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북구의 산
- 성북구의 산은 많은 것들을 담고 있습니다. 역사의 터전, 아름다운 전경, 구민들의 삶과 기억이 깃든 다채로운 공간입니다. 이번 ‘주제로 보는 성북’에서는 ‘성북구의 산’을 통해, 산에 담겨 있는 구민들의 이야기와 삶, 그리고 주변에 있는 역사 명소와 산의 전경까지 전하고자 합니다. 저희가 준비한 이야기를 통해, 성북구의 산이 지닌 다채로운 가치와 의미를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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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 자연지리
- 개운산
- 성북구 돈암동, 안암동, 종암동을 접하고 있는 산이다. 개운산이란 이름은 ‘나라의 운(運)을 연다(開)’라는 뜻의 사찰인 개운사에서 유래했다. 개운산은 해발 134m의 낮고 넓은 산이다. 또한 크고 작은 돌들로 이루어진 산이라서 그 주변의 동네는 모두 바위 암(巖)자 붙은 돈암동, 안암동, 종암동의 이름을 갖고 있다. 산 기슭에는 성북구의회를 비롯해 각급 학교와 산책로, 쉼터, 체험장이 있어, 주민들의 든든한 안식처이자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 장소, 공공시설
- 개운산 숲속의 쉼터
- 성북구 북악산로에 있는 산책로이다. 해발 134m의 낮고 넓은 개운산에는 산책로와 쉼터, 체험장 등이 갖추어져 있다. 넓은 평상과 책을 갖추어 놓은 개운산 숲속의 쉼터도 그 중 하나이다. 개운산의 산책로에는 시각장애인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적합한 시설을 갖추었으며, 쉼터와 정자, 안전보도 등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자연의 여유와 건강까지 챙길 수 있는 주민들의 휴식처이다.
- 장소, 공공시설
- 개운산 스포츠센터
- 성북구 개운산(북악산로 949-60)에 위치한 체육시설이다. 2000년에 개관한 개운산스포츠센터에는 순수한 수돗물을 사용한 ‘맑은 물 수영장’과 다양한 운동기구를 갖추고 각종 성인병 예방과 체력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다이나믹 헬스장’이 있으며, 스포츠와 취미 관련 각종 강좌를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을 갖추고 있다. 스포츠문화교실, 취미교실, 복합교실, 종합음악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주민 활동을 위한 대관도 하고 있다.
- 장소, 종교시설, 유물, 건축물
- 개운사
- 성북구 개운사길 73(안암동 5가 157)에 자리한 사찰이다. 1396년(태조 5)에 무학대사가 현재 고려대학교 이공대학 부근에 절을 짓고 영도사(永導寺)라고 이름 지었다. 그 후 정조의 후궁 원빈 홍씨의 묘인 인명원(仁明園)이 절 옆에 세워지자, 영도사를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절의 이름을 개운사(開運寺)로 바꾼 시기는 절을 옮긴 시점일 가능성이 크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절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불교 교육의 중심지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1926년부터 근대 불교의 대표적인 석학이었던 승려 박한영이 이 곳에서 많은 제자를 키워냈고, 선사 탄허가 개운사의 암자인 대원암에서 불경 번역에 힘썼다. 현재 개운사에는 국가에서 지정한 보물 1점과 서울특별시에서 지정한 유형문화재 5점이 보관되어 있다.
- 장소, 종교시설
- 보타사
- 성북구 개운사길 60-46(안암동 5가 7)에 위치한 사찰이다. 보타사는 개운사의 암자인데, 이 절의 전각들이 비교적 규모가 작은 데 비해 높이가 5m나 되는 마애불이 눈에 띈다. 마애불은 대웅전 뒤에 있는데, 좌상의 형태이고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큰 바위에 부조로 새겨진 이 마애불상은 몸 전체에 호분(胡粉)이 칠해져 있어서 ‘백불(白佛)’이라고도 부른다. 보타사 마애좌상은 현재 보물 제1820호로 지정되어 있다.
- 유물, 조각
- 서울 보타사 마애보살좌상
- 개운사(성북구 개운사길 60-46)의 암자(칠성암)인 보타사 대웅전 뒤쪽 화강암 암벽에 조각된 고려시대의 마애불상이다. 거대한 보살상 머리에는 좌우 옆으로 뿔이 있는 관이 있고, 뿔 끝에는 다양하게 장식된 타원형 느리개가 있다. 보타사의 전각들이 비교적 규모가 작은 것에 비해 이 미륵불은 그 높이가 5m나 되는데 이는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이다. 큰 바위에 부조로 새겨진 이 마애불상은 몸 전체에 호분(胡粉)이 칠해져 있어서 흔히 백불(白佛)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초기 서울지역 불상 양식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보살상으로,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7월 2일 보물 제1828호로 지정되었다.
- 장소, 종교시설, 유물, 건축물
- 대원암
- 성북구 개운사길 60-46(안암동 5가 8)에 위치한 사찰이다. 대원암은 개운사에 딸린 암자인데, 1845년(헌종 11)에 우기(祐祈, 호는 지봉)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제강점기에는 근대 불교계의 석학인 박한영스님이 이곳에 머물면서 불교전문강원을 개설하여 많은 석학을 배출하였다. 당시에는 출가 제자 뿐만 아니라 신석정, 서정주, 홍명희, 이광수, 최남선, 정인보 등 당대 대표적 지식인들이 모여들었다. 1970년대에는 탄허스님이 이곳에서 『신화엄경합론(新華嚴經合論)』의 역경사업에 힘썼다.
- 장소, 교육, 인물, 단체
- 서울개운초등학교
- 성북구 정릉로48길 52(돈암동 2-8)에 위치한 공립 초등학교이다. 2002년 7월 10일 설립인가를 받고, 같은 해 11월 5일 개교식을 했다. 교육비전은 ‘성장과 공유의 개운’이며, 교훈은 ‘슬기롭고 창의적이며 건강하게’이다. 2017년 서울독서교육대상 교육감 표창, 교육부 주최 100대 교육과정 선정 부총리겸 교육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2019년 2월 15일 제16회 졸업식을 진행하였다. 2025년 기준 569명이 재학 중이다.
- 장소, 교육
- 개운중학교
- 성북구 북악산로 935(돈암동 83-145)에 위치한 공립중학교이다. 개운산을 등지고 있는 개운중학교는 2006년 5월 26일 개교 하였다. 2018년 교육과정 우수학교 교육감 표창을 받았다. 2020년 2월 18일 제12회 졸업식을 진행하고, 누적 졸업생 3,340명을 배출하였다. “바르고 슬기로운 사람이 되자”는 교훈 아래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미래 인재 배출을 목표로 운영하고 있다. 2025년 기준 698명이 재학 중이다.
- 장소, 교육, 인물, 단체
- 종암중학교
- 성북구 종암로5길 80-17(종암동 32-3)에 위치한 공립 중학교이다. 1980년 4월 9일 설립인가를 받았다. 1987년 11월 21일 종암여자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가 2002년 03월 다시 종암중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2003년에는 정보화관, 2013년에는 체육관을 개관하였다. 2017년 교육복지우선지원사업 우수학교로 교육감 표창을 받았다. 2019년 2월 제36회 졸업생을 진행하고 누적 졸업생 19,680명을 배출하였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확산으로 인해 개학이 연기되고 교육 당국이 온라인개학이 검토하면서 2020년 3월 30일 원격수업을 시범 운영하기도 하였다. 2025년 기준 447명이 재학 중이다.
- 장소, 교육, 인물, 단체
- 성신초등학교
- 성북구 북악산로 918(돈암동 산11-269)에 위치한 사립 초등학교이다. 1936년 4월 이숙종 박사가 성신여학교를 창립하였다. 1965년 1월 13일 성신여자사범대학이 설립을 인가받고, 1965년 1월 30일 성신여자사범대학교 부속 국민학교라는 교명으로 설립을 인가받았다. 건학이념은 ‘성신(誠信) 지신(知新), 자동(自動)’이며, 교훈은 ‘정성으로 슬기닦고 착한일에 앞장서자’이다. 2018년 제52회 졸업식을 진행하고 누적 졸업생 6,776명을 배출하였다. 2025년 기준 501명이 재학 중이다.
- 장소, 교육
- 성신여자중학교
- 성북구 북악산로 918(돈암동 산11-269)에 위치한 사립 중학교(여)이다. 1936년 이숙종(李淑鍾)이 종로구 경운동에 설립한 성신여학교에서 시작하였다. 1937년 학교를 종로구 견지동으로 이전하였다가, 1944년 성북구 돈암동 173-1번지에 교사를 신축하고 이전하였다. 1946년 학제변경에 따라 성신여자고등학교에서 성신여자중학교로 개편되었다가 1951년 교육법 개정에 따라 성신여자중학교와 성신여자고등학교로 분리되었다. 1983년 현재 위치에 교사를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2025년 기준 647명이 재학 중이다.
- 사건, 축제
- 성북구 새해 해맞이 행사
- 매년 양력 1월 1일에 개운산 운동장에서 진행되는 성북구의 해맞이 행사이다. 행사는 길놀이, 축하공연, 희망의 북치기, 덕담나누기, 공연, 소원쓰기, 해맞이 등의 구성으로 진행된다.
- 장소, 자연지리
- 종암동 채석장
- 1960년대까지 개운산에 있었던 채석장이다. 종암1동에 거주하는 진씨(陳氏) 성을 가진 사람의 채석장이 있었기에 개운산을 ‘진석산(陳石山)’으로도 불렀다. 진석산은 양질의 석재 산출지로 예로부터 유명하여 일찍부터 채석업과 석재 가공업이 이뤄졌다고 한다. 진석산의 돌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를 지을 때에도 사용되었으며, 현 종암중학교 자리에 있던 '중앙산업'은 대한민국 최초의 아파트인 종암아파트(1958) 등을 지을 때 종암동 채석장의 돌을 사용하였다. 또한 인근 고려대학교의 석조건물 건축 당시 종암동 채석장에서 돌(화강암)을 가져왔다고 한다. 지금도 개운초등학교와 종암중학교 주변에서 채석장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 사건, 의례
- 종암동 북바위 산제사
- 성북구 종암동 북바위에서 매년 음력 10월 초에 지내는 마을 제사이다. 종암동 극동아파트 뒤편의 개운산에는 북바위로 불리는 산제단이 있는데, 그곳에서 종암동 향사회(享祀會) 주관으로 산제사가 열리고 있다. 전통 산신제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것으로, 마을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는 마을 축제로 자리 잡고 있다. 의식은 유교적 방식을 취하여 축문(祝文)을 고하고 헌작(獻爵)을 반복하고, 소지(燒紙)하는 등의 절차를 거친다.
- 장소, 자연지리
- 낙산
- 성북구 삼선동, 종로구 이화동, 창신동, 숭인동과 맞닿는 경계에 있는 산이다. 한양도성의 내사산(內四山) 가운데 동쪽에 해당하며, 남쪽 끝자락에 흥인지문(동대문)이, 북쪽 끝에는 혜화문(동소문)이 위치한다. 조선시대 낙산은 풍광이 좋아 이름난 별장 단지를 형성한 곳 중 하나였다. 낙산이 주거지로 개발된 것은 일제강점기이다. 일제는 소위 ‘근대화’ 정책으로 농민들의 토지를 약탈하였다. 이에 토지를 상실한 지방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들어 임금노동자가 되었다. 이들은 옛 한양의 외곽 지역에 자리 잡기 시작했는데, 낙산 자락도 그중 하나였다. 낙산 자락에 살던 대다수가 ‘토막’이라는 기초적인 주거 시설을 짓고 살았는데, 이들을 흔히 ‘토막민’이라고 불렀다. 현재 낙산은 낙산공원과 성곽 주변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 주거지로 개발되었다.
- 장소, 인문지리
- 장수마을
- 성북구 삼선교로4라길 23-28(삼선동1가 300) 일대에 형성된 마을이다. 장수마을은 한국전쟁 후 서울로 모여든 서민들이 움막, 천막집, 무허가 판잣집 등을 짓고 삶의 터전으로 삼으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마을 뒤쪽의 한양도성 성곽 아래 가파른 구릉길을 따라 작고 나지막한 가옥들이 옹기종기 서로 맞붙어 있다. 이 지역이 재개발지역으로 선정되자, 전면 철거와 획일적인 아파트 재개발이 아닌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2008년에 주민협의회를 만들고 마을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 마을 내에 작은 카페도 열었고, 마을박물관을 만들어 전시회도 진행하고, 벽화거리도 조성하여 관광객의 발길도 늘고 있다. 2010년대부터 확산된 도시재생사업의 선구적 형태이며,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에 선정되었다.
- 장소, 유적
- 한양도성
- 서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조선시대의 도성이다. 조선 초 태조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기 위하여 궁궐과 종묘를 먼저 지은 후 도성축조도감을 설치해 성곽을 쌓도록 하고 사대문(四大門)과 사소문(四小門)을 두었다. 조선시대 때 여러 번에 걸친 수리를 하였는데 쌓는 방법과 돌의 모양이 각기 달라 축조 시기를 구분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근대도시의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성벽과 성문을 무너뜨렸으나 1968년 숙정문 중건을 시작으로 복원이 시작되었고, 1975년 서울성곽 정화 사업을 통해 전 구간의 중건이 이루어졌다. 한양도성은 전체 구간의 70%, 총 13.7㎞(2020년 기준) 구간이 남아있거나 중건되었고, 숙정문·광희문·혜화문 등의 성문도 중건되었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0호로 지정되었다.
- 장소, 인문지리
- 369마을
- 성북구 삼선교로2,4,6길 일대(삼선동1가 11-53번지 일대)의 한양도성 성곽마을이다.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2013년 이후 주택 재개발 정비 구역에서 해제되어 2014년에는 주거 환경 관리 사업 대상지로 선정되었다. 이후 해당 행정구역인 삼선6구에서 착안된 369마을이라는 이름이 주민 회의에서 탄생하였다. 또한 369마을은 '마을의 정체성과 문화를 바탕으로 주민이 주도하고 화합하는 세가지 가치를 지닌 언덕 마을(三育丘)'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마을 내 앵커시설로 마을 주민 회의나 문화 프로그램 등이 열리는 369사랑방, 카페 369마실, 전시 및 공연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 가능한 가변 공간인 369예술터, 지역 예술가와 청년 활동가들을 지원하는 369예술공방 등이 마련되어 있다.
- 장소, 유적, 유물, 건축물
- 삼군부 총무당
- 성북구 삼선교로4나길 19(삼선동 1가 산1-13)에 위치한 조선말 삼군부의 청사 건물이다. 삼군부는 비변사를 폐지하면서 설치한 군사업무를 총괄하던 정부기구이다. 총무당은 삼군부의 중심건물인데, 1868년 처음 건축되었을 때의 위치는 현재의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자리에 있었으나, 1930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왔다. ‘총무당’이라는 현판은 당시 무신이자 외교가였던 신헌(申櫶)의 글씨이다. 삼군부의 기능약화와 함께 통리기무아문의 청사로 이용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조선보병대가 주둔하기도 했다. 총무당은 공릉에 소재한 청헌당과 함께 조선시대 관아 건축의 배치와 건물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귀중한 현존자료이다. 1978년 12월 18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7호로 지정되었다.
- 장소, 자연지리
- 동망봉
- 성북구 보문동과 종로구 숭인동 사이에 있는 산봉우리이다. 조선 6대 왕인 단종이 어린 나이로 숙부인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멀리 강원도 영월로 귀양 가 있을 때, 단종의 왕비인 정순왕후 송씨가 정업원(淨業院, 현재의 청룡사로 추정)에 머물며 매일 봉우리에 올라 단종이 머물던 영월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에서 유래되어 영월이 있던 동쪽(東)을 바라보던(望) 봉우리(峯), 즉 동망봉(東望峯)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 장소, 교통
- 동망봉터널
- 성북구 보문동과 종로구 숭인동을 잇는 폭 20m, 길이 403m의 터널로, 2002년 12월 30일에 개통되었다. 성북구 보문동6가와 종로구 숭인동 사이에 걸쳐있는 산봉우리인 동망봉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동망봉터널이 개통되면서 숭인사거리에서 보문동로터리에 이르는 지봉길이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되었으며, 길이도 조정되었다.
- 장소, 종교시설, 유물, 건축물
- 동망봉 산신각
- 성북구 보문동에 있는 산신각이다. 동망봉은 보문동과 숭인동에 걸쳐 있는데, 조선 단종의 비 정순왕후 송씨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단종이 유배가서 죽은 동쪽 영월을 바라보며 단종의 명복을 빌었기 때문에 동망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산신각은 산신을 제사하기 위해 지은 사당으로, 언제, 누가 세웠는지 알 수 없으나 15세기경 호랑이가 출몰하여 인명과 가축의 피해가 심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당을 짓고 산제(山祭)를 지내기 위해 건립했다고 전한다. 그 일대에 아파트를 신축하면서 숭인공원으로 이전·복원하였는데 소나무로 엮은 가로 2칸, 세로 1칸으로 구성되었으며, 안에는 동망봉 산신령과 정순왕후 송씨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지금도 매년 10월 산신제를 열고 이곳에서 마을의 재앙을 예방하기 위한 제사를 드리고 있다.
- 사건, 의례
- 보문동 동망봉 산신제
- 성북구 보문동의 동망봉 산신각에서 매년 음력 10월 거행하는 마을 제사이다. 동망봉은 조선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 송씨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단종이 유배가서 죽은 동쪽 영월을 바라보며 단종의 명복을 빌었던 곳이다. 산신에 제사하는 사당에 정순왕후의 이야기가 더해져 동망봉 산신각에는 산신과 정순왕후를 모시는 2개의 신위가 있다. 동망봉 제례보존위원회가 주관하는 동망봉 산신제는 비운의 왕비 정순왕후의 절개와 충절을 기리는 제례의식으로 유래되었는데, 현재는 마을 전통문화를 계승시키는 고유 행사로 자리 잡아, 마을의 안정을 기원하고 음식을 나눠먹음으로써 정과 친목을 나누는 행사로 뿌리내리고 있다. 또한 제를 올린 다음날에는 지역 노인들을 모시고 잔치를 열고 있다.
- 장소, 공공시설
- 동망봉어린이공원
- 성북구 보문사길 30에 위치한 공원이다. 동망봉어린이공원은 2002년 개통된 동망봉터널 위의 ‘e편한세상보문2단지아파트’ 옆에 2005년에 조성되었다. 쾌적하고 환경친화적인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소나무, 감나무, 벚나무 등의 교목과 철쭉, 사철나무 등 관목을 심어놓았고, 금낭화, 벌개미취 등 11종 8,800본에 이르는 야생화 화단을 마련하였다. 또한 정자, 등의자 등의 휴게시설과 어린이놀이터, 족구장, 맨발지압보도, 온몸지압대 등 운동시설도 구비되어 있다. 한편 동망봉에는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귀양 가 있던 단종을 그리워하며 매일 봉우리에 올라 동쪽 영월을 바라보았다는 정순왕후의 전설도 깃들어 있다.
- 장소, 자연지리
- 북악산
- 종로구와 성북구에 걸쳐 있는 산이다. 청와대 뒤편 주봉에서 동쪽 방면으로 뻗어내린 산자락이 성북동의 서~북~동쪽을 둘러싸고 있다. 서울의 주산(主山)으로 ‘북악’이란 이름은 한양도성의 북쪽 산인 데서 유래했으며 공극산·면악·백악이라고도 하며 높이는 342m이다. 뛰어난 자연 경관은 물론 조선시대 체계적인 도성 조형원리, 풍수로 상징되는 사상적 체계를 구체화한 역사적 유적으로서의 가치 등을 인정받아 2009년 ‘서울 백악산 일원’이라는 명칭으로 명승 제67호로 지정되었다.
- 장소, 인문지리
- 북악하늘길
- 성북구 북악산 일원의 산책로이다. 군사정권 시절 통제되었던 북악산 일대가 2007년 전면 개방됨에 따라 성북구에서는 걷기 편한 산책로를 조성하여 2010년 개방하였다. 40여 년간 사람들의 발길이 닫지 않아 생태적 가치가 높고 자연경관이 우수해 일명 ‘서울 속의 비무장지대(DMZ)’라고 불릴 정도로 천혜의 자연이 그대로 살아 숨쉬고 있다. 산책코스는 크게 3갈래인데, 1산책로는 북악팔각정~말바위쉼터(1.40㎞), 2산책로는 하늘교~성북천발원지(1.95㎞), 3산책로는 북카페~숲속다리(0.64㎞)의 코스이다.
- 장소, 교통
- 북악스카이웨이
- 성북구 아리랑고개와 종로구 창의문(자하문)을 이어주는 도로이다. 북악스카이웨이는 1968년 1월 21일 북한무장공비의 청와대 침투사건을 계기로 수도권 경비 강화를 위해 조성한 도로로, 동년 2월 21일에 착공하여 9월 28일에 완공, 개통하였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도로에 대한 통제가 심했지만, 사회의 민주화와 더불어 차량의 자유로운 통행은 물론 산책로까지 조성되었다. 지금은 북악팔각정을 찾는 사람들로 차량 통행도 많고, 이 도로 곁에 나있는 서울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도 항상 눈에 띈다.
- 장소, 공공시설
- 성북근린공원
- 성북구 돈암동과 성북동에 걸쳐있는 공원이다. 성북근린공원은 북악산로와 성북로4길이 교차하는 지점을 중심으로 약 13만㎡에 달하는 구역에 생태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1980년에 공원으로, 1990년에 시민근린공원으로 지정되었지만 대부분 사유지여서 일반 시민들이 이용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도심공원 확대와 서울 둘레길 조성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공원내 사유지를 서울시에서 매입하여 2008년 하늘한마당과 전망데크를 설치했으며, 2009년 ‘동네뒷산공원화’사업을 추진하여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하였다. 공원 초입에 있는 하늘한마당은 문화공간이자, ‘북악하늘길’에 오르는 출발점이자, 구민걷기대회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계단식 생태연못과 산책로를 비롯해 다양한 체력단련시설과 편의시설 등이 설치되어 있다.
- 장소, 유적, 유물, 건축물
- 숙정문
- 삼청로11길 40(삼청동 산 2-49)에 위치한 한양도성의 사대문 중 하나이다. 속칭 북문(北門)으로 불렸던 숙정문은 서울 성곽의 다른 문과 같이 1396년(태조 5년)에 건설되었다. 숙정문은 풍수지리상 북쪽이 음(陰)과 물을 의미하였기 때문에, 평소에는 ‘음란한 풍조’를 방지하기 위해 폐쇄하였다 가뭄이 들면 문을 열고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1976년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도성의 성곽을 복원할 때 이 문의 문루를 건축하고「숙정문」이란 편액을 걸었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10호로 지정되었다. 1968년 1.21 사건으로 일반의 출입이 차단되었다가 2006년 4월 다시 일반에게 공개되었다.
- 장소, 종교시설
- 봉국사
- 정릉로 202-27(정릉동637)에 위치한 사찰이다.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 원찰로, 고려말 공민왕 3년(1354) 나옹대사가 주도하여 창건했다고 하는 설이 있으나, 조선 태조 4년(1395)에 당시 왕사였던 무학대사가 주도하여 세운 사찰로, 창건 당시 법당에 약사여래를 봉안하여 약사사라고 불렀다. 조선 현종 10년(1669)에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의 정릉을 단장하고 태묘에 제사를 드리게 되면서 이 절을 원찰로 삼고 나라를 받든다는 뜻에서 절 이름을 봉국사로 고쳤다. 임오군란(1882) 때 불에 탔으나 이듬해 한계·덕운 등이 중건하였고, 이후 몇 차례 더 중건되었다. 1979년 10월에는 절 입구에 일음루를 건립하고, 1994년에는 안심당을 지어 스님들의 수행정진과 신도들의 신행처로 사용하고 있다.
- 장소, 공공시설
- 북악골프연습장
- 성북구 북악산로 537-14(정릉동 산87-374)에 위치한 체육시설이다. 북악스카이웨이 산자락에 위치해 있으며, 1972년 홍태선씨가 시설을 만들고 시에 기부채납한 뒤 1990년대까지 운영하였다. 현재는 성북구 도시관리공단이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다. 주요 시설로 자동화 타석기계가 비치된 총 52타석이 1, 2층으로 나누어져 운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퍼팅연습장, 벙커연습장이 설비되어 있으며 기타 부대시설로 레스토랑, 골프용품점, 개인 락커 등이 있다.
- 장소, 유적
- 정릉
- 성북구 아리랑로19길 116에 위치한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를 모신 왕릉이다. 신덕왕후 강씨의 가문은 고려의 권문세가로 이성계가 중앙정계에 진출하고 조선을 건국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슬하에 2남(무안대군, 의안대군) 1녀(정순공주)를 두었으며, 1396년(태조 5) 음력 8월 13일에 세상을 떠났다. 신덕왕후를 사랑했던 태조는 경복궁에서 바로 보이는 황화방(현 중구 정동)에 능을 조영했는데, 태조가 죽자 태종이 현재 위치로 옮기고 방치했다. 이후 청계천 광통교가 홍수에 무너지자 능의 석물 중 병풍석과 난간석을 광통교 복구에 사용하였으며, 그 밖에 목재나 석재들은 태평관을 짓는 데 쓰게 했다. 민묘나 다름없었던 정릉은 260여 년이 지난 1669년(현종 10)에 왕릉의 상설을 갖추게 되었다.
- 장소, 종교시설, 유물, 건축물
- 흥천사
- 성북구 흥천사길29(돈암동595)에 있는 사찰이다. 1397년(태조 6) 신덕왕후 강씨의 능침사찰로서 중구 정동에 창건되었다. 1409년(태종 9) 정릉이 이전되고, 조선왕조의 억불정책과 몇 번의 화재 등을 겪으면서 폐사되었다. 1669년(현종 10) 함취정(含翠亭) 자리에 이건하여 중창하고 신흥사(新興寺)로 이름을 고쳤다. 1794년(정조 18) 현재 자리에 중창하였고, 1865년(고종 2) 흥선대원군의 지원을 받아 다시 흥천사라고 불리면서 왕실원당의 기능을 담당했다. 흥천사는 대한제국 순종황제의 황후인 순정효황후가 6.25전쟁 때 피난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의 첫 번째 왕후였던 신덕왕후의 원찰(願刹)에서 조선(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의 피난생활까지 조선왕실의 역사와 함께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 장소, 종교시설, 유물, 건축물
- 적조사
- 성북구 흥천사길 49-23번에 위치하는 정릉의 원찰인 흥천사의 사내 암자이다. 특히 근대 한국현대불교의 정신적 지주였던 경산스님의 수행처로 유명하다. 조선시대 후기 헌종 때에 지어진 흥천사의 부속암자로 혜암 성혜스님이 창건하였다. 초기에 독립된 사찰로 세워진 것이 아니어서 규모는 크지 않으며 전통적인 암자의 틀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는 관음전, 동국선원, 법당 등의 건물이 있으며, 한국 불교사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긴 경산스님(조계종 총무원장, 동국대학교 재단 이사장 역임)의 마지막 수행 장소로서 사리탑과 비석이 세워져 있다. 2019년 2월 14일 적조사 신중도가 서울시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장소, 자연지리
- 성북천
- 북한산 서쪽 구준봉에서 발원하여 성북동·안암동을 지나 청계천으로 합류하는 개천이다. 안암동을 지나는 구간은 안암천, 안감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부터 마전터로 이용되었으며, 물이 맑아 아이들의 놀이터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뿐 아니라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500여명의 사람들이 만세 시위를 벌렸던 장소이기도 하다. 1960년대 말 삼선교~성북경찰서 뒤편 총 1,300m를 복개한 것을 시작으로 1990년대 청계천 합류지역에서부터 보문동 1가 성암교회까지의 구간을 제외한 상류지역이 모두 복개하였다. 2002년 성북천 복원·정비공사에 착공하여 2019년 현재 성북동 성북아파트~한성대입구역 구간을 제외한 모든 구간이 복원되었다.
- 장소, 상업시설
- 삼청각
- 성북구 대사관로 3(성북동 330-115)에 위치한 전통문화예술복합공간이다. 삼청각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72년이었고, 그 당시에는 유신시대를 대표하는 고급요정이었다. 남북적십자회담의 만찬장으로 시작하여, 정치인이나 사업가들이 은밀하게 만나는 접대 장소였다. 민주화와 더불어 시대가 바뀌면서 요정으로 대표되던 ‘방석문화’가 이른바 ‘룸살롱 문화’로 대체되었고, 재정난을 맞이한 요정들은 차츰 쇠락하게 된다. 삼청각도 이런 이유로 간판을 내리게 되었고, 1996년 일반음식점으로 전환해 ‘예향’이란 이름으로 영업을 이어오다 1999년 폐업하였다. 2000년 서울시가 삼청각 부지와 건물을 도시계획시설상 문화시설로 지정하고 리모델링을 거쳐 2001년 전통 문화공연장으로 개장했다가 2009년부터 (재)세종문화회관으로 이관해 식문화와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복합공간으로 재탄생하였고,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 장소, 인문지리
- 북정마을
- 성북구 성북로 23길 일대의 마을로, 심우장 뒤편 한양도성 성곽이 보이는 언덕에 있다. ‘북적마을’로도 불렸는데, 조선시대 포백훈조계가 여기 있던 시절, 인부들이 ‘북적북적’ 거리는 소리 또는 메주 쑬 때 ‘북적북적’ 끓는 소리를 따서 지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아름다운 경관과 맑은 공기 덕분에 한용운 등의 가난한 예술가들이 살기도 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과 지방에서 상경한 사람들이 무너진 한양도성 성곽 아래 판자촌을 이루어 살면서 마을이 커졌다. 마을을 한 바퀴 빙 두르는 도로는 1983년에 완공한 소방도로인데 이 도로 안팎에 500여 가구가 모여 산다. 마을버스 정류장 앞 너른 길은 크고 작은 마을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2015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장소, 교육, 인물, 단체
- 북악중학교
- 성북구 정릉로12길 41(정릉동 640-3)에 위치한 공립 중학교이다. 1984년 1월 10일 설립인가를 받고, 같은 해 4월 27일 개교식을 진행하였다. 교훈은 ‘성실, 협동’이며, 꿈과 끼를 키우는 학교, 참된 인성을 갖춘 민주시민 육성, 미래사회 적응력을 갖춘 생활인 육성, 창의성과 자기주도 능력을 갖춘 인간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2015년 서울형 자유학기제 운영 우수학교 교육감 표창을 받았다. 2020년 2월 제34회 졸업생을 진행하였고, 누적 졸업생 10,953명을 배출하였다. 2025년 기준 317명이 재학 중이다.
- 장소, 인문지리
- 정릉 배밭골
- 성북구 정릉동에 소재하는 마을이다. 정릉 입구 삼거리에서 북악터널 방면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국민대학교 조금 못 미처 왼편으로 시선을 옮기면 널따란 소쿠리 속에 집들을 빼곡히 담은 듯한 마을 하나가 보인다. 정릉3동을 가로 지르는 큰 도로 건너편의 남쪽 아랫마을, 바로 정릉3동 배밭골이다. 배밭골은 2015년 상인과 주민들을 중심으로 배밭골번영위원회를 발족하고, 마을 주변의 대학들과 함께 지역문화발전과 공동체발전에 힘쓰고 있다.
- 장소, 자연지리
- 보토현
- 성북구 정릉동에 있는 북악산과 북한산을 잇는 고개이다. 북악산 구준봉(혹은 구진봉) 뒤쪽으로 북한산을 향하다 보면 나오는 잘록한 고개를 ‘보토현(補土峴)’, 즉 ‘보토고개’라고 하는데, 이는 서울로 들어오는 입구가 되어 잘록하므로 풍수지리설에 따라 그 약한 기운을 보충하기 위해 매년 흙을 메우고 떼를 입혔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름이 전해 온다.
- 장소, 자연지리
- 북한산
- 서울시 성북구·종로구·서대문구·은평구·도봉구 경기도 고양시·의정부시에 걸쳐있는 산이다. 백운대, 인수봉, 국망봉 등 세 봉우리가 삼각의 모양을 하고 있어 삼각산이라고도 불린다. 높은 봉우리들이 모두 발밑에 펼쳐지고 도봉산, 관악산, 남산 등 멀고 가까운 산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또 서쪽으로는 바다건너 강화도, 영종도 등서해상의 섬들도 볼수 있다. 신라 진흥왕순수비가 있는 비봉을 중심으로 많은 사찰이 있고 북한산 기슭에는 세검정과 성북동, 정릉, 우이동 등 여러 계곡들이 있다. 1983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 장소, 유적
- 북한산성
- 서울 북쪽의 북한산에 쌓은 성곽이다. 서울의 성북구, 종로구, 은평구, 강북구와 고양시 덕양구 일대에 걸쳐있다. 성북구에서는 정릉동의 북한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가 있는 곳이 입구이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로서 중요시되어 왔기에 여러 왕조에서 성을 쌓고 활용했을 것이다. 현재 남아있는 산성은 숙종 37년(1711)에 쌓은 것으로 임진왜란~병자호란에 이르기까지 긴 전란을 겪은 후 도성 방위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성에는 군사지휘소인 장대가 3곳, 크고 작은 문이 13개소, 우물이 99곳, 창고가 8곳이 있다. 또한 승군(僧軍)을 주둔시키기 위한 사찰도 여러 곳에 두었다.
- 장소, 자연지리
- 칼바위 능선
- 북한산의 산등성이를 따라 이어진 능선 중의 하나이다. 칼바위능선은 북한산 주능선에 오르는 대표적인 코스로, 대동문과 보국문 사이로 뻗은 짧고 날카롭게 생긴 능선을 말한다. 칼바위코스의 특징은 능선이 약 3㎞에 이를 정도로 길게 뻗어 있어 산길에 변화가 많고, 조망권이 뛰어난 것을 꼽을 수 있다.
- 장소, 공공시설
- 북한산국립공원
- 성북구 정릉동에서 연결되는 국립공원이다. 세계적으로 드문 도심 속의 자연공원인 북한산국립공원은 1983년 우리나라 15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는데, 우이령을 경계로 하여 북쪽으로는 도봉산 지역, 남쪽으로는 북한산 지역으로 나뉜다. 북한산국립공원은 화강암 지반이 침식되고 오랜 세월 풍화되면서 곳곳에 깎아지른 바위봉우리와 그 사이로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계곡들을 이루고 있다. 또한, 2,000년의 역사가 담긴 북한산성을 비롯한 수많은 역사, 문화유적과 100여 개의 사찰, 암자가 위치하여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함과 동시에 역사 문화 학습의 장이 되고 있다. 성북구 정릉동의 계곡과 둘레길, 등산은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 장소, 자연지리
- 정릉계곡
- 성북구 보국문로 215(정릉동 829)에 소재한 계곡으로 북한산 내 위치하고 있다. 정릉계곡은 오래전부터 청수동의 계류를 따라 형성된 계곡으로 여름철이면 피서를 즐기기 위한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정릉 유원지 깊은 곳에 위치한 청수장은 장안의 부호들이 즐겨찾는 장소였고 일제강점기에는 많은 일본인들이 주변으로 별장을 짓기도 하였다. 청수장은 삼각산 깊은 계곡의 맑은 물과 인근의 산수가 조화를 이룬 곳에 위치하여 불린 이름이다. 북한산 청수장 지역은 계곡 생태계 보호와 수질보전을 위해 2006년 1월 1일부터 2015년 12월 31일까지 10년간 자연휴식년제 계곡으로 지정, 출입을 금지하였고, 10년의 휴식을 취하고 시민 품으로 돌아왔다. 현재 청수장 자리는 북한산국립공원 탐방안내소로 이용되고 있다.
- 사건, 의례
- 정릉4동 한산대동산신제
- 성북구 정릉동의 한산신 제단에서 매년 음력 10월초에 지내는 마을 제사이다. 한산 대동산신제는 북한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산신제단에서 열리는데, 1992년 10월 전승문화번영회에서 제단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고 주민의 건강과 복을 기원하는 전통적인 마을 산신제를 계승하면서도 북한산의 상징성을 활용하여 “서울의 안녕과 성북구 주민을 위한” 행사로 범위를 확대하고, 정릉 4동 주민과 전승문화번영회, 성북구청과 성균관의 후원 등 민관이 함께 만들어가는 축제로 발전시켰다. 의식은 유교적 방식을 취하여 축문(祝文)을 고하고 헌작(獻爵)을 반복하고, 소지(燒紙)하는 등의 절차를 거치는데, 다른 산신제와 달리 차를 올리는 ‘헌가례’가 있는 점이 독특하다.
- 장소, 종교시설
- 경국사
- 성북구 보국문로 113-10(정릉3동 753)에 자리한 사찰이다. 고려 충숙왕 12년(1325) 율사 정자(淨慈)가 청암사(靑巖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고, 공민왕 때에 지공(指空)선사가 머물면서 고승대덕의 수도처로 알려졌다. 17세기 초 조선 현종 때에 이름이 경국사로 바뀌고, 몇 차례의 보수와 증축을 거쳐 현재의 규모를 갖추었다(16세기 중반 문정왕후의 이름을 바꾸었다는 설도 있다). 1921년 승려 보경(寶鏡)이 주지로 부임하였는데, 현재의 봉안된 탱화, 벽화 등의 대부분이 이 보경의 작품이다. 한편 경국사 주변은 산과 계곡이 어우러진 휴식처로서 예로부터 사대부들이 많이 찾던 곳이다. 해방 후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자주 방문했었고, 1953년 당시 미국 부통령이었던 닉슨이 방문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장소, 종교시설
- 내원사
- 성북구 보국문로 262-151(정릉4동 산 1-1)에 위치한 사찰이다. 내원사라는 명칭은 1969년 이재현 스님이 폐사지였던 곳에 새로 절을 만들며 대웅전을 건립할 때 이전 건물에서 내원사라는 이름이 나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처음 창건된 연혁은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조선 후기 김정호의 한양 지도인 “수선전도”와 “백의대사불도(白衣大士佛圖)”라는 목판에는 같은 위치에 내원암(內院庵)이라는 표기가 있어 늦어도 19세기 중엽에는 절이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언제 폐사되었는지 등 상세한 내력은 알려지지 않았다.
- 장소, 종교시설
- 영취사
- 성북구 정릉동 북한산(보국문로 261-222)에 있는 사찰이다. 영취사는 정릉계곡을 따라 보현봉 방향으로 북한산을 오르다보면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자그마한 사찰이다. 창건 등의 연혁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대웅전 계단 아래 마당에 5층 석탑이 있는데, 고려말~조선 전반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비교적 작은 크기이지만 서울지역에 별로 많지 않은 석탑 가운데 하나이며, 석탑의 부재가 비교적 잘 남아 있어 2007년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40호로 지정되었다.
- 장소, 자연지리
- 천장산
- 성북구 석관동, 동대문구 회기동, 청량리동에 걸쳐 있는 산이다. 해발 140m로 낮은 산이지만 꽤나 넓은 편으로, ‘하늘이 숨겨놓은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명당터이다. 천장산 주변으로는 한예종, 외대, 경희대, 카이스트 서울캠퍼스 등의 대학캠퍼스가 둘러싸며 자리하고 있고, 과학기술연구원, 국방연구원, 산림과학원, 산업경제연구소, 농촌경제연구소가 모두 이 산에 기대어 있다. 조선왕조의 무덤인 의릉, 영휘원, 숭인원 등이 주변에 자리잡았고, 명성황후의 능 자리였던 홍릉 역시 이곳에 위치하였다. 조선 왕가의 쉼자리, 현대 교육의 산실인 대학, 연구의 중심인 연구소들이 산 주변에 둘러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천장산이 좋은 기운을 가진 공간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 장소, 문화예술(소극장, 갤러리, 관련 연구소)
- 천장산우화극장
- 화랑로18자길 13(상월곡동 24-348), 성북정보도서관 지하1층에 위치한 공공문화공간이다. 2018년 3월 17일에 개관한 천장산우화극장은 월계동·장위동·석관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지역 커뮤니티 '월장석 친구들'과 성북문화재단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고정좌석이 없는 블랙박스형 극장으로 다양한 컨텐츠와 장르의 공연, 전시, 강연, 프로그램 등을 진행할 수 있다. 극장을 둘러싼 천장산과 아이부터 어른까지 친근하게 느끼는 풍자적·환상적 이야기인 '우화'에서 따와 '천장산우화극장'이라는 이름이 탄생하게 되었다.
- 장소, 공공시설
- 청량근린공원
- 성북구 화랑로32길 146-37(석관동 409)에 위치한 근린공원이다. 1940년 3월 12일에 개원하였고, 1995년 청량근린공원 조성이 계획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청량근린공원은 홍릉 및 의릉이 위치하고 있어 대부분의 면적이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있다. 총 면적은 762,642㎡이며 어르신건강마당, 산책로, 파고라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그 중에서도 어르신건강마당은 1,980㎡ 규모의 노인 전용 운동공간으로써 어르신들을 위한 다양한 운동 기구들을 갖추고 있다. 성북구에서는 문화재청과 협의하여 문화재구역 일부를 개방하여 의릉 ~ 돌뫼어린이공원 ~ 성북정보도서관을 연결하는 산책로를 조성하였다.
- 장소, 유적
- 의릉
- 성북구 화랑로32길 146-20에 있는 조선시대 왕릉이다. 의릉은 조선 20대 경종과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씨의 무덤인데, 1724년에 경종이 세상을 떠나자 현재 위치에 능을 먼저 조성하였고, 영조 6년(1730)에 선의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의릉 아래에 능을 조성하였다. 의릉은 1960년대 초 당시의 중앙정보부가 능역 내에 있어서 일반인에게는 철저히 봉쇄된 구역이었다. 홍살문과 정자각 사이에 연못을 만들고 돌다리를 놓는 등 훼손이 심하였다. 이 후 중앙정보부가 국가안전기획부로 바뀐 후 서초구 내곡동으로 이전하면서, 1996년에 일반인에게 다시 공개되었고, 2003년 12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외래수종 제거, 전통수종 식재, 인공연못 성토, 금천교 복원 등 기초적인 의릉 복원 정비를 마쳤다.
- 장소, 유적, 유물, 건축물
- 구 중앙정보부 강당
- 성북구 화랑로32길 146-20(석관동 409)에 위치한 건물이다. 이 일대는 조선 경종과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씨의 능인 의릉 능역으로, 본 건물은 능역 안에 있다. 1962년 신축된 강당 부분과 1972년 지어진 회의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1961년 설치된 중앙정보부가 의릉에 들어가면서 건물을 만들고 사용했다. 1972년 7월 4일 이곳에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이후락이 남북 간의 합의를 통하여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민주화와 더불어 의릉 복원사업을 진행하면서 철거가 예정되기도 하였지만, 냉전시대의 화해와 단합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 놓은 한국현대사의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남긴 현장이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 9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장소, 인문지리
- 삼태기마을
- 성북구 화랑로 18길(상월곡동) 일대의 마을 이름이다. 성북구 상월곡동과 석관동에 걸쳐 있는 천장산에서 내려다본 마을의 모양이 삼태기를 닮았다고 하여 예로부터 삼태기마을이라 불려 왔다. 2012년 서울시 건강친화마을만들기 시범사업지로 선정되어, 삼태기마을주민협의체를 중심으로 보다 살기 좋고 건강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지역이다. 마을에 있는 서울국유림관리소 앞에는 삼태기 숲 입구가 있어 걷기 좋은 산책로를 갖추고 있다. 또한 ‘마실사랑방’이 있는데 각종 의료 측정기를 구비하여 주민 건강 관리와 소통과 화합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 장소, 교육
- 한국예술종합학교
- 성북구 화랑로32길 146-37(석관동 409)에 위치한 국립 대학교이다. 문화관광부가 1993년 국내 최초로 6개 분야의 예술 실기를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설립하였다. 석관동의 교사는 학교 본부와 연극원, 영상원, 미술원, 전통예술원이 자리하며, 서초동 교사는 음악원과 무용원이 있다. 일반대학보다 입학 정원이 적은 소수정예를 표방하고 있으며, 남다른 입시 전형과 차별화된 커리큘럼을 통해 개교한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예술계에서는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고 있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생들은 예술계 각 분야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다.
- 장소, 자연지리
- 월곡산
- 성북구 장월로3길 93-27(상월곡동 산 1-1) 일대에 있는 오패산 지맥의 남쪽 끝 봉우리이다. 월곡동에 위치하여 월곡산이라고 한다. 고종의 장남 완화군의 묘(애기릉)와 고종의 귀인들의 묘가 위치해 있었으나 지금은 고양시 서오릉 경내로 이전되었다. 월곡산 일대는 오동근린공원으로도 불리는데, 1966년 2월 5일 건설부고시 제2181호로 처음 근린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85년 2월 16일 서울특별시고시 제72호로 최종 고시되었다.
- 장소, 공공시설
- 성북구민체육관
- 성북구 화랑로13길 144(하월곡동 산 2-1)에 있는 공공시설이다. 1993년 설립된 성북구민체육관은 오동근린공원과 함께 있는데, 주민들의 건강과 문화 생활의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실내시설로 대규모 체육관을 비롯하여 헬스장 등을 갖추고 있으며 다양한 스포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편 주민 활동을 위한 대관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야외시설로 인조잔디축구장과 배드민턴장, 농구장, 그리고 월곡구민운동장 등을 갖추고 대관 운영하고 있다. 이 시설은 현재 성북구 도시관리공단에서 운영하고 있다.
- 장소, 공공시설
- 오동근린공원
- 성북구 화랑로13가길 100(하월곡동 산2-1)에 위치한 근린공원이다. 월곡동은 노후한 주택이 밀집되어 있어 주거환경이 열악한 달동네로 알려져 있었다. 이 지역에 재개발로 대단지아파트가 건설되면서, 성북구는 쾌적한 주거환경을 만들기 위해 공원을 조성하였다. 오동근린공원은 인조잔디축구장, 쉼터와 계단산책로, 황토지압보도, 테니스장 등을 두루 갖추고 구민들의 쉼터로 자리 잡았다.
- 장소, 공공시설
- 오동숲속도서관
- 성북구 화랑로13가길 110-10에 있는 성북구의 구립도서관이다. 2023년 5월 2일 개관한 이 도서관은 428㎡ 규모의 1층 건물로 중앙에 커뮤니티 공간의 층고는 7.5m이다. 50여 석의 열람석을 갖추고 있으며, 도서관뿐만 아니라, 유아숲체험원, 치유의 숲길 등 주민들이 여가를 보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2024년 12월 기준으로 9,500여 권의 도서와 10종의 신문 ·잡지를 보유하고 있다.
- 사건, 의례
- 정릉공청 대동산신제
- 정릉2동 공청회(공청경로회)가 주관해 매년 음력 10월 초에 지내는 마을 제례로, 2015년을 기준으로 100회를 맞이하였다. 본래는 정릉 안에 위치한 약수터 위 산신제단에서 거행되었으나, 현재는 정수초등학교 뒤 북한산 숲내 북악정 앞에서 진행된다. 이 제사는 전통 산신제를 현대적으로 계승해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의례로, 제사에 앞서 ‘옥황상제’에게 먼저 제사를 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의식은 유교적 절차를 따르며 축문을 읽고 헌작을 반복한 뒤 소지를 올리는 순서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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