삼각산 깊은 계곡의 맑은 물과 인근의 산수가 조화를 이룬 곳에 위치하여 불린 이름이다.
이곳에는 과거 청수장 호텔이 있었고 호텔 건너편에는 영화촬영소가 있었다. 또한 이곳에는 북파공작원들의 훈련장이 있었다는 주민들의 제보도 있다. 북한산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정릉유원지가 있어 일반 관광객들뿐만 아니라 신혼여행지로도 각광받았던 곳이다.
북한산 청수장 지역은 계곡 생태계 보호와 수질보전을 위해 2006년 1월 1일부터 2015년 12월 31일까지 10년간 자연휴식년제 계곡으로 지정, 출입을 금지했다. 10년의 휴식을 취하고 시민 품으로 돌아온 덕에 청정자연을 뽐내고 있다. 현재 청수장 자리는 북한산국립공원 탐방안내소로 이용되고 있다.
안내소 안에는 과거 청수장의 이야기를 담은 작은 전시공간이 있어 당시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과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