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현재의 성북구 길음동 지역에 지어졌었던 주택단지이다. 현재의 길음동 지역은 미아동에 속하여 성북구와 도봉구의 관할을 오가다 현재는 성북구 관할이 된 동네이다. 1950년대까지 이른바 미아리 공동묘지가 있었고, 공동묘지를 이전하면서 그 자리에 주택단지를 조성했는데, 그것이 1962년 길음택지조성지구에 일반공영주택 100호를 지어 10월에 주민 입주를 한 것이었다. 현재는 이 지역이 전면 재개발되면서 길음뉴타운이 들어서 있다.
성북구 고려대로 73에 위치한 병원이다. 1941년 종로구 혜화동에서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부속병원’으로 개원하였고, 30여 년간 학교법인 우석학원에서 경영하면서 병원의 이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1971년 고려중앙학원이 우석학원을 병합함에 따라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우석병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76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다시 바뀌었다. 1983년에는 부속병원을 총괄·운영하는 고려대학교 의료원이 발족하면서 의료원 산하가 되어 ‘고려대학교 의과대학부속 혜화병원’으로 변경하였다. 1991년에 안암동에 부속병원을 신축하여 이전하면서 이름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부속 안암병원’으로 바뀌고, 성북구 지역 최대 거점병원으로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조각가이다.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경기중학교 시절부터 조각 공부를 시작하여 서울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였고,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는 모교의 교수로 재직하였다. 살 곳을 선택할 때에도 반포지구의 아파트 분양 혜택을 거부하고, “생명을 찾고 예술로 표현하는 사람은 땅을 밟고 흙을 만지며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연이 가까운 곳을 선택, 정릉동에 손수 집을 짓고 살았다. 대표작으로는 「이브」, 「O」 시리즈가 있는데, 생명의 본질을 더욱 단순화된 형태로 승화시키면서 자신만의 방법과 소재로 작품을 만들었다. 자택은 성북구 솔샘로 7길 23(정릉동 716-16)에 위치한다.
정릉동에서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강원도 양양 출신으로 개성의 호수돈 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 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호수돈 비밀결사대’를 조직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휴교령이 내려지자 조화벽은 버선 솜에 독립선언서를 감추고 고향 양양으로 귀향하여 지역만세운동의 불씨 역할을 했다. 1925년 교직생활을 하던 중 유관순 열사의 오빠인 유우석과 결혼하였다. 이후 유우석의 가족을 모두 양양에 은신시켰으며, 유관순의 동생인 관복과 관석을 양육하였다. 1932년에는 양양에 정명학원을 설립하여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쳤다.
광복 이후 정릉동 604-16번지(현 아리랑로5길 128)에서 거주하였고, 1975년 타계하였다. 정부에서는 1982년 대통령표창을,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시인이자 평론가이며, 또한 친일문제를 연구한 역사학자이다. 성북동에 살면서 고려대학교를 다녔고, 이후 「비(碑)」, 「자화상」 등의 시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1965년 한일회담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분노하여 친일연구에 뛰어들었다. 1966년 월곡동에 거주하면서 『친일문학론』을 저술하였고, 70년대부터 본격적인 친일연구를 진행하여 80년대에는 『일제침략과 친일파』, 『일제하의 사상탄압』, 『친일문학작품선집』, 『친일 논설집』 등 다수의 저작물이 출판되었다. 1989년 임종하기까지 친일파 총서를 집필 중이었는데, 그 유지를 후학들이 받들어 민족문제연구소를 설립하고 연구를 지속하였고, 마침내 2009년 친일인명사전을 출간하였다.
안암동에 거주한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1940년 서울 중앙중학교 3학년 재학 중에 노국환, 황종갑, 유영하, 조성훈과 함께 정치와 역사에 대하여 토론하는 ‘5인독서회’를 조직하고 최복현을 지도교사로 추대하였다. 1941년 활동 범위를 확대하던 중 황종갑의 서신이 사전 검열에 발각되어 그를 비롯한 관련 학생들이 체포되어 100일 만에 석방되었다. 교사 최복현은 1942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 받아 1943년에 출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