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백

1767년 - ?
사건 · 생활
조선후기부터 1960년대까지 성북동 지역 주민들이 생업으로 삼았던 일이다. 영조 때 지금의 성북동에 어영청의 둔진을 설치하여 사람들을 거주하게 하였는데, 이 지역이 산세가 험해 농사를 짓기 어려워 다른 생업 대책을 세워야 했다. 그래서 이 지역에 수공업 협동단체인 포백훈조계를 설치하여 둔전민의 생계와 부대의 재정을 충당하도록 하였다. 그중 포백은 마전이라고도 하는데 옷감을 삶거나 빨고 표백하는 일을 말하며, 도성 안의 무명, 베, 모시 점포의 물건을 맡아서 처리하도록 하였다. 성북동 지역의 포백 전통은 일제강점기에도 이어져 1902년에는 성북동에 표백회사가 들어서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 직조 과정이 점차 기계화되면서 사람의 힘으로 마전하는 일이 줄어들었고, 1970년대 성북천 복개공사로 빨래터도 사라졌다.
성북동
성북동포백훈조계완문절목(9), 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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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포백훈조계완문절목(9), 서울역사박물관

성북동포백훈조계완문절목(9), 서울역사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