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1904년 미국에서 안창호, 정재관 등과 함께 공립협회(共立協會)를 창립하고 1905년 기관지『공립신문』을 창간해 주필이 되었다. 1907년 귀국하여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하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서 정재관과 함께 신민회 블라디보스토크지회를 설립하였다. 이밖에도『대동공보』 편집책임을 맡아 독립사상을 고취시켰다. 1919년에는 강우규의 폭탄 투척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다. 석방 후 상해로 탈출하여 임시정부에 참여, 의정원 의장을 역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안창호가 중심이 된 흥사단 운동에도 참가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1964년 10월 13일 자택인 정릉동 재건주택 88호(현 정릉동 16-7)에서 별세하였다.
성북구 일대에서 진행되는 축제이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성북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 성북만의 다양한 역사·문화·예술자산을 만나보는 플랫폼형 축제이다. 2012년 10월 13일에 처음 개최되었으며, 이후 매년 10월에 열리고 있다. 축제 기간 동안 공연, 전시, 마을장터, 강연, 문화예술 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성북 곳곳에서 즐길 수 있다. “2019 성북진경”에서는 2019년 10월 11일에 열린 ‘성북진경 오프닝’을 시작으로 성북동, 월곡동, 장위동, 정릉동, 석관동에서 벌어지는 가을행사들과 연계한 주민참여 여행 ‘성북진경 동네여행’, 가을밤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는 ‘성북진경 동네영화여행’ 등이 진행되었다.
미아리고개 고가도로 하부에 마련된 문화예술 공간이었다. 공간의 선정과 기획부터 운영과 관리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이 직접 참여하였다. 2015년 공간이 조성된 이후 마을장터, 아이들의 놀이터, 예술가들의 무대, 마을 사람들의 쉼터 등 다양한 의미가 부여되며 마을의 활력을 불어 넣는 문화예술공간으로 역할을 했다. 2026년부터 미아리고개하부공간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운영 중이다.
시인이자 수필가이다. 1919년 8월 「월하의 몽」이 당선되고, 11월 「파몽」·「낙목」 등이 연이어 당선되면서 문인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처녀의 화환』(1924), 『내 혼이 불탈 때』(1928), 『백공작』(1938) 등 3권의 시집 외에도 소설 『반항』(1923), 『무한애의 금상』(1929), 수필 『인생안내』(1938) 등을 남겼다. 청조사를 직접 운영하였던 그는 성북동 문화주택에 살며 성북동에서 『신인문학』을 발행했다. 낭만적인 시와 산문을 써서 당대에 인기가 많았지만 폐병으로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다.
1950년대에 <미망인>이라는 한 작품을 남긴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에 대한 이야기이다. 촬영을 나갈 때, 박남옥의 등에 업혀 있던 딸이 어른이 되어 생전 어머니가 써놓은 원고를 정리하여 그녀의 일생을 전해주고 있다. 박남옥이 영화계에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성북구 돈암동에서 생활을 하였는데, 당시 여러 영화인들이 돈암동에 거주했음을 알 수 있고, 1940~50년대 성북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성북구 고려대로7길 120(동선동2가 1-2)에 위치한 종교시설이다. 돈암동 성당은 1955년 혜화동 본당으로부터 분가해 탄생했다. 설립 당시 돈암동 성당은 혜화동 본당으로부터 삼선동, 안암동, 보문동과 돈암동 일대를 관할구역으로 인계받았다. 예배당은 1950년대의 석조 성당을 대표하는 건물로, 6.25전쟁 이후 건축물의 견고성에 더욱 역점을 두어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화강암을 외벽에 붙였다. 건물의 디자인은 준고딕양식으로 석조건물에 성곽과 같은 높은 종탑을 세우고 아치형의 문이 안과 밖을 연결하게 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새로운 성당 건물은 2000년에 준공된 것이다. 2013년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에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