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구 솔샘로18길 84(정릉동 348-1)에 위치한 카페이다. 2015년 10월 지금의 자리에서 운영을 시작했다. 조용하고 한적하며 지역사업이 잘 이루어지고 있는 곳을 찾아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재료는 대부분 직접 농사지은 허브류와 토종작물을 이용하거나 슬로푸드 회원 농가에서 구매하여 사용한다. 또한, 사전예약제로 '슬로푸드 밥상'을 운영하고 한 달에 한 번 함께 밥을 먹으며 식구가 되는 '식9데이' 등을 통해 슬로푸드에 대한 경험을 손님들과 나누고 있다. 인근 자영업자들과 함께 정릉천을 지키기 위한 친환경 캠페인을 진행하였으며 이 외에도 환경을 위한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 2019년부터는 매월 『슬로매거진 달팽이』를 발행하고 있다.
성북구 성북로31길 97(성북동 226-37)에 위치한 전통문화체험공간이다. 예향재는 예술의 향기가 깃든 집이라는 뜻으로, 성북 예향재는 다양한 전통문화 체험과 전시 및 공연을 개최하기 위한 취지로 2019년 10월 30일 개관하였다. 사랑채, 안채, 마당으로 구성된 한옥 형태의 건물인 성북 예향재에서는 대관을 통한 한옥체험이 가능하며, 대관 예약이 없거나 자체 프로그램이 진행 될 때에는 자유로운 방문이 가능하다.
정릉동(현 정릉동 17-1)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44년 일본 규슈제국대학(九州帝大) 법과를 졸업하고 학병으로 동원되었다가, 중국 쑤저우[소주(蘇州)]에서 일본군 60사단을 탈출하였다. 그는 김영남(金映男) 등과 함께 제3전구 충의구국군 사령부에 도착하여 미국 고문관에게 일본군 문서와 정보를 제공하였다. 이 사실은 3전구 사령부에 보고되어 전선일보(戰線日報)에 대서특필되었다. 이러한 공적으로 구국군 정치부 대일선전과에서 박영(朴英)과 함께 선전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후 광복군에 편입되어 활동하다가 광복을 맞았다. 정부에서는 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길음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본적은 황해도 황주(黃州)이다. 1944년 초 광복군 제1지대 제2구대에 입대하여 통역 및 포로심사, 연락업무 등을 담당하였다. 정부에서는 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독립유공자 공훈록의 유공자 정보에 따르면 김여재의 주소지는 서울 성북 길음동 595-61(현 길음동 598)였다.
성북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경성의학전문학교 1학년 재학 중 만세운동을 논의하였고, 선배와 함께 학교 대표로 학생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1일 사전 계획대로 탑골공원으로 갔으나 민족대표들이 장소를 변경하여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을 하자, 독자적으로 독립선언식을 갖고 만세시위를 전개했다. 이후 체포되어 약 8개월의 옥고를 치르던 중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경신고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했고, 1938년경부터 인천에서 농촌계몽운동과 문맹퇴치운동을 전개했다. 광복 후 인천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했고, 1954년 제물포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을 겸임했다. 교직에서 물러난 뒤, 1969년 충남 덕산에 가루실농민학원을 설립, 농민교육에 헌신했다. 2005년 대통령표창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